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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Dec 03. 2023

자격증, 꼭 따야 하나요

제빵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다.

 카페를 차리는 데에 바리스타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듯 베이커리를 차리는 데에도 제과·제빵 기능사 자격증이 필요하지는 않다. 해당 업계에 오래간 종사해 온 지인에게 들은 바, 노동 강도로 인한 퇴사율이 높은 대형 베이커리일수록 오히려 자격증 여부는 보지도 않고 '일단 입사해서 배우라'는 분위기가 많다는 것이다. 취미 삼아 디저트나 베이커리를 만들어 보던 소위 홈베이커들이 적성을 찾아 전문점을 차릴 때에도 자격증보다는 개인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개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내가 자문을 구한 지인의 의견을 빌리자면, '어차피 아무도 해당 가게의 파티시에가 자격증이 있는지 없는지를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듣고 보니 수긍하게 되었다. 예컨대, 일식당의 초밥이 맛있기만 하면 셰프가 자격증 보유자인지 전혀 관심 없이 그저 식사를 즐기기만 하는 것처럼. 그런 맥락이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나도 베이커리 카페를 차릴 예정이지만 제빵기능사 자격증 취득에 대해서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유야 몇 가지 들 수 있었는데, 일단 가장 큰 것은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괜히 귀찮다'였고, 나는 많은 종의 빵을 생산한다기보다는 단일 품종에서의 다변성을 추구하는 형태의 사업을 구상 중이었기 때문에 20종류나 되는 제빵기능사 품목을 일일이 공부하기가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다. 또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필기와 실기를 준비하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았고, 주변에 다닐 학원이 마땅찮다는 점도 한몫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제빵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했는데, 내 선택이 '귀찮음'으로 향하지 않은 까닭이 사실 드라마틱하게 있지는 않다. 제빵을 시작한 봄 무렵, '베이글 전문 카페'를 차리겠다는 다짐과는 또 별개로 제빵 행위에 대해 순수한 흥미가 생겼다고 일전에 말한 적이 있다. 그 이후 취미생활의 일환으로 틈틈이 제빵을 했다. 요즘 시대에야 무언갈 검색하면 친절하게 다 알려주지 않나. 만들고 싶은 빵이 있을 때마다 방법을 조사해서 실습하곤 했는데, 이 과정에서 제빵기능사 실기 품목들 중 몇 가지도 만들어 보게 되었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다 문득 '취미로 즐기며 해도 결과물이 괜찮으니 에너지를 더 투자하면 자격증을 딸 정도도 되지 않을까?'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즈음,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을 여름 방학을 놀기만 하며 허투루 보내기보다는 무언갈 성취하는 시간으로 활용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방학이라는 더 이상 누리지 못할 교사로서의 특권을 의미 있게 누리고 싶었는가 보다.


 두 가지 문제를 조율해야 했다. 실기 연습 장소와 실기 시험 일정. 필기시험이야 편도 40분 정도의 옆 도시에 시험장이 있었기 때문에 직장 일정에도 큰 구애를 받지 않고 반차를 사용하는 등의 방법이면 충분히 응시할 수 있었다. 문제는 실기였는데, 상대적으로 가까운 도시에서 시험을 응시하려면 평일밖에 시험이 열리지 않았고, 주말에도 시험이 열리는 서울 등 대도시는 꼬박 1박을 지낼 일정을 만들어야 가능했을 정도로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평일을 활용할 수 있는 여름방학 기간에 맞게 실기시험을 치러야 했다.


 일정을 알아보니 7월 초에 열리는 필기시험에 합격해야 8월 초에 열리는 실기시험에 응시할 수 있었다. 그것을 알게 된 시점이 6월 중순이 넘어가던 시점이라 당장에 시험 응시를 하고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 썩 내키지 않기는 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필기시험 신청을 하고 벼락치기를 시작했다. 국가 기능사 필기시험은 100점 만점에 60점 이상을 획득해야 합격이다. 학창 시절에는 으레 고득점을 해야만 성취를 얻었기 때문인지 60점이라는 점수가 만만하게 보였다. 이론 공부를 하고 기출문제를 몰아서 풀어보는데 예상만큼 쉽지만은 않았다.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공부를 적당히 열심히 한다면 붙을 수 있을 수준이었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선까지 공부하기 전까지는 60점을 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대신 그 선을 넘는 시점부터는 거의 70점 이상이 고정적으로 나왔다). 다행히 나는 기준 점수를 안정적으로 넘었고, 필기시험에 무난하게 합격했다.


 실기시험을 준비하기 전까지 조금 안일하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공부하기 번거로운 필기시험만 붙고 나면, 그다음이야 어차피 스스로 재미있어하는 제빵 실기이니 즐기면서 수월하게 준비할 수 있겠다' 비슷하게. 굉장히 오산이었다.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실습 장소였다. 나는 어떤 분야에 취미를 가지든 어지간하면 독학으로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물체나 신체의 운동 원리를 파악하는 것을 재미있어하기도 하고 곧잘 핵심을 짚어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관성에서 나는 이번에도 학원 수강이 아닌 혼자 힘으로 공부해 해결하고 싶었다. 장소 섭외는 다행히 해결이 되었다. 디저트 카페를 운영하던 나의 최측근 지인의 양해를 구해 3주간 하루 한 번 오븐 및 주방 사용을 허락받았다. 대신, 시간 운용이 자유운 방학이었기 때문에 가게의 이런저런 잡일을 도와주는 조건으로. 친구의 가게는 디저트(제과)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라 제빵 설비가 부족하긴 했지만 나름 임기응변으로 해결할 만한 정도였기에 그날부터 나는 하루에 한 종류씩 총 20개의 빵을 매일매일 만들게 되었다. 이전에 몇 번 만들어 본 종류도 있고 처음 만드는 종류도 있어서 난이도는 천차만별이었다. 정신없이 연습하다 보니, 시험 날이 되었다.

 제빵기능사 실기시험에 대해 안일하게 생각했다고 한 또 다른 이유는, 구비해야 할 개인 장비가 많다는 것이다. 베이킹을 할 때는 웬만하면 손에 익은 장비를 사용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시험 날 내 커다란 백팩 안에는 위생복과 모자, 각종 크고 작은 조리 도구들, 전자저울, 사무용품 등등, 없는 것이 없었고 그날은 여름 중에서도 한여름이었다. 대부분의 시험장에는 주차가 불가하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타고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시험장, 어떤 품목이 나올지 떨리는 심정으로 기다렸다.

 굉장히 큰 호재가 나를 반겨주었다. 시험 품목이 '베이글'인 것이다. 베이글이라면 그때까지 못해도 몇십 번은 만들어 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하던 대로 한다면 합격은 따놓은 당상이라 여겼다. 그런데 웬걸, 2주 뒤 통보받은 시험 결과에는 보란 듯 '불합격'이 쓰여 있었다.

 시험은 시험이었다. 객관적 평가 기준이 있는. 내가 선호하는 크기와 굽기로는 시험의 정량적 평가에 부합하지 않았는가 보다. 예상외의 결과에 낙심도 잠시, 나는 떨어진 그날 또다시 다음 실기시험 날짜를 잡아야 했다. 가장 가까운 다음 시험 날짜는 한 달 뒤로, 개학 이후였다. 당연히 평일은 안 되었기에 나는 번거로움을 무릅쓰고 1박 2일 일정으로 서울에서 시험을 치게 되었다.

 2번째 도전에서는 완전히 평가 기준 충족에 충실한 방향으로 준비했다. 연습할 때도 자기만족보다는 평가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 연습을 하느라 즐거움이 덜하고 스트레스가 심했다. 두 번째 실기시험의 품목이었던 '그리시니'의 평가 기준을 맞추고자 반죽의 길이를 자로 재고 무게 계량에 사활을 거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실기 시험에 합격하게 되었다. 두 번째에 붙어서 다행이지, 만일 연달아 불합격하여 한 달 뒤 또 서울에 올라갔을 것을 생각하니 지금 와선 아찔하다.




 우여곡절 끝에 제빵기능사 자격증을 손에 넣게 되었고, 시작했을 때의 가벼운 마음과는 다르게 자격증을 취득했을 때의 성취감이 말할 수 없이 기뻤다. '1급 정교사 자격증'과 '제빵 기능사 자격증'. 이제 두 가지의 국가 자격증이 생겼다. 새로운 자격증에서의 분야가 새로운 본업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설레었다.

 개인적 성취감 이외에도 자격증 공부를 하며 얻은 점들이 많다. 예상치도 못하게, 필기시험을 공부하며 제과·제빵의 전반적인 프로세스, 재료 관리, 기구의 특성, 각종 기법들의 이론적 바탕들 같은 실무 친화적 지식이 굉장히 많이 생겼다. 혹시 제과·제빵을 취미로 하는 독자가 계시다면 기능사 필기 과목 공부를 한 번 해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두 번째는, 다양한 종류의 빵들을 만들어 보면서 얻은 경험적 근거이다. 특정 재료의 배합량 변화가 반죽에 주는 영향, 굽기 시간에 따른 변화, 반죽기나 오븐의 종류별 장단점, 빵의 모양을 잡는 노하우. 아마 당장 생각나지 않는 다른 지식들도 더 많이 쌓였을 거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두 군데의 시험장을 겪으면서 '제빵인'으로서 기대 이상의 수준 향상을 이뤄낸 듯하여 굉장히 뿌듯하다.

 자격증, 꼭 따야 하는가? 그럴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분야의 자격증을 가능하면 딸 것을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바이다. 겪은 바로는, 소위 전문 지식은 아마추어로서 배울 수 있는 지식과는 결이나 질이 달랐다. 자격 취득에 재미가 붙어, 제빵분야처럼 국가자격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겨울방학을 통해 사설로라도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자 계획 중에 있다.

 

 세상에는 취득하기 쉬운 자격증도 있고 어려운 자격증도 있다. 나에게 있어 정교사 자격증은 시간과 에너지를 장기간 들여야 하는 어려운 자격증에 속했고, 제빵기능사나 바리스타 자격증은 비교적 취득이 쉬운 자격증에 속한다. 쉬우면 어떻고 어려우면 어떠랴.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공부하는 행위는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배움에 대한 나의 열정이 언제고 꺼지지 않는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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