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3’, 하루 3번, 3분 이상, 식후 3분 이내 양치하자는 구호를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나는 칫솔질을 하루에 세 번씩은 꼭 했다. 아니, 하려고 노력했다. 세 번을 하지 못하면 죄책감도 느꼈다. 식후에 양치질을 안 하면 곧 내 이가 썩을 것만 같았다. 이런 부담감을 나만 느끼는 건 아니었는지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치약 소비량 2위라고 한다. 어쩐지 금방 새 치약을 꺼낸 것 같은데 어느 순간 치약 허리를 자르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그치만 그걸 앞질러 OECD 1위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충치율이다.
하루 3번 양치하면 치아가 건강해지는 줄 알았다. 국민의 93%이상이 하루 2회 이상 칫솔질을 한다고 답했다. 솔직하게 답했는지 어쩐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것에 대해 부담감을 가지고 실천하려고 노력한다는 뜻일 거다. 그런데 충치율 1위라니, 양치 횟수가 평균 1.97회인 일본보다 충치가 많다니, 어딘가 단단히 잘못됐다. 잘못된 양치습관과 치실 미사용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하는데, 그런걸 알려준 적이 있냔 말이다. 배신감은 줄지 않는다.
어쩐지 일방통행식으로 배운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치아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양치질만 자주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단 말이다. 구강청결제도 사용하고, 치실도 써주고, 스케일링도 주기적으로 받아야 내 이는 건강한 거였다. 치아를 지키는 데에는 여러 가지가 필요했다. 나는 미련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 교육을 치아 건강에만 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왜, 학교 성적만 좋으면 꼭 인생이 성공할 것 같이 배우지 않았던가. ‘성공’이라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아무튼 인생이 성공하려면 성적 뿐 만이 아니라 정말 이것저것 많은 것들이 필요하고, 또 그건 사람마다 다르지 않은가. 나는 왜, 우리는 왜 꼭 성적만이 하나의 기준인 것처럼 스스로를 줄 세웠으며, 부담감과 죄책감을 동시에 느껴야 했단 말인가.
그니까 이를 열심히 닦는 내 모습에 이제는 나는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이게 뭐라고. 정말 지겹도록 해왔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위해서 배운 내용을 달달 외우면서도 아 이게 뭐하는 짓인가, 내 인생에 최초의 가사(歌辭)니 사설시조니 하는 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하는 회의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은 왜 나에게 여러 방법이 있다고, 여러 길이 있다고, 혹은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고 말해주지 않았나.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으면, 치열하게 양치질하지 않으면 뭔가 잘못될 것 같이 나 자신을 채찍질하게 했던 교육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무언가 스스로 선택하기로 마음먹어 본다. 오늘도 밖에서 밥 먹을 일이 있으면 휴대용 칫솔을 챙기고,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 영어 한 줄 더 읽어보려고 하지만, 그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