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말하자면 요리인은 아니다. 식재료와 조리법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부재할뿐더러 배워본 적도 없다. 그래도 요리하는 것을 즐기는 편이라 '요리가 취미다'라고 말할 정도. 딱 그 정도 되는 것 같다. 자신 있는 요리 몇 가지가 있지만 자랑할 수준은 안 되고, 내가 자신할 분야는 따로 있다. 바로 '가진 바 한정적인 재료로 무언가 만들어 내기'이다. 냉장고 속의 재료와 양념들을 활용해 어떻게든 끼니 할 요리 한 가지를 만드는 것. 5년이 넘는 자취생활 대부분 날마다 한 끼는 무언갈 만들어 먹었기 때문에 연습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또 한 가지 자신 있는 분야를 꼽으라면 '맛 조합하기'이다. 어릴 때부터 '어떤 음식을 어떤 소스에 찍어 먹느냐' 혹은 '어떤 음식과 어떤 음식을 동시에 먹으면 맛있는가'를 탐구하고 신경 썼다. 초등학생 때는 식빵을 떡볶이에 찍어 먹는다던가 급식으로 나온 여러 반찬을 섞어 먹는 모습에 친구들이 이상하게 쳐다봤던 기억도 어렴풋이 난다.
난 아쉽게도 고급 입맛을 타고나진 못했다. 그럼에도 보편적이지만 창의적인 입맛을 가진 덕이었을까. 창업을 앞두고 몰두해야 할 메뉴 개발이 내겐 재미있는 일이었다. 어쩌면 그 과정이 퇴근 후 교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힐링 타임'이었던 듯도 싶다.
소비자에게 판매하여 반응을 살필 날이 아직 멀지만 그날을 고대하고 있다. 늘 내가 만든 음식을 다른 사람이 맛있게 먹어줄 때 보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스스로 먹기 위한 음식을 요리했을 때보다 훨씬 더. 미래의 고객들이 내 가게에서 행복한 한 끼를 누리는 장면을 미리 상상해 본다.
그간의 메뉴 개발이, 그리고 여전히 진행 중인 이 과정이 굉장히 즐겁다. 남의 레시피를 따라하지 않고 스스로 개발하는 행위는 나로 하여금 큰 성취감을 준다. 가설→검증→피드백→변인수정→재검증이라는 일련의 과학적 실험 과정에서, 내가 세운 가설에 대해 긍정적인 피드백을 이끌어 낼 때는 더없이 보람차다. 물론 실험할 때마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각 재료의 알맞은 비율 분배를 위해 몇 번이고 용량을 조정했던 메뉴가 숱하다. 실험 끝에 폐기되는 아이디어가 있을 때는 실패감이 들기도 한다.
반면 첫 메뉴를 개발했던 날처럼 행운이 따르는 날도 있다. 가끔 단번에 메뉴 개발이 성공하면 더없이 기쁘다. '예상이 들어맞았을 때의 짜릿함'은 몇 번이고 질리질 않는다. 하지만 만일 실패하여 버려지는 재료와 아이디어가 생기더라도 이 과정을 실무 능력 향상에 대한 투자로 여기고 있다.
기존의 레시피를 따라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모방적 사고로 힌트를 얻은 메뉴들 물론 많다. 요즘 같은 시대엔 좋은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하나의 기술이니까. 또 시행착오를 줄임으로써 시간적·경제적 자원을 절약할 수 있기도 하다. 다만 자처하여 시행착오를 겪어보는 이유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기 전에 최대한 많은 실패들을 경험하기 위해서다. 창업이후에는 실패해 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테니 지금의 여가 많은 일상을 활용하는 중이다.
경험상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엔 '번득이는 무언가'가 없었기에, 성공을 위한다면 결국엔 스스로 무언갈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느낀다. 어느 분야든 고수가 넘치는 세상이기 때문일까. 남을 따라하기만 해서는 성공할 자신이 없다.
요즘엔 '실행해 보는 일'만큼이나 '살펴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혼자만의 메뉴 개발에 빠져 시장에 등장하는 새로운 제품과 트렌드를 놓치고 사는 것은 창업가로서 주객이 전도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몸담을 분야에서의 유연한 실무 능력이 중요하지만서도 나는 여태 그랬듯 '유능한 제빵인'보다는 '능력 있는 창업가'가 목표이기 때문이다.
내 첫 사업의 펀더멘털이 되어줄 '제조 기술' 만큼이나 '예비 사업가로서의 넓은 시야'도 가질 수 있도록 애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