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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Dec 09. 2023

새로운 삶을 위해 포기해야 할 것들

그리고 포기할 수 없는 것들도.

 관성이란 무섭다. 먹어오던 것을 먹고, 해오던 일을 하고, 좋아하던 것을 즐기고. 예측 가능한 삶을 사랑하던 나 또한 언제고 관성에 충실했다. 그간의 방향을 선회할 마땅한 당위성도 없었을뿐더러 새로운 불편과 시행착오를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 비슷한 시간에 자고 일어나 비슷한 업무를 하고 비슷한 여가를 즐겼다. 익숙한 사람들을 만나고 익숙한 곳을 오갔다. 안락하게 낡아가던 날들이었다.

 지극히 사소한 것이 바뀌더라도 삶에 어떤 나비효과가 찾아올지 예측할 수 없다. 한해간 내린 나의 결정들 또한 앞으로의 많은 것을 변화시킬 것이며 어떤 것들은 벌써부터 변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교직을 떠나 창업에 뜻을 두리라는 나의 선택'이 야기할 여러 가지 포기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도.




포기할 것 하나, 육신의 편안함

 일곱 시 반에 일어나 여덟 시 반까지 출근하고 네시 반에 퇴근한다. 다소간의 여가를 즐기고는 열한 시가 넘어 잠자리에 든다. 육신의 관점에서 보자면 다분히 편안한 일상들이다. 누군가에겐 매우 가치로울 워크-라이프 비율이랄. 그러나 아침잠이 많은 내겐 사실 이 마저도 피곤하게 느껴지곤 했다. 업무 강도의 증가와 휴식 보장의 불분명성으로 인한 체력적 부담은 다소 게을렀던 내가 분명히 각오해야 할 요소다.


기존: 적당하고 반복되는 업무 강도, 규칙적인 생활 리듬, 저녁과 주말을 통한 휴식 보장 가능성.
변화: 한층 높아진 업무 강도, 생활의 패턴의 불규칙성, 온전한 휴식에 대한 불분명함.

 


포기할 것 둘, 취미생활

 다양한 취미생활을 소소히 즐기는 타입이다. 지금까지는 '하고 싶은 것'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취미생활을 선택했다. 여가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았기도 하고 개인적인 선호 이외에는 딱히 고려할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가시간이 줄어듦으로 인해 취미생활에 할애하는 시간적 파이를 줄여야 할 필요성이 생긴다. 결국엔 선택 해야 할 수밖에 없다. 이것과 저것 모두 할 수 없으니 한 가지를 취사선택 해야만 하는. 그 기준이 앞으로는 절대적으로 '사업을 해나가는데 이로움을 주는가'이지 않을까 싶다. 예컨대 기존에 즐기던 스케이트보드나 축구, 농구같이 부상 위험이 따르는 활동은 되도록 피해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 대신 체력 증진에 도움이 되는 운동을 해야 할 거다. 유쾌하지만은 않다. 독서 또한 형태를 달리 해야겠다. 이 부분은 이미 몇 개월 전부터 변했는데, 문학작품만 읽던 기존 성향에서 이제 문학 비중은 대부분 줄이고 정보 습득성의 도서를 주로 읽게 되었다. 유익한 면도, 아쉬운 면도 있다. 바뀐 독서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편에서 보다 자세히 풀어보도록 하겠다.


기존: 즐기고픈 취미가 생기면 망설임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
변화: 제한된 여가시간 안에서 최대한 사업에 이로움을 주는 취미를 취사선택 하여야 함.



포기할 것 셋, 여행

 내가 즐겼던 여행은 스케일이 크지 않은 소소한 들이었지만 일 년에 몇 차례 떠났던 여행들은 분명 내 삶에서 비타민과 같았다. 혼자 떠나는 국내 여행, 친구와의 해외여행, 가족과의 정기적인 휴가. 다른 직장인들보다 비교적 잦은 여행이 가능했던 이유는 교직이 가진 특수성 이었다. 첫째로는 방학인데, 방학이 되면 연수와 수업 연구를 목적으로 여행을 다니는 것이 원칙적으로 가능하며 상황에 따라 권장도 되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여행하는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나 프리랜서와는 다르게 공무원과 직장인은 휴일과 휴무에 일을 하지 않아도 경제적 손실을 겪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 창업한다면 휴무가 불러오는 기회비용에 대해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기존: 여행 비용을 지불할 의사만 있다면 시간적 여유는 충분함.
변화: 여행을 떠나는 모든 시간이 경제적 기회비용임.



포기할 것 넷, 친구들과의 시간

 나이 불문 마음 맞는 사람들을 '친구'라 칭한다면, 내게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학업, 직장, 이런저런 곳들에서 친분을 쌓은 멋진 사람들과 지금만큼 잦은 교류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또 하나의 아쉬운 점이다. 여태 당연했던 소소한 수다, 여가, 모임들이 당연하지 않아질 것이고 그 이유가 '내가 바빠서'가 될 것이라 생각하니 각박한 느낌도 든다.


기존: 친구들과의 모임을 계획하는 데에 별다른 장애물이 없었음.
변화: 그간 안타깝게 여겼던 '바빠서 모임 참석이 어려운 친구'가 앞으론 내가 될 것임.



 아마 더 있겠지만 생각나는 대로 몇 가지 나열해 보았다. 새로운 삶을 위해 포기할 소중함이 많기도 하다. 그럼에도 누구에게나 포기 못 할 것들이 있기 마련이고, 아래에는 그 내용으로 이어나가 보겠다.



포기하지 못하는 것 하나, 신앙생활

 무언가 감동을 전하는 내용을 쓰기엔 고작 한 명의 '매일 흔들리는' 신앙인일 뿐이다. 모태신앙으로서, 올해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성경을 완독해 보았다는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내게 내재된 신앙의 형태가 감성에 호소하는 면이 짙던 학창 시절의 그것과는 또 다르게 변화함을 느낀다. 알량한 나의 합리로는 자취도 좇기 힘든 거대함. 우주 만물을 관장하는 진리에 대한 탐구는 언제나 즐겁고, 알아갈 수 있음에 감사한 일이다. 코로나 장기화로 전처럼 충실할 수 없었던 신앙생활에 대한 회복이 사업을 위한 본교회 회귀를 통해 보다 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포기하지 못하는 것 둘, 스스로를 가꾸는 일

 내면과 외면 가꾸기를 모두 포기할 수 없다. '어제보다 발전한 나'를 느끼는 순간엔 참 행복하다. 매일 발전하기 위해 앞으로도 꾸준히 독서와 사색,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로 나의 내면을 건강하고 내실 있게 가꾸어 나갈 거다.

 외면 가꾸기라는 말에 오해는 마셨으면. 미남도 아니고 패션인도 아니다. 내가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비만 예방과 청결 유지, 깔끔한 인상 등 최소한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것들에서의 가꾸기이다. 여태 그랬고 사업을 하게 될 앞으로는 더 중요할 테지만 타인이 느끼는 나의 첫인상이 '호감'이 아닐지언정, '비호감'이고 싶지는 않다는 게 소박하지만 어쩌면 큰 바람이다.



포기하지 못하는 것 셋, 정체성 잃지 않기

 '유능한 제빵사'나 '능력 있는 매장 운영자'가 내 인생의 목표는 아니다. 모두가 그렇듯 나에게도 많은 정체성이 있고 하나하나의 정체성에서 성취를 이룩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교사로서의 성취, 제빵인으로서의 성취, 사업가로서의 성취, 문학인으로서의 성취, 음악인으로서의 성취, 운동인으로서의 성취, 자녀로서의 성취, 멘토로서의 성취. 이밖에도 많을 내 속의 많은 정체성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당면한 과제들에 최선을 다하며 언젠가 꽃 피울 수많은 '나'들을 기대한다.



포기하지 못하는 것 넷, 가족과의 커넥션

 엄마와 깊이 친해지기 시작한 것이 아마 군생활 때부터가 아니었나 싶다. 가족에 대한 소중함이 다른 시기보다 크게 와닿았던 때.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 셋과 지낸 30년이, 아마 엄마에겐 종종 외로운 나날들이 아니었을는지. 형에 비해 비교적 딸의 역할을 병행하는 입장으로서 조금 더 살가워질 필요를 느낀다. 부모님, 형, 그리고 다른 가족들. 내 소중한 사람들이 언제고 건강하고 화목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 새로이 가꾸어 갈 내 가족에게도 축복과 감사만이 가득하기를. 독자님들의 가정에도 전보다 웃음소리가 더 잦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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