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얄미운 여자애를 죽였다. ‘죽어라 죽어라’ 저주하는 것만으로는 사람이 죽지 않기에, 직접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 애의 얼굴 위로 뜨거운 물을 부어 버렸다. 여자의 싱싱하고 예뻤던 얼굴은 금방 녹아내렸다. 사람을 죽이고 샌드위치를 사 출근을 했다. 새벽, 학교에는 아무도 없었다. 삐그덕, 오래된 교무실 문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열린다. 차가운 새벽빛이 내 자리에 스며든다. 교무실에는 나 혼자 앉아 있다. 나는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내 자리에 앉아 와그작 샌드위치를 씹었다. 고요한 교무실에 샌드위치의 양배추 씹는 소리가 울렸다. 와그작와그작. 멀리에서 삐요삐요, 경찰차의 경고등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창밖을 내다본다. 나의 고난은 아무도 모르더니, 살인은 빨리도 알아채는구나.
2.
19년 전 이혼한 전남편에게 소포가 도착했다. 반갑지 않은, 하지만 묵직한 선물. 전 남편은 소설가 지망생이었다. 나는 그의 가혹한 비평가였다. 그는 이번에도 출간 전 소설을 나에게 보내왔다. ‘수잔에게, 읽어봐 주었으면 좋겠어.’ 이혼 후 그에게 온 첫 연락이었다. 나는 퇴근 후 깜깜한 집에서 밤새 그의 소설을 읽는다. 어차피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지 2주 째다. 잠도 안 오는데, 전 남편의 소설을 읽는 것쯤이야. 나는 점차 그의 소설에 빠져든다. 밤이 새벽이 되고, 새벽이 아침이 되는 것도 모르고 계속 하여 책장을 넘긴다. 그의 소설은 매력적이고, 강렬하게 내 마음을 할퀸다. 그는 나만 알 수 있는 각종 은유를 소설 속에 심어두었다. 나는 그를 배신했고, 상처를 주고 이혼했다. 소설 속 남자 주인공은 텍사스로 가던 중 불한당 무리에게 습격을 당한다. 그는 텍사스의 어두운 고속도로에서 아내와 딸을 빼앗긴다. 아내와 딸은 강간 후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 된다. 가족을 지키지 못하고 끔찍한 시체로 맞이한 고통만큼 나의 전 남편은 아팠던 것이다. 이런 마더퍼커같은 새끼. 이혼하고 19년이 지났는데 ‘너에게 받은 고통이 이만큼’이라고 확인사살하는 소설을 고생스럽게 써 보내는 새끼. 이혼했길 천만 다행이지.
3.
초저녁에 술을 마시고 새벽에 깬다. 소맥인데, 소주 반 맥주 반을 섞어 탄산맛이 조금 나는 소주를 들이킨다. 소주의 향이 강해야 한잔만 마셔도 취한다. 금방 취해야 빨리 잠이 든다. 빨리 잠에 들어야 이 지리한 하루를 끝낼 수 있다. 아무 것도, 아무 일도 나에게만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채로 살아가고 있다. 얼른 잠에 들지 않으면 불안감이 급습한다. 나의 1년 후,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는 어떨까. 서른이 넘어가면 사람은 새로운 선택을 하고 새로운 기회를 잡기 어려워진다. 그간 쌓아온 인맥과 일과 커리어와 능력이 아닌, 다른 것을 선택하기 어려워진다.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기도 하지만 그만큼 용기도 없어지고 게을러지며 비겁해진다. 술이 적당히 취하지 않으면 머릿속을 각종 상념과 불안감, 자괴감이 점령한다. 그렇게 적당히 취해야만 잠을 잘 수 있다. 이게 알코올 중독인가. 술을 마시고 초저녁잠에 들면 새벽에 꼭 깨고 만다. 그렇게 새벽 3시, 4시 쯤 깨어나서 꼬박 밤을 새운다. 그리고 아침에 잠깐 잠들었다가 비척비척 일어나 출근을 한다. 그렇게 산지 두 어달 쯤 된 것 같다.
1번, 2번, 3번. 중 두 개는 최근 본 영화 속의 ‘새벽’들이고 또 하나는 나의 ‘새벽’이다. 아마 어떤 것이 현실이고 어떤 것이 만든 이야기인지, 읽는 분들은 다 아셨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내와 딸을 불한당에게 빼앗기고 흠씬 두들겨 맞은 채 새벽에 텍사스 고속도로를 걷는다. 히치하이킹을 시도해보지만 아무도 피흘리는 남자 앞에서 차를 세워주지 않는다. 그렇게 새벽에 어둔 고속도로를 걷고 또 걷는다. 또 어떤 사람은 질투심과 열등감에 사로잡혀 후배 여교사를 잔인하게 살해한다. 퓨즈가 나가 일을 저지르고도 갈 데가 없어서 새벽에 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사들고 학교에 온다. 그녀의 직업은 선생님이다.(편의점에서 샌드위치를 사는 것은 나의 상상이다) 교무실 몇 개의 자리 중에 하나. 사회에 나오면 ‘내 자리’ 하나를 갖고 지키는 것이 그토록 힘들다. 아마 그 새벽은 그녀가 멀쩡한 여교사로서 가지는 마지막 새벽일 것이다. 다음 새벽은 유치장, 교도소에서 맞이할 지도 모르지. 그리고 세 번째 사람의 새벽은 놀랍도록 지루하다. 너무 지루해서 놀라울 지경이다. 직장을 다니고는 있지만 매일이 무미건조하고 무의미하다. 누구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나에게는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초저녁부터 잠에 든다. 돈을 아끼기 위해 소주를 많이 넣은 맥주를 마신다. 맛이나 재미로 마시는 게 아니라 빨리 취해서 잠드는 게 목적이므로. 그렇지만 머릿속이 무거워 새벽이면 잠에서 깨고 그대로 아침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새벽마다 나는 상상한다. 죽임을 당하거나, 죽이거나, 사건의 당사자가 되어 고통스러운 밤과 새벽을 맞이하는 것보다는 아무것도 없는 새벽이 낫지 않은가. 새벽이란 원래 고요하고 지루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