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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Dec 05. 2023

엄마 아빠 저 교사 그만둘래요

부모님께 사직 계획을 알리다.

 이 말을 듣고 얼마나 황당하셨을까. 어릴 적부터 교사가 되리라는 자식의 노력과 선택들을 모두 지켜봐 온 부모님은. 부모님이나 나나, 그간 인생의 숙제라고도 할 수 있는 것들을 착실히도 해결해 왔다고 여기던 참이었는데. 입시, 입대, 학위, 취업. 교사가 되기 위해 그간 쉬지 않고 열심히도 달려왔다. 하루도 신분이 없었던 적 없이. 심지어 입대 전날과 전역 바로 다음 날에도 학교 출근했. 이젠 대략 결혼과 자녀 양육 정도가 삶의 다음 미션이라고 생각되던 직장인 7년 차에, 인생은 급변하고 말았고 아마 이제 그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쌓아가야 할 테다.

 여태 해온 숙제들이 의미 있는 것이었을까? 훗날 스스로에게 그 시간들이 분명 의미 있었노라고 말해줄 수 있었으면.




 무언가 인생을 뒤흔들 만큼의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면 가장 먼저 가족에게 알리고 상의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점이 나에게 참 시험과도 같았다. 나는 여태 부모님 속을 좀처럼 태운 적이 없는 모범적인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러했기도 하며 조금 문제 될 만한 일이 있더라도 부모님 모르게 잘 넘겨왔기 때문에. 하여간 아들 입에서 교사를 그만둔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반응을 예상하니 적지 않은 부담이 밀려왔다. 별 수 있겠는가. 눈 딱 감고 이야기 해야지. 나는 보통 한 달에 한 번 정도 본가에 방문하곤 한다. 더 회피해 봤자 득이 될 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4월 말, 빵 몇 종류를 구워 본가에 내려갔다.


 평소처럼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선 가져온 빵들을 꺼내 후식으로 먹자고 이야기했다. 내가 만들었다는 말 대신 맛있어 보여 사왔다는 거짓말과 함께. 엄마는 미식가였기 때문에 엄마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과해 보리라는 도전의 동기도 있었다.

 다행히 부모님 모두 빵을 맛있게 드셨다.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빵 중 하나가 베이글이었던 터라 긴장을 했었는데, 반응이 괜찮으니 용기가 났다 가슴 떨리는 마음으로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 아빠, 저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교사를 그만두려구요."


 아이고-

 아빠의 다소 익살 섞인 탄식 소리가 먼저 들렸고, 엄마는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정말이지 예상이라고는 전혀 못했을 아들의 말이었을 거다.

 정적 속에서 나는 그간 품어왔던 마음들을 하나 둘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직장생활 몇 년간 겪은 가치관 변화, 창업을 마음먹은 계기, 교사를 그만둬도 후회 없을 이유들. 방금 전 나눠먹은 빵이 내가 만든 것이라는 사실과 함께.


 엄마의 절대적 지지와 아빠의 걱정 섞인 만류를 예상했던 터였는데 예상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 두 분 모두 아들의 폭탄 같은 선언 덕에 머릿속이 복잡해져서인지 무언가 핵심적인 말씀은 잘 하지 못하셨지만, 아빠의 조용한 수긍과 엄마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아빠는 당신 인생에서 큰 선택과 변화를 몇 차례 겪으셨기 때문이었으려나. 생각보다 무던하게 받아들여 주신 아빠와는 반대로 엄마는 많이 놀랐다. 나중에 듣기로는 신경을 많이 쓰신 탓에 며칠간 아프셨다고 한다. 하여간 숙제였던 말들을 마치곤 다소 무거운 공기 뒤, 속마음은 되레 후련했다.


 그 뒤로 여태껏 엄마와 전화를 할 때면 늘 듣는 단골 멘트가 있다.

 '계획에는 변화 없니? 교사를 계속하는 것도 괜찮지 않니?'

엄마껜 미안하지만 늘 같은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의 걱정도 없지는 않았다. 그 이후 본가에 가는 날이면 아빠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곤 했다. 사업 계획, 인생 계획, 앞으로의 거취, 이런저런 고려 사항들에 대한 대비책, 등등. 아마 아들의 진정성과 현실감각 같은 것들에 대해 보다 깊이 알아보고 싶으셨던 듯하다.




 8개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더 이상 나를 설득하지 않으신다. 심지어 이젠 도움을 주려 애쓰신다. 한 번은 두 분이서 다니다가 빈 상가에 붙은 현수막에 전화를 걸어 내게 주변 상가 시세들을 알려주시기도 했다.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가게 사장님께 자영업자로서의 조언을 구해 나에게 공유해주시기도 한다. 빵에 어울릴 재료들을 추천하거나 신문 기사를 스크랩해주시기도 한다.

 두 분 모두 사업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오셨다. 당신들로서는 막막하고 척박하기만 한 고생길에 뛰어드는 아들이 많이도 걱정되실 거다. 아마 아직도 미련 계실 설득과 만류의 말들을 삼키고 이렇게 아들을 응원해 주시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얼마 전에는 부모님께 사직원을 냈다고 말씀드렸다. 별로 놀라지는 않으셨다. 아들의 지긋지긋한 고집에 이제는 백기를 드신 걸까. 걱정을 끼쳐드린 것에 아주 많이 죄송하다. 나를 걱정해 주시는, 나를 응원해 주시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교사로 일했을 때보다 인생을 더 즐겁게 누리는 모습을 보여드리리라 다짐했다. 사랑하는 부모님께는 아들의 행복한 모습이 가장 큰 보답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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