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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Nov 28. 2023

교사는 내게 더 이상 좋은 직업이 아니야

교직을 포기할 수 있었던 까닭.

 결정을 내리기 직전까지도 교사라는 직업을 이리 단숨에 놓아도 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교육대학을 가기 위해 노력했던 학창 시절과 교사 타이틀을 얻으려 보내온 학부 4년. 인생에서 도합 몇 년씩이나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었으며, 적성 면에서나 가치관 면에서나 내게 어느 하나 빠질 것이 없었던 직업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신분이었던 '교사'. 교사로서의 나는 어디서나 사랑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를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지탱해 주던 삶의 큰 축 하나를 내려놓는다는 각오가 쉽사리 솟아나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교사를 그만두리라 결정을 내려버린 시점부터는 나라는 사람에게 '교사'는 더 이상 좋은 직업이 아니게 되었다. 지난 편에 말했던 것처럼 학교를 실제로 그만둘 날은 내년 3월 1일이다. 올 4월 교사를 그만두겠다고 마음먹은 후 반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 그만 둘 마음을 먹은 채로 교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는 뜻이겠다. 이 기묘한 상황은 나로 하여금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한 발 떨어져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뜻밖에도, 하루하루 지나며 드는 확신은 '이 직업을 계속해나갈 이유가 없다'였다. 나에게 있어 교사가 오직 이점뿐인 직업이 아니게 된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 물론 객관적인 평가가 아닌 주관적인 평가라는 점, 나와 다른 가치관을 가진 누군가들에겐 여전히 최고의 직업이며 많은 부분 동의한다는 점을 미리 짚고 넘어간다.




1. 나는 대충 살고 싶지 않다

  공무원 집단의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이 꼽을 공무원의 제1 장점은 '웬만해서는 잘리지 않는다'는 점이겠다. 범법의 범주에 들어갈 사고를 유발하지 않는 이상에야 어지간한 사건사고로는 절대 잘리지 않는 철밥통. 숱한 부모님들의 희망 자녀 직업 1순위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까닭도 아마 이 부분에서의 많은 지지가 있었기 때문일 거다. 공무원의 장점을 하나 더 꼽으라면, 공무원 직업 선택에서 이 부분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젊은이들도 많으리라 예상하는데, 규칙적인 출퇴근 시간과 이로 파생되는 워라밸이다. 모두 아는 사실 길게 말해 뭐 하랴. 그리고 이 두 가지 장점을 가장 잘 누릴 수 있는 직업이 어쩌면 바로 '초등학교 교사'라고 할 수 있다. 철밥통, 다른 공무원보다도 이른 퇴근 시간, 일 년에 두 차례 찾아오는 방학. 물론 이 업계에 몸 담아 본 사람들은 '철밥통'이라는 범주에 교사를 넣기엔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고 할 테지만, 여전히 대국민적 인식은 별반 다를 바 없는 듯하다.

 여하튼, 상기 기술한 내용에서 지극히 기회주의자적 관점으로 접근해 본다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낼 수도 있다.

'교사로서 심각한 사고만 피하는 선에서, 최대한 대충 일하고 정시 출퇴근하며 저녁·주말·방학의 여유를 만끽하는 것이 에너지 대비 효율을 가장 극대화할 방법이구나.'

 여전히 교사 신분으로 지내는 중 다소 민망한 결론이지만 어쨌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나조차도 연차와 내공, 동시에 고충들이 쌓여가며 슬그머니 저런 생각이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오해는 마시라. 삶의 목적 자체가 교육에 있고, 연봉과 상관없이 교직을 통해 자아실현을 이루시는 훌륭한 교사들도 못지않게 많다. 그런 선후배님들께는 늘 존경과 응원을 보낸다. 단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 뿐이다.

 '대충 할수록 이득이다.', 어쩌면 공무원의 특장점일 수도 있는 이 말에서 최근 나는 심히 거부감을 느낀다. 왜일까? 어쩌면 나도 어느 때엔 근무 시간을 최대한 대충 보내기 위해 애썼을 텐데. 나의 마음을 곱씹어 보며 '대충 할수록 이득이다'라는 말이 내게 구토감을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보려 노력했고 번득, 알 것 같았다.

나는 대충 살려고 사는가?

 아니다. 나는 대충 살고 싶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살고 싶지만 내가 있는 자리는 '최선을 다해봤자 뒤따르는 보상이 없는 자리'였을 뿐이다. 경험한 바, 직장에서 쏟은 에너지와 결과에 따라 정량적으로 변하는 보상이 없다는 것은 심한 무기력감을 유발한다.

 '나는 최선을 다해 살고 싶고 최선으로 일군 것들에 대해 적합한 보상을 얻으며 살아가고 싶다. 그런 목표지향적인 삶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이 나라는 사람이다.'

 이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으며, 교사를 더 이상 계속하지 않아도 좋을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2. 나는 본업에서 자아실현을 이루고 싶다

 첫 번째 이유를 기술하며 꼽았던 교사의 장점 중 하나는 '여유롭고 자유로운 시간 운용'이다. 나는 소위 시골 교사다. 인구가 10만여 명 되는 소도시에서 재직 중인데, 연고도 없고 누릴 것도 부족한 이 도시에서 '시간이 많다'는 것은, 사실 내게 있어 다소 고통이었다. 광역시에서 나고 자라 생활 구역이 고향을 벗어난 적 없던 탓인지 그간 크게 심심치 않게 살았던 것 같다. 발령 후에야 비로소 내가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견디기 힘들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재미가 있건, 의미가 있건, 발전하는 게 있건. 여가시간이 주어진다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세 가지 중 하나는 해야 했다. 편안하기만 한 건, 별 보람이 없었다.

 그런 탓에 몇 년간 일하면서 많은 취미를 가져본 듯하다. 잦은 여행은 물론이거니와, 본래 글쓰기를 좋아했던 때문인지 시 쓰기에 빠져 400여 편 정도 시를 쓰면서 시즌이 찾아오면 각종 문예지에 투고해보기도 했고, 고전세계문학에 빠져 한동안 고전을 백 수십 권 독파하기도 했다. 배구 동호회, 풋살 동호회, 러닝, 스케이트보드. 죽어라 운동에도 빠져보았는가 하면 MIDI작곡을 배워 노래와 음악 수십 곡을 만들어도 봤다. 이뿐이랴, 카메라를 구입해 사진에도 관심을 가졌고 학창 시절 배웠던 통기타나 드럼, 하모니카 같은 악기들을 다시금 연주하기도 했으며 올해에는 제빵에도 흥미를 가져 제빵기능사 자격증을 땄으니, 이 정도면 직장인치곤 나름 취미 부자였다고 자부할 만했다.

 즐거웠는가? 물론 하나의 취미에 빠져 지내는 시즌에는 즐거웠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는  늘 공허했다. 낱낱의 취미들이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가 될 수는 있겠지만,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근원적 동기부여는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취미생활로는 자아실현을 할 수 없었다. 나는 깨달았다.

 나는 본업에서 자아실현을 이루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나는 여전히 교사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그간의 교직 생활은 나의 내면을 보다 단단하게도, 유연하게도 단련시켜 주었다. 결과적으로 사업을 위한 자금 마련의 장도 되어 주었다. 시간적 여유가 많아 경제와 투자 공부도 많이 하게 해 주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겪게 해 주었다. 사색할 시간을 주었다.

 하지만 자아실현을 이루지는 못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내가 원하는 것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지금 계획 중인 첫 번째 사업, 그리고 그 이후 이어나갈 또 다른 걸음들까지도. 나는 교사를 벗어나 내가 계획한 인생 안에서 내가 도전한 목표들을 달성하며 자아실현을 이루어 갈 거다. 그게 두 번째 이유였다.



3. 나는 멈춰있고 싶지 않다

 '대충 살고 싶지 않다'는 첫 번째 이유와 비슷하기도, 전혀 다르기도 한 내용이다. 말 그대로 나는 멈춰있고 싶지가 않다. 중학생 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던 나보다 더 멋진 나였다. 고등학생 때, 나는 중학생이었던 나보다 더 멋진 나였다. 대학생 때, 나는 고등학생 때보다 더 멋진 나였다. 대학을 졸업하며 임용고시를 합격했을 때는 감사하게도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나 많은 사랑과 애정을 받았다. 첫 발령이 나고 첫 담임을 맡고 첫 제자들을 가르치고. 내 인생의 자기만족 지표는 끊임없는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멈췄다. 교직생활을 시작한 지 일 년, 이 년, 삼 년, 사 년, 오 년. 교직생활을 시작한 처음과 무엇이 달라졌는가? 무엇이 발전했는가? 사실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직장생활을 하며 돈을 모으는 것을 더러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정체된 나'를 견딜 수 없어서 미친 듯이 취미를 가져보았는지도 모르겠다. 불현듯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공포스레 다가온 생각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내 인생의 전성기는 이미 지나가버린 것일까?'


 인정하기 싫었다. 사실 인정하고 자시고 생각 조차 싫은 말이었다. '어제보다 빛바랜 나'를 벌써 마주하기에는 아직 내가 너무 어리고 잠재력이 있다고, 스스로 여겼기 때문인 것 같다.


 각자의 전문 분야를 개발한다거나 각종 대회를 목표로 한다거나 등등, 교사 발령 다음의 목표를 갖는 다양한 선생님들이 계신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교직생활의 다음 스텝은 보통 '승진'인 경우가 많으며 방금 전 이야기한 여러 목표들도 결국에 승진의 수단으로써 존재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나는 승진에 관심이 없었다. 교사로서 교육 현장에서 멀어진다면 여태 시시하다고 여겼던 보통의 행정직 공무원이 되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행정직 공무원을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으니, 공격적인 언어로 느끼신 독자님 계시다면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교사로서의 다음 스텝이 없는 채로는 더 이상 발전된 나를 기대할 수 없었다. '더 멋진 나'를 기대하며 살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현재의 나'를 놓아줄 수밖에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것이 교직을 그만두는 것이 더 이상 안타깝지 않았던 세 번째 이유였다.




 교사를 그만두는 선택이 옳은 선택이라는 확신이 드는 데까지 가장 큰 기여를 했던 것은 앞의 세 가지 이유들이지만, 이 밖에도 수많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선택이 도망치기 위함이 아니라 가고 싶은 길로 걸어가기 위한 선택이라는 사실을 매일매일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매일 아침 스스로 던지는 질문, '나 후회 없을 선택을 한 게 맞아?'에 대한 대답이 끝끝내 변하지 않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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