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민수 Dec 13. 2023

네가 교사를 그만둔다고?

퇴사 계획에 대한 주변 반응들.

 무언가 진심으로 중대한 고민은 남에게 털어놓기 어렵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지금에야 수개월이 흐르며 조금 무던해졌지만 치열하게 고민하던 당시에는 정말이지 골머리를 앓았다. 내게 '교사를 그만둔다는 것'은 삶이 완전히 뒤섞여 예측 범위를 벗어나 재배치되는 것을 의미했다. 삶에서 가장 큰 결정을 남에게 의탁하고 싶지 않았기에 홀로 고민하고 또 고민한 시간들이었다.


 막상 결정을 내리고서도 친구나 지인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다. 아마 나의 결정이 쉽사리 변해버리지는 않을까, 잠깐 타오르다 말 열정이 현실에 타협해버리지는 않을까 지레 겁먹었던 것 같다. 물러설 데가 없을 만큼 단호해지면 이야기해야지. 퇴사 계획에 대한 공유를 미루고 미루었다. 물론 가족들에게만은 진작에 이야기했다.


 4월에 퇴사를 결심하고 반 년 후 교장선생님께 퇴직의사를 알렸다. 그리고 그제서야 친구나 지인을 만나면 내 결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반응은 사람마다 제각각이었다. 어떤 말은 힘이 되었고 어떤 말은 힘을 빠지게도 했다. 예상했던 반응도 있었고 예상치 못한 반응도 있었다. 내 퇴사 계획에 대한 주변 반응들을 간략하게 몇 가지로 추려보겠다.




부럽다 먼저 탈출하는구나.

 교사 집단에서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교직 탈출은 지능 순이다'라고. 과한 워딩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요즘의 교직 세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말이다.

 동료 교사 몇 명에게 퇴사 계획을 알렸을 때, 열의 아홉은 부럽다는 말을 먼저 했다. 미래에 성공이 있든 실패가 있든 그저 '교직을 탈출하는 것'에 부러움이 일었다고. 교직이 힘에 부치지만 두고의 미래가 보장되지 않기에 그럴 수 없노라고. 대다수의 반응이 이와 비슷한 것을 보면 교사가 힘든 직업이라는 것이 더 이상 엄살 아닌 지극히 사실주의적 견해인 것 같다. 가진 바 가장 큰 능력이 '공부'였던 숱한 공무원의 현실이 씁쓸하게 느껴졌다.


교사를 그만둔다니, 그것도 네가?

 이 같은 반응은 나와 비교적 장기간 교류했던 사람들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아마 어릴적부터 봐왔던 나라는 사람의 특성때문인 것 같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꺼리며, 무난하고 안정된 삶을 추구하고, 나서는 것에 부정적. 그간 이와 같 성향을 표출했기에 더욱 의외성 짙은 발언이지 않았을까 예상한다. 아니면 그간 교사가 천직임을 표방하였기 때문이었으려나. 스스로도 그리 믿어왔던 것처럼.

 성인이 되고는 언제이고 스스로를 어른이라 여겼던 것도 같다. 살아온 방식과 추구하는 바가 이젠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만큼 확고해진 내면의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청년의 때가 무르익어가는 나이에 찾아온 가치관의 변화가 스스로도 놀랍다.


너 그러다 후회한다.

 많지는 않았지만 더러 있던 반응이다. 보통 '교사 되고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배부른 줄 모르고'라거나, '주변에 그러그러했던 사람이 있는데 후회막급이라더라'와 같은 맥락에서의 피드백이다. 그들 나름대로의 걱정 방식일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이미 고민을 마치고 결정을 내린 사항에 대해 응원해주지 않음은 작으나마 서운함으로 다가왔음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 한편,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것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느끼며 여전히 '모범생의 완벽주의적 자아를 버리는 일'이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피드백이든 감정적으로 수용하기 보다는 객관적 가치판단이 가능하도록 단단해져야겠다.


재미있겠다.

 이 다소 발랄한 반응이 어쩌면 가장 기분 좋은 반응이었다. '재미있겠다'는 말에 나에 대한 응원을 담았음이 느껴지기도 하였으며, 나로 하여금 처음 먹었던 마음을 떠올리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사업을 해보면 재미있겠다. 교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

 그 마음 말이다.


고민이 많았겠다.

 합리적 성향 만큼이나 감성적 성향을 많이 가진 나에게 참으로 값진 위로와 같은 반응이었다.

 '고민이 많았겠다, 응원할게.'

 '고민이 많았겠다, 고민한 만큼 좋은 선택을 했을 거야.'

 '고민이 많았겠다, 나도 언젠가 따라 갈 거야.'

 참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말들이었다.




 이밖에도 '선생님 덕에 대리만족을 느낀다'거나 '잘되면 나중에 나 좀 고용해라'같이 위트있는 반응들도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 내 주변에 머물러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따뜻한 응원까지 보내주니 정말 축복받은 삶이다.


 그간 여기저기 털어놓던 고심이 이제는 내 원고들로 탈바꿈되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대화와 토론으로생각을 견고히 해나가야겠다. 언젠가 나도 소중한 나의 사람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난 응원과 격려, 조언을 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전 11화 매일 발전해야 한다는 강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