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거울 속 모습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까?
앞동갈베도라치가 집을 찾아오는 실험을 하려면, 우선 둥지에 쏙 들어가 나오지 않는 앞동갈베도라치를 꺼내서 잡아야 한다. 앞동갈베도라치가 먹이를 찾아 나올 때를 기다리는 것은,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바위틈으로 도망가면 잡기가 더 어려워져 고민하던 중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것은 앞동갈베도라치에게 거울을 보여주는 것이다. 거울을 둥지 앞에 바싹 대고 기다리면 앞동갈베도라치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굴 밖으로 나와 거울을 공격한다. 둥지를 빼앗으려는 침입자로 여기는 것이다. 앞동갈베도라치가 거울 속 침입자에 정신이 팔린 사이 뜰채로 쉽게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반복적으로 여러 앞동갈베도라치에게 거울을 보여주다 보니 그중 특이하게 행동하는 개체들이 있었다. 처음 몇 번은 입으로 거울을 쪼아 공격하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지 공격을 멈추고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거울 속 자신과 몸길이를 재거나 동작을 비교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촬영에 참여한 어류 행동학 전문가 임주백박사님은 이런 모습을 보고 앞동갈베도라치가 거울 속 모습을 자기 자신으로 인식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었다.
동물의 지능과 인지 능력을 알아보는 거울 실험을 통과한 동물은 돌고래나 영장류처럼 이미 똑똑하다고 알려진 동물 외에 새와 물고기도 있는데 그중 일본 오사카공립대의 코다 마사노리 교수님의 청줄청소놀래기 실험은 내가 직접 그 실험실을 방문해 촬영하기도 했다. 물고기가 거울에 비친 물고기가 자신이라고 인지한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
실험 과정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①우선 한쪽 벽이 거울로 된 수조에 물고기를 넣는다.
②청줄청소놀래기는 잠깐의 적응 기간이 지나면 거울 속 물고기를 경계하다가 주둥이로 쪼아 공격한다.
③얼마 후 공격을 멈추고 이리저리 몸을 돌려가며 거울 속 물고기와 지신을 비교한다.
④충분히 거울에 적응했을 때 물고기를 꺼내 마취한 후 배에 갈색 물감을 주사기로 주입해 점을 만든다.
⑤수조의 거울을 가리고 물고기를 다시 집어넣는다.
⑥물고기가 깨어나 활동하면 가림막을 치워 다시 거울을 볼 수 있게 한다.
⑦거울을 본 청줄청소놀래기는 바닥이나 돌에 몸을 비벼 배에 생긴 갈색 점을 떼어내려 한다.
이때 갈색 물감을 사용하는 이유는 청줄청소놀래기가 갈색에만 반응했기 때문인데 자연에서 이 물고기에 달라붙는 기생충과 같은 색이기 때문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https://journals.plos.org/plosbiology/article?id=10.1371/journal.pbio.3000021
사실 내가 거울 아이디어를 생각한 것은, 오래전에 고바야시 야스마다라는 분의 <바다일기>라는 책에서 거울에 반응하는 물고기 사진을 보고 바다에 촬영 갈 때면 늘 작은 거울을 가지고 다니며 물고기들의 반응을 살피곤 했기 때문이었다. 조수웅덩이에 거울을 넣어 보니 물고기마다 반응이 모두 달랐는데 어떤 물고기는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기도 했고 어떤 물고기는 가까이 가서 보고는 그냥 돌아서기도 했다. 그중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인 것은 나비고기들인데 가장 처음 어린 룰나비고기Chaetodon lunula가 거울을 발견하고는 거울 속 자신과 뾰족한 입을 맞대고 위아래로 옆으로 정신없이 다니는데 거울을 치울 때까지 전혀 멈추려고 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 이후에 만난 가시나비고기Chaetodon auriga도 마찬가지였다. 나비고기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단정 짓기 어렵지만 거울 속 자신에게 호의적인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키스하는 것처럼 보여도 물고기에게 입맞춤은 대체로 싸움에 가깝다. 영화 쉬리를 통해 널리 알려진 키싱구라미Helostoma temminckii라는 동남아산 열대어의 입맞춤은 낭만적인 이름과 다르게 수컷끼리 힘을 겨루는 행동이다.
거울 속 자신과 싸운다는 것이 확실하게 보이는 물고기들도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비늘베도라치Neoclinus bryope다. 비늘베도라치 또한 저울베도라치나 대강베도라치처럼 몸이 길쭉하고 큰 입을 가지고 있는데 바위 위 조류를 뜯기 위해 아래를 향한 그들의 입과 달리 비늘베도라치의 입은 좀 더 앞을 향해있고 눈 뒤에까지 입이 벌어져 사납게 보이는 인상이다. 둥지를 지키는 비늘베도라치는 수중사진가들이 즐겨 촬영하는 모델이 된다. 카메라를 밀착시켜도 도망가지 않고 비교적 정면을 향한 눈과 머리에 사슴뿔 같은 돌기까지 있어 재미있는 얼굴 모습이 사진에 담기기 때문이다. 수컷 비늘베도라치가 차지하고 있는 둥지에 다른 수컷 경쟁자가 나타나면 둘 사이에 싸움이 일어난다. 둘은 입을 최대한 크게 벌려 서로 입술을 맞대고 겨룬다. 힘도 힘이지만 입이 큰 쪽이 이기는 것이다. 짓궂게 거울을 둥지 앞에 놓아 보았다. 수컷은 둥지 밖으로 나와 입을 크게 벌려 거울 속 경쟁자와 입 크기 대결을 벌였다. 막상막하 어느 한쪽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펼쳐졌는데 한참 동안 승부가 나지 않자 결국 휴전에 들어갔다. 아니면 경쟁자가 아니라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일 수도 있다.
태평양 건너편에는 프린지헤드Neoclinus blanchardi라는 비늘베도라치와 매우 닮은 물고기가 있다. 크기는 좀 더 크고 몸의 형태나 무늬는 비늘베도라치와 비슷한데 입이 극단적으로 커서 머리 전체가 위아래와 옆으로 벌어지며 입술 안쪽에는 얇은 막까지 펼쳐져 평소 크기의 4배까지 늘어난다고 한다. 싸울 때는 상대를 집어삼킬 듯 입을 벌리고 달려들어 겨룬다. 직접 본 적은 없지만, BBC를 포함한 여러 외국 방송사의 영상을 통해 많이 소개되었다. 언젠가 그 물고기에게도 거울을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