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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Dec 10. 2023

180도 바뀐 독서의 목적

사랑하는 문학을 잠시간 내려놓다.

 브런치를 애용하는 독자님들은 아마도 독서를 즐기는 애서가일 확률이 높으리라 짐작한다. 나는 '소싯적' 애서가였는데, 초등학생과 중학생 때까지는 굉장히 독서를 즐겼다. 초등학생 때는 어린이·청소년 버전으로 번역된 세계 문학 전집을 주로 읽었다. 늦은 밤에도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푹 빠져 읽었던 기억이 난다. '해저 2만 리'나 '십오소년 표류기', '80일간의 세계 일주'같은 작품들. 그러다 중학생이 되어서는 판타지 소설에 빠져 '나니아 연대기', '반지의 제왕', '어스시의 마법사', '드래곤 라자'같은 책들을 읽곤 했다. 이렇게 보낸 초·중학 시절엔 독서가 주는 자극이 굉장히 즐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시험기간에 재미있는 책이 생기면 공부와 독서 사이에서 참 갈등하기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고입을 앞두고부터는 더 이상 독서에 할애할 시간이 없었다. 본격적인 입시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으니까. 그리고 아마 그 시절 즈음 해서 '독서보다 재미있는 것'들이 많이 생긴 것 같다. 친구, 운동, 게임, 음악 같은. 독서와는 그렇게 자연스레 멀어졌다. 이는 대학 시절까지 이어졌다. 대학 시절엔 고교시절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새롭고 자극적인 것이 넘치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며 독서는 '옛 취미'로 전락되어 갔다.




멀리하던 독서를 다시 시작하다

 잊었던 옛 친구 '독서'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였다. 독서를 즐기던 학창 시절에서 10여 년 흐른 , 펜데믹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이었다. 다른 직군도 그러했겠지만 펜데믹의 교직은 말 그대로 패닉이었다. 휴교와 휴업을 거쳐 온·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기도 했던 2020년도는 교사로서 이례적일 만큼 정신없던 한 해였다. 하지만 다사다난했던 업무시간과는 대조적으로 업무 이외의 시간은 정적 그 자체였다. 외출도 모임도 무엇 하나 되지 않던 시절에 나는 말 그대로 '심심해 죽을' 지경이었다. 유행했던 것처럼 혼자서 할 수 있는 취미들을 이것저것 해보았다. 쉬었던 악기 연주도 해보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운동도 해보고 요리도 해보고. 그러다 문득 잊었던 독서가 생각났다. 혼자서 즐기기에 독서만 한 것이 없다고 생각되어 책을 빌려 읽기 시작했다.


 시작은 분명한 목적이 있는 독서였다. 혹시 독자님들은 '매우 유명한' 고전 소설들을 읽어 보셨는지? 어른이 되곤 전혀 독서하지 않아서인지 나는 그런 책들을 읽지 않았고, 읽었더라도 유년기에 아동용으로 읽었던 것이 전부였다. 내가 세운 목적은 '유명한 책들에 대한 대화가 오갈 때 낄 수 있을 만큼 최소한의 교양을 쌓자'였다. '노인과 바다', '데미안', '오만과 편견'. 이런 책들은 문학인이 아니어도 제목을 대면 알 만큼 유명한 고전이지 않나. 최소한의 식견을 갖기 위해 도서관에 있는 고전 문학들을 보이는 대로 빌려 읽었다. 정말 닥치는 대로 읽었다.

 아쉽게도 어릴 적만큼 '독서 자체가 주는 재미'가 자극적이지는 않았다. 읽어가는 동안이 지루하거나 괴로울 때도 되레 많았다. 번역이 매끄럽지 않아 잘 읽히지 않는 책, 인물의 이름과 별명이 많아 누가 누군지 찾아가며 읽어야 하는 책(특히 러시아 소설이 심하다), 가독성이 떨어지는 기법을 사용하는 작가의 책, 그냥 내용이 재미없는 책 등등. 나름대로 열심 있는 독자로 살았던 기간에도 하루에 50쪽을 채 읽기 힘들 때가 많았다.

 그래도 어떤 책들은 재미있었고 한 권 한 권 감상을 기록하며 독파해 나가는 재미도 있었기에 3년이 조금 안 되는 기간 동안 150권 정도의 고전문학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 시점이 올해 7월쯤이었다. 퇴직과 창업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서 이제 본격적으로 준비할 필요성을 절감하던 시기. 3년간 이어오던 취미 하나를 뒤로 물리고, 이제부터는 '사업 공부를 위한 독서'를 하겠노라 결심했다.



좋아하던 독서를 포기하다

 여태 내 독서 인생에서 책을 고르는 목적은 단 하나, '재미있어 보이는 작품'이었다. 자기계발서는 뻔하니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공부하듯 하는 독서는 하기가 싫었다. 그럼에도 어쩌랴, 이제는 공부할 수밖에.

 여름에 처음 공부해 본 분야는 '세금'이다. 직장인으로서 원래 직장인 소득세에 관심 있게 살아서인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첫 책을 읽고 든 느낌은, 직장의 세무부서가 처리해 주는 연말정산과 비교해 자영업자의 종합소득세 내용이 굉장히 방대하다는 것이었다. 이후 세금에 대한 책을 몇 권 더 읽어 6권 정도의 세금 책을 읽은 것 같다. 이제는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기도 하지만 어떤 파트는 읽을 때마다 새롭다. 창업 전 조금 더 탄탄하게 공부할 필요성을 느낀다.


 세금 이후에도 창업과 관련된 책들을 이것저것 많이 빌려보았다. 다양한 업종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저서한 책, 공간에 대한 책, 베이커리 카페 창업 관련 책,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다룬 책, 기업이나 플랫폼에 관한 책, ESG·DEI 등 세계 트렌드에 관한 책, 창업 경영론과 입지 분석에 대한 책, 마인드셋을 이야기하는 책. 재미있는 책도 있었고 유익한 책도 있었고 읽으나 마나 한 책도 있었다. 그래도 나름의 소소한 재미요소 중 하나는 책 한 권을 빨리 쳐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문학작품은 한 권에 짧으면 3~4일 길면 2주 정도 소요되어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했다. 반면 위에 나열한 정보 전달 도서나 자기계발도서들은 하루이틀에 한 권씩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에 이전보다 독서 행위가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지난 네 달간 50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 공부를 위한 독서를 시작하기 전과 비교하여 습득한 것들이 많다. 간접 경험, 지식, 다양한 분야에 대한 인사이트, 최신 트렌드. 그럼에도 여전히 공부할 필요성을 절감하며, 창업 전까지 한 번 더 50권 정도 더 읽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작은 가게 하나를 차리는 데도 세상 모든 것을 공부해야 할 것만 같다. 그래도 더 많은 책을 읽고 난 스스로의 내면은 더 발전해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독서를 하지 않고 지내온 시간들. 지금 생각하면 그 시간들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소설·에세이·수필·시집·정보 전달 도서 어떤 것이든, 읽는 행위에는 분명 읽는 행위만이 주는 청량함과 단아함이 있다. 당분간 사랑하던 문학작품에만 집중할 수 없다는 것은 아쉽다. 언젠가는 다시 온전한 즐거움만을 위한 독서를 할 수 있는 시간들이 주어지리라 목표한다.

 독서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텍스트가 건네는 뉘앙스를 즐겁게 향유하고 질적으로 더 깊어지기 위해 앞으로도 독서와 친하게 지내야겠다는 열정이 다시금 생긴다. 좋은 책이 있으면 댓글로 추천해 주시라. 감사한 마음으로 읽어보겠다.


 문학 작품을 읽던 시절에는 운명이나 인간의 본질에 대한 고찰과 탐구심이 주였고, 요즘은 세상의 방대한 지식과 경험들을 주도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고심하는 데에 에너지를 쏟는다. 독서할수록 나는 작은 인간임을 느낀다. 보다 큰 사람이 되기 위해 독서도 그 외의 것들에도 최선을 다하며 성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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