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무원 직업에 어울리는 전공이 있을까? -
"XXX 씨, 대학교 때 전공이 뭐였어요?" 비행을 하다가 가끔씩 동료 승무원에게 뜬금없이 전공을 물을 때가 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며, 같이 비빔밥을 비벼 먹는데 (주1)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조금 어색해서 그 어색함을 깨 보려고, 그렇다고 학교를 물어보는 건 좀 그렇고, 별생각 없이 그냥 전공을 묻는다.
(주1) 같이 비빔밥을 먹진 않는다. 따로 비벼 따로 먹는다. 특히나 요즘 같은 시국엔 같이 먹다 큰일 난다.
대부분 자기 전공을, 묻는 사람과 똑같이 아무 생각 없이 알려주지만, 한번 보고 다시 안 볼 사람에게 본인의 과거를 밝히는 게 꺼림칙한 듯 망설이는 승무원도 종종 있다. "얘기해도 금방 까먹으니깐 그냥 말해봐요. 참고로 내 전공은 영어예요"
아무 생각 없이 묻는 것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요즘 승무원 되는 사람들은 대학에서 뭘 배웠을까?' 살짝 궁금하기도 하다. 그런데 승무원 전공에는 별 공통점이 없다. 승무원 수만큼이나 전공이 다양하다. 외국어나 문과 계열 전공이 가장 일반적이고 공대나 이과 계통 전공자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서비스 자세나 승객 응대, 스마일이 좋은 친구들은 알고 보면 항공과 전공인 경우가 많다.
비행 경력 1년 미만의, 막내 승무원들은 뭘 해도 어설픈 구석이 있는데, 예상외로 노련한 승무원이 있다. 의혹의 눈으로 "XX 씨는 비행을 한지 얼마 안 됐는데 의외로 일을 잘하네" 살짝 비틀어 칭찬을 해주면 부끄러운 듯 배시시 웃으며 "사실은요, 다른 항공사에 근무하다 왔어요"라며 본인의 승무원 경력을 털어놓는 시니어 포스(Force - 힘, 분위기, 대략 그런 뜻)의 막내 승무원도 있다.
지난번 비행했던 승무원은 말끝마다 요즘 신입들도 잘 안 쓴다는 '다, 나, 까'체를 붙였다. 서비스를 하다가 갤리 (승무원 근무 공간)에 가서 뭐 좀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했더니 "넵! 알겠습니다!" 하며 절도 있게 걸어간다. 서비스가 끝나고 그녀의 전직을 물었더니 오 마이 갓! 여군이었단다. 대위로 전역을 했다는 말에 병장 출신인 내가 그녀에게 '충성!'거수경례를 할 뻔했다. 군인이 전공은 아니지만, 군인 출신 여승무원을 본 것은 그녀가 처음이다.
승무직에 도움이 되는, 동료 승무원들로부터 이쁨 받는 전공이 있긴 하다. 바로 간호 혹은 중국어 전공이다. 일전에 비행한 여승무원은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서울의 모병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었다.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XX 씨가 있어 팀장님이 도움을 많이 받겠어요"했더니 "제가 주사도 놓을 수 있어요"라고 말한다. 그런 팀원이 한 명 있으면 응급 환자가 발생해도 든든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중국어 전공자도 팀에 있으면 좋다. 대부분의 승무원들도 기본적인 서비스 중국어는 가능하지만 문제가 발생해 중국 승객에게 상황 설명이 필요할 때 중국어 전공자가 있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무원은 전공 불문이다. 몇 가지 신체적인 조건이 맞고 토익 점수가 커트라인만 넘으면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승무원 경쟁률은 매번 100대 1을 훌쩍 넘는다. 지원하기는 쉽지만 경쟁률만 보면 이만큼 되기 힘든 직업도 없는 것 같다. 마치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처럼
코로나 때문에 항공사 채용 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승무원 채용문이 활짝 열리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텐데.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돼서 하반기에는 승무원 공채가 시작되기를 바래본다. 서비스 마인드가 투철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며, 무엇보다도 (나처럼) 멋진 미소를 가진 신입들이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물론, 그전에 내가 그런 사람이 돼야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