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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의개미 Jul 20. 2016

사랑은 시금치 달걀말이를 타고

 고등학교 때 우리 학교 애들은 대치동으로 학원을 가는 경우가 많았다. 학원이 늦게 끝나는 날이면 부모님들이 데리러 오곤 했다. 한 친구는 부모님이 아닌 오빠가 차를 몰고 데리러 왔다. 그 친구와 오빠는 나이 차이가 조금 나는 편이어서 오빠는 군대도 다녀온 대학생이었다. 나는 사이가 썩 좋지 않은 남동생 한 명이 있어서, 항상 오빠나 언니가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오빠 중에서도 차로 동생을 데리러 오는 오빠라니, 참 좋은 오빠다 싶었다. 오빠가 있어서 좋지 않냐고 하면 그 친구는 질색을 하면서 야 그 새끼 완전 나빠, 라고 했다. 그래도 다정하지 않아, 했더니 옆에서 다른 친구가 야 얘네 가족은 원래 서로 엄청 잘 챙겨 장난 아니야,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 친구네 가족은 원래 서로 애정 표현도 많이 하고 서로 챙기고 한단다. 가장 충격적인 이야기는 아빠가 출근할 때 온가족이 나와서 아빠를 배웅하는 것이었다. 배웅하는 것이 뭐가 충격적이냐 하겠지만, 충격적인 것은 그게 아니라 그 이른 시간에 엄마, 오빠, 내 친구까지 눈을 비비며 나와서 차례로 아빠에게 뽀뽀를 해야지만 아빠가 출근한다는 것이다. 아까도 말했지만 오빠는 군대도 다녀온 대학생이었고 나는 다 큰 남자 자식이 아빠랑 뽀뽀하는 게 상상이 잘 안 갔다. 성별이나 나이가 중요한 건 아니지만……아무튼 나에게는 많이 놀라웠다. 그 친구는 모든 집에서 다 그러는 줄 알았단다. 얼마 전에 함께 교생을 다녀왔는데 지금까지도 그 전통은 잘 이어지고 있었다. 

 

 술을 먹다가 안주로 종종 달걀말이를 시킬 때가 있다. 빨래판 달걀말이, 치즈 달걀말이, 날치알 달걀말이 등등 다양한 달걀말이를 먹어봤지만 나는 왜 시금치 달걀말이는 없는지 의문이었다. 왜 시금치 달걀말이는 안 팔까? 했더니 친구들이 이상하게 쳐다보면서 그게 뭐냐고 했다. 달걀말이는……원래 시금치 달걀말이만 있는 거 아니었어? 아니었다. 우리집 달걀말이는 항상 초록색과 노란색이 섞여있는 시금치 달걀말이였는데. 그런 음식은 듣도보도 못했다는, 시금치와 달걀이 무슨 조합이냐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그것이 우리집만의 음식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인터넷에 '시금치 달걀말이'를 검색했다. 있긴 있는 음식이었다 그것은. 포탈 사이트에서 레시피도 찾을 수 있다. '우리 아이 영양만점 반찬' 같은 제목이 붙어있다. 그 때가 문득 생각나서 오늘 아침 엄마에게, 엄마 다른 집은 시금치 달걀말이를 안 먹더라, 그랬다. 엄마가 어, 내가 만든 거거든, 했다. 또다시 충격. 애들은 원래 시금치를 잘 안 먹으니까, 우리에겐 잘 먹여보려고 만든거랬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었는데 인기 레시피로 선정되어서 요리책에 실리기도 했단다. 뭐 받았어? 돈 줘? 이랬더니 그 레시피책 한 권 보내줬다고 하는데, 아무튼 다시, 놀라웠다. 시금치 달걀말이는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자주 먹는 반찬이었으니까. 내가 당연하게 먹던 그것에 엄마의 다정한 걱정이 있었구나.


 그러니까 친구네의 출근 뽀뽀와 같이(지금 생각하니 아빠가 출근할 때 뽀뽀뽀~를 가장 잘 실천하고 있는 가족이네), 우리집의 시금치 달걀말이와 같이 가족의 다정함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생활이 되고 내 몸이 되고 내가 되고 그러는 것 같다. 사랑받은 사람은 태가 난다고 그러는데, 그것은 사랑이 여러 가지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 않을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랑받은 사람은 여러 가지로 표현할 줄도 아니까. 그 사람에겐 당연한 것들이 사실은 사랑받음의 표시이며, 앞으로 줄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이 왠지 간지럽다. 나는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면 시금치 달걀말이를 해줄 것이다. 내 친구는 아마 새 가족이 생겨도 뽀뽀를 많이 하겠지. 사랑은 뽀뽀를 타고, 시금치 달걀말이를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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