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인도의 덜컹이는 기차 안에서 깼다. 서쪽 도시 뭄바이에서 동쪽 도시 캘커타를 향해 가며 여행 중이다. 기차를 탈 일이 잦다. 인도 기차 일반 침대칸은 아래칸, 중간칸, 윗칸 총 세 층으로된 좌석이 서로 마주보는 구조로 돼 있다. 우리는 맨 윗칸을 선호했다. 방해받지 않고 자신만의 공간을 누릴 수 있어서다. 승객들은 낮에 중간칸을 접고, 맨 아랫칸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눈을 비비고 일어나니 이미 사람들이 맨 아랫칸에 앉아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일어난 기척을 하니 아랫칸에 모여있던 일행이 한쪽으로 자리를 비켜줬다. J와 나는 내려가 인도 여행객들과 마주 보고 둘이 나란히 앉았다. 그들은 '외국인'인 우리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다.
기차가 잠시 멈추어 섰다. 도시락을 파는 이가 복도를 지나다녔다. 맞은 편의 가족들이 식사를 주문했다. J와 나도 은박도시락에 든 빵과 미트볼을 시켰다. 탄수화물 더하기 탄수화물. 정신 없이 먹고 고개를 들었는데 맞은 편 일행의 도시락은 이미 흔적도 없이 치워져 있다. 빈 도시락을 구겨 손에 쥐고 쓰레기통을 찾는 우리를 관찰하는 눈빛이 느껴졌다. 아무리 찾아도 쓰레기통이 없는데 어디에 버린 거지, 생각만 했는데 터번 쓴 남자가 창 밖을 가리켰다. 창 밖에 뭐가 있나 봤지만 시골 풍경일뿐이다. 기차는 달리고 있다. 남자는 던지는 시늉을 했다. 창 밖에 버리라는 뜻이었다. "그냥 던져 버렸나봐" J가 말했다. 우리는 그나마 은박지지만 저 사람들 건 식판이었는데 황당하다. 쓰레기를 창 밖으로 던졌다. 사람들이 안심한 듯 웃었다.
카스트에 따른 차별은 법적으로 금지된지 오래지만 인도 문화 곳곳에는 여전히 카스트의 흔적이 남아있다. 경찰은 우리에게 "쟤들은 '사람'이 아니다. 인권이 없다"며 집시들을 매로 때렸다. 이들이 책에서 보던 '불가촉천민'이겠구나 유추했다. 두달 가까이 인도를 여행하면서 만난 불가촉천민은 이들이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많은 불가촉천민이 고향을 떠나 차별이 덜한 도시로 향하거나, 고향에서 남다른 부를 축적하는 등의 방식으로 신세를 바꿨다고 한다. 그러나 '더러운 일은 불가촉천민의 몫'이라고 믿는 나머지 사람들의 고정관념은 여전해 보였다. 과거 불가촉천민은 나머지 계급이 더럽다고 여기는 일을 도맡아 왔다. 청소, 쓰레기 수거, 시체 처리 같은 일들. 그 일을 할 사람은 점점 줄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 쓰레기를 처리해줄 계급이 있다는 듯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렸다. 기차에 맞은 편에 탄 멀끔한 차림의 친절한 가족들도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은 나의 일이 아니다'라고. 그 다음 도시에서 우리는 길 밖 비탈길에 버려진 쓰레기의 산을 만났다. 아직 버리는 사람은 있지만 이제 치우는 사람은 없었다.
쓰레기는 버리면 끝이라고 믿는 건 인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도 집 밖으로 쓰레기를 내보낸 그 다음은 잘 모른다. 도시의 시스템은 쓰레기를 효과적으로 눈 앞에서 치워버린다. 종량제 봉투를 묶어 버리고, 분리배출을 하고 나면 끝처럼 보이지만, 쓰레기의 여정은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올해부터 '수도권 생활폐기물 직매립 금지 제도'가 시행됐다. 쉽게 말해, 서울 쓰레기의 일부가 갈 곳이 없어졌다.
서울에서 하루 발생하는 쓰레기양은 3200톤에 달한다. 서울은 발생하는 쓰레기를 일단 태운다. 서울에는 마포, 강남, 노원, 양천구 4곳에 공공 소각장이 있다. 이곳에서 처리할 수 있는 쓰레기양은 2200톤이다. 하루 1000톤가량의 쓰레기가 남는다. 내일 태우면 안 된다. 내일은 또 내일의 쓰레기가 3200톤 생기니까. 작년까지 이 잔여 쓰레기는 인천에 있는 수도권 매립지로 보내졌다. 말 그대로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지자체가 함께 쓰는 매립지였다. 각 지자체는 태우고 남은 쓰레기를 인천과 김포에 걸쳐 위치한 이 매립지에 봉투째 묻었다.
인구 절반이 사는 수도권에서 버리는 쓰레기가 하루 2000톤 넘게 쌓여가던 매립지의 포화는 예정된 미래였다. 인천시장 후보들은 매번 선거 때마다 '더이상 서울과 경기의 쓰레기를 받지 않겠다'고 공약했다. 매립지 종료는 인천의 숙원이었다. 인천시 요구가 받아들여지면서 환경부(현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수도권 지차체들은 '수도권 매립지 직매립 금지'를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직매립은 쓰레기를 봉투째 땅에 묻는 것을 의미한다. 소각을 하거나 봉투를 뜯어 재활용 선별 등 '처리'를 거친 소각재, 잔재물만 매립할 수 있게 된다. 쓰레기 전처리시설이 보편화되지 않은 만큼, 사실상 관내 소각장에서 소화할 수 있는 쓰레기 외 남은 쓰레기는 갈 곳이 없어진 셈이다.
남아 도는 쓰레기를 보낼 새로운 곳을 찾아야했다. 4자 합의 이후 각 지자체는 대체 매립장 공모하고 공공소각장을 지을 부지를 찾아헤맸다. 그러나 대체 매립지 공모는 번번이 실패했다. 서울은 단 하나의 소각장도 새로 짓지 못했다. 각 지자체가 여전히 대안이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제도 시행일인 2026년 1월1일이 다가왔다. 시행을 단 한 달 앞두고도 직매립 금지가 유예될 수도 있다는 말이 돌았다.
결국 직매립 금지는 시행이 확정됐다. 쓰레기가 향할 곳은 한 곳뿐이었다. 산업쓰레기를 처리하던 민간소각장과 시멘트 공장 등 민간 처리시설이다. 각 자치구는 직매립 금지 시행을 앞두고 민간 처리시설에 남은 쓰레기를 보내는 용역 계약을 맺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수도권 쓰레기가 수도권 밖의 민간 처리시설로 나갈 것이 우려하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수도권 안에 있는 민간 처리시설에서 수도권의 쓰레기를 모두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래서 쓰레기를 발생한 곳에서 처리하는 '발생지 책임 원칙'이 지켜질 수 있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막상 체결된 계약들을 보면 충청, 강원 등 비수도권과 계약한 지자체가 이미 수두룩하다. 서울 쓰레기를 인천으로 보내지 말자는 취지에서 시행된 '직매립 금지' 제도 이후 오히려 서울 쓰레기는 더 먼 충청과 강원으로 향하게 됐다.
공공 매립지나 소각장이 아닌 민간 시설로 보내지기 때문에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 인근 주민들도 바로 옆 시설에서 수도권 쓰레기가 처리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고, 그에 따른 보상도 받기 어렵게 됐다. 민간 시장에 의지하는 만큼 쓰레기 처리 비용도 향후 예측하고 통제하기 어렵다.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지자체는 '임시방편'이라고 설명하지만 10년간 마련하지 못한 '대안'을 앞으로도 빨리 마련하기는 어려울 거다.
이 모든 상황에 변하지 않은 게 있다. 서울은 쓰레기를 서울 밖으로 내다버린다.
쓰레기는 우리가 잠든 사이 옮겨진다. 난 서울 마포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 산다. 이 건물엔 분리배출장이 따로 없다. 일반쓰레기와 음식물쓰레기는 종량제 봉투에 넣어서, 재활용 쓰레기는 비닐봉투에 넣어서 집 앞 주차장에 내놓는다. 일, 월, 화, 수, 목요일 밤에 쓰레기를 내놓으면 아침엔 쓰레기가 싹 사라져 있다.
정부가 환경미화원의 근무 시간을 야간과 새벽에서 주간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지침'을 만든 것은 2019년이지만 이 규정이 지켜지는 곳은 많지 않다. 많은 양을 적은 사람이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조차 교통 체증이 없는 새벽에 일하길 선호하는 경우도 많다. 더 많은 사람이 적은 곳을 들러도 된다면 일하는 낮에 쓰레기를 옮겨도 된다. 당연히 모든 게 '비용'이기 때문에 개선이 더디다. 민원이 덜 들어오고 가장 싼 방식으로 일이 처리된다. '효율성'이 사람의 목숨과 안전을 담보 삼는다. 밤에 일어나 새벽에 일하고, 어두운 시간에 잘 보이지 않는 쓰레기에 찔리고 베이는 일이 반복된다.
그렇게 옮겨진 쓰레기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처리된다. 쓰레기차들이 오가는 소각장, 선별장은 '집값'을 떨어뜨리는 혐오시설이다. 짓기가 어려우니 지자체는 '지하화'하겠다며 주민들을 달랜다. 그렇게 지하에 지어진 시설들이 있다. 누군가의 일터고, 그곳에서 사람이 일한다. 땅 속 깊은 창문도 없고 해가 들지 않는 곳에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은, 지상에서보다 열악하다. 악취, 소음, 진동 문제가 더 심각하다. 쓰레기 처리에 기계가 많이 사용되는 만큼 화재나 폭발, 붕괴 등 사고 위험에 대한 공포도 더 크다.
영원히 민간 시설이 의존하지 않으려면 수도권에는 더 많은 쓰레기 처리시설을 만들어야 하고, 지금 있는 시설들도 언젠간 노후화돼 새로 지어야 한다.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어디에 어떤 시설을 지을 건지. 선택 앞에서 기억했으면 한다. 거기서 사람이 일한다는 걸. 여느 전일제 노동자처럼 자주, 오랜 시간을 일터에서 보낸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