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달랑게의 외형적 특징과 일반적 생태
1년 12달 중 4개월 남짓만 활동하고 나머지 기간은 땅속에서 두문불출하는 게가 있다. 달랑게다.
생김새도 귀여워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다. 다른 게와 두드러지게 다른 것 중 달랑게에게 호감을 느끼게 하는 대표적인 요소가 바로 눈이다. 달랑게의 눈은 유달리 크다. 다른 게보다 조금 더 큰 것이 아니라 몇 배나 더 큰데 일반적인 눈처럼 둥근 것이 아니라 핫도그처럼 길쭉하다. 눈자루까지 있으니 딱 막대 달린 핫도그 모양이다. 사람의 감정은 이유 없이 엉뚱한 대상에게 작용하여 눈이 크고 핫도그 모양이라는 것만으로도 나와 관련 없는 갑각류를 귀엽다고 여기게 된다.
다른 게들도 대체로 시각이 발달했지만 달랑게의 눈이 유달리 크다는 것으로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 즉 밤에도 잘 본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고 어두워도 활발히 움직일 것이라는 추가 정보도 알게 된다.
달랑게를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갑각의 등 면은 정사각형에 가깝지만 몸통이 두껍고 볼록해서 전체적으로 동글동글한 인상을 주며 집게 역시 날카로운 느낌이 아니라 만화나 캐릭터로 만들었을 때의 모양에 가까워 정감이 간다. 다만 유달리 긴 다리는 얼핏 거미나 곤충을 연상시켜 사람에 따라서는 감점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생김새는 그 생물의 생태를 설명하는 열쇠다.
뛰어난 시각과 긴 다리는 그들이 물과 그리 친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밤에도 눈으로 뭔가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은 물속에서 활용도가 높은 후각보다는 시각에 의존한다는 뜻이고 가늘고 긴 다리는 헤엄치기보다는 육상을 빠르게 이동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달랑게는 물속에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헤엄을 못 쳐 파도에 잘못 휩쓸려 깊은 곳으로 가게 된다면 호시탐탐 바닷가에서 갑각류를 노리는 복어 같은 물고기의 밥이 될 것이다. 또 물 밖에 오래 살다 보면 호흡장치도 수중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달랑게는 모래 조간대의 가장 상부에 자리를 잡는다. 자리를 잡는다는 표현을 쓴 것은 집이 영구하진 않다는 뜻이다. 주로 만조선 부근이나 바로 위에 굴을 만드는데 성장 단계나 개체에 따라서도 다르고 계절에 따라서도 위치의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높은 곳의 굴 속에 있다가 썰물 때 물이 빠져나간 후 밖으로 나와 젖은 모래를 퍼먹으며 간조선 가까이 내려갔다가 물이 들어오면 다시 위로 올라와 만조 전에 굴 속으로 다시 들어가 입구를 막고 다음 물때를 기다린다. 최근 관찰한 바에 따르면 물이 빠졌다고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모래에 수분이 사라지고 온도가 올라가야 굴 밖으로 나온다. 이것은 기온의 영향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수온이 차다면 물이 빠져나가 이후에도 체온이 오르지 않아 활동하기 힘들기 때문에 몸을 덮여 생리작용이 원활해진 후에 활동을 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서해안의 넓은 모래 조간대에 사는 달랑게는 최초의 굴에서 나온 후 꽤 먼 거리를 이동하며 먹이를 먹는데 언제든 천적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중간 지점에도 굴을 파고 주변에서 먹이를 먹다가 수상한 낌새가 있으면 안으로 들어간다. 그런 지역에선 소유주가 불분명해서 자기가 판 굴이 아니더라도 일단 가장 가까운 집으로 피신한다. 달랑게가 굴을 파는 모습은 부지런한 일꾼을 연상시킨다. 모래를 한 아름 안고 나와서는 굴에서 좀 떨어진 곳까지 가서 멀리 던져버린다. 그 모습은 딱 사람이 무거운 것을 던질 때를 연상시킨다.
파도에 깎여 매끈하던 모래 위에 크고 작은 모래덩이가 흩어져 있다. 어떤 것은 새끼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불규칙한 덩어리이고 어느 것은 메주콘 크기의 길쭉한 물방울 형태이다. 큰 것은 달랑게가 굴을 팔 때 나온 것이며 작은 것은 모래를 먹고 생긴 흔적이다.
달랑게의 집게는 한쪽이 조금 더 크다. 농게 수컷처럼 극단적인 차이는 아니고 수컷의 경우 약 2배 정도 차이가 난다. 하지만 역할은 분명히 나뉘어 있어 먹이를 먹을 땐 작은 발만 사용한다. 모래를 퍼 먹는 속도는 다른 게들보다 훨씬 빨라서 마치 기계가 움직이는 것 같다. 입 안으로 모래를 마구 밀어 넣으면 턱다리가 부지런히 움직이며 먹을 것과 못 먹는 것을 분리하고 모래 찌꺼기를 뱉어내는데 이 모래엔 수분이 많아 물방울 같은 모양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이 메커니즘을 쉴 새 없이 돌리긴 어려운지 얼마간 퍼 먹은 후엔 잠깐 주저앉아 쉬어 간다. 이 앉는 동작 중에 몸을 좌우로 흔들거리는데 이 모습에서 작명자가 '달랑'이란 표현을 떠올렸는지도 모른다.
큰 다리는 주로 수컷이 결투 또는 과시용으로 사용하거나 뜻밖에 얻어걸린 큰 먹이, 즉 동물의 사체를 뜯을 때 사용한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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