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 May 23. 2018

좋은 노동, 미래의 노동

노동 4.0을 읽다.

IT회사에서 기획자로 일한 지 벌써 6년 차이다.

비슷한 일을 하는 친구들과 모이면 '우리는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그 이후엔 뭐해 먹고살지?'란 토론을 하곤 한다. IT 업계에서 일할 수 있는 수명이 길지 않을뿐더러, 부모님 세대와 달리 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젠 한 가지 직업만을 갖기보다 다양한 직업을 소화하는 이들이 많아졌고, 스스로 '업'을 창출하는 '창직'이란 개념도 생겼다. 특히 작년부터 '워라밸'이란 말이 유행한 것처럼 일상과 직장의 삶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많아진 듯하다.


언젠가 지금의 일을 그만둔다면, 과연 나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할 수 있을지가 계속 물음표였던 요즘, <노동 4.0>이란 책을 읽었다. (이명호 저, 스리체어스 출판)



<노동 4.0> 백서는 독일 정부가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여 여러 이해 관계자들과 2년에 거쳐서 대화하고 연구한 결과물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노동은 신성하며 인간에게 주어진 소명이기 때문에 노동 없는 사회는 생각하지 않는다.(8p)'라고 독일의 한 교수가 얘기한 것처럼, 독일이 달성하고자 하는 최종 목표는 '국민 100퍼센트의 노동'이기에 '좋은 노동과 미래의 노동'에 대한 고민의 깊이도 깊은 것 같다. 한국에 사는 우리도 일이 삶에 중요한 축을 차지하는 만큼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주제이지만 사실 지금까지 깊게 생각한 적은 없었기에 이 책을 한 번에 이해하며 읽기란 쉽진 않았다.


미래의 노동

지금의 내게는 '미래의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이 더욱 흥미롭게 다가왔는데 내가 지금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이 더 크기 때문일거다. 아이폰이 우리 삶에 많은 변화를 준 것처럼, 인공지능(AI)도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자연스레 일상에 침투하여 많은 것을 바꿀 것이다. 사람들의 변화된 소비패턴은 결국 '노동'에도 영향을 미칠 테다. 변화의 흐름을 읽고 빠르게 기회를 잡는 건 어렵지만, 주변에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로 삶이 크게 바뀐 사람들도 있기에 이 시대에 기술과 알고리즘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은 큰 무기란 걸 체감한다.


가상 물리 시스템, 시뮬레이션을 이해할 때 디지털 혁명이 완성되는 새로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원리를 이해하면 세상의 주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지금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이면서 위기다. (18p)

기회가 창출되는 영역을 정확히 파악해야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24p)

디지털화로 인한 새로운 가능성은 일상생활과 문화의 변화와 연관이 있다. 정보 접근성의 확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커뮤니케이션, 알고리즘이 인간의 사유와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꿔가고 있다.(40p)

결국 미래의 노동은 우리가 소비자로서 어떠한 욕구들을 가지게 될 것이냐 하는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41p)


  

이상적이거나, 절망적이거나.

다가올 네 가지의 미래 시나리오


'인공지능이 우리의 일을 대체할 것이다'란 추측이 난무할 때, 미래에 없어질 혹은 살아남을 직업 리스트를 본 적이 있다. 이 책에서도 말했듯이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모든 예상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누가 혁명의 승자가 되고 패자가 될지 '알아맞히기 게임'을 하면서 가만히 기다리면 되는 것인가? 그러다가는 승자의 제물이 되고 말 것이다. (...)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단 하나다. 디지털이라는 개념을 다시 깊게 되돌아보는 것이다. 디지털을 제대로 알아야 4차 산업혁명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15p)


아무 준비 없이 가만히 있으면, 우리의 직업은 자연스레 대체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확 와 닿은 건 이 책을 마지막쯤 읽었을 때였다. 저자분은 미래학자이기도 한데, 인공지능(AI)의 기술의 발달 정도(강 vs 약)와 사회의 다양성 정도(다양/유연성 vs 전체/경직성)로 시나리오를 그려본다면 우리나라는 <시나리오 3>처럼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무서운 건 지금 이대로 가다간, 그 시나리오가 현실이 될 것 같아서 정말 소름이 돋았다.


미래는 시나리오 4처럼 흘러가면 좋겠지만, 과연 할 수 있을까란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들의 관심과 배려와 노력이 있다면 변화가 가능해질 수 있다고 믿고 싶고 믿는다. 주변에서도 창의적이고 자신만의 개성을 가진 매력적인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으니까.



사라져 가는 일에 맞게 육성된 획일적 인재들이 다수인지, 다양한 일을 찾아서 만들 수 있는 창의적이고 개성을 가진 인재들이 다수인지에 따라 사회의 운명이 갈릴 수 있다. 전자의 사회는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플랫폼을 대기업이 지배하고 노동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기본소득을 받는 사회가 될지도 모른다. 글로벌 대기업도 대중을 기본소득으로 먹여 살리며 수요를 만들어내고 사회 불안을 막고자 할 것이다. 다른 길은 자신의 개성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 다양한 직업과 산업이 생기면서 창조적인 중소 도시 속에서 다양한 일과 삶, 문화와 예술을 추구하는 사회다. (89p)


한마디로 로봇의 생산물의 가치가 더 커질지 인간의 개성이 들어간 생산물의 가치가 더 커질지가 관건이다. 사회가 전체성보다 다양성 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작은 도시 공동체가 강화돼야 한다. 도시 공동체는 자기가 원하는 삶의 스타일, 가치관이 같은 사람이 모여 사는 공간이다. 만화, 재즈, 와인, 드론 등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 협동조합, 주식회사, 관료제, 직접 민주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도시를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만화 도시가 만들어졌다고 하자. 이 도시의 시민들은 만화 제작에 직접 관련된 일을 하지 않더라도 소비자로서 만화에 대해 비평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만으로 도시의 산업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90p)


최근 '로컬'이란 키워드가 다시 떠오르고 있는데,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도 독특한 콘텐츠와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재미있는 프로젝트가 펼쳐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흐름이 더욱 활성화되고, 다양한 개성과 가능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견고해진다면 다가올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고 미래학에 관심이 생겼다. 나 또한 두려움이 많은 편이라 불확실함을 잘 못 견디는데, 다양한 가능성이 무엇인지 예상해 보고, 미리 준비하면 불확실함을 견디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미래의 불확실성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다루는 것이 미래학이다. 불확실성이란 한편으론 미래의 다양한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미래학에서는 미래의 모습을 다양한 시나리오로 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92p)


EU의 공동 연구 센터는 미래학의 미래 예측을 "이미 결정된 미래를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구축하도록 인류를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미래를 이미 결정된 무엇이 아니라 우리가 창조하고 형성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93p)


이 책은 몇 번은 더 읽어야 완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평소엔 잘 읽지 않는 주제와 분야였기에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노동 4.0>은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관점을 넓히는 책이었기에 의미가 크다.


최근 재무설계를 처음 받아보았는데, 퇴직과 은퇴나이를 적어야 하는 항목이 있었다. '퇴직'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는 때고, '은퇴'는 경제활동이 없는 때(즉, 더 이상의 돈을 벌 수 없는)라고 구분하더라. 나는 호호 할머니가 되어도 나만의 일을 하고 싶은데 (어른을 위한 그림책을 그리고 쓰는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 '좋은 노동'에 대해서도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야겠다.


그리고 다가오는 미래가 <시나리오 3>처럼 되지 않길 바라며, '다양한 일을 찾아서 만들 수 있는 창의적이고 개성을 가진 인재'가 되기 위해 스스로도 노력하겠다고 다짐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블루보틀에 다녀왔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