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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버트 길벗 길But Dec 02. 2017

칼을 갈며


칼을 갈며 / 길But



요리를 하던 아내가 칼 좀 갈아줘요,

그 말에 칼을 갈기 시작한다


어린시절 온 동네를 돌아 칼을 갈아주며 살던 아저씨는

복수의 정념을 가진 것처럼 오래오래 숫돌에 시간을 갈곤 하였다


나도 무엇인가를 향해 품었던 적개심으로

부지런히 칼을 갈았던 것도 같은데


내가 던져주던 먹이를 잊자 위험하고도 유일했던

그 짐승은 숫돌 곁에 송곳니를 빼 놓고 모습을 감춰 버렸다


베는 쪽은 부러져도 좋으니 단단해야 하고

칼등 쪽은 앞쪽 쇠를 붙잡고 있기 위해 무르게 만들져서


특유의 물결 무늬가

몸체에 새겨지게 됐다던 사무라이들의 칼처럼


단단함과 무름이 우리집 스테인리스 칼날 위에도

보이지 않는 물결 무늬로 입혀진다


요리를 하던 아내가 칼 좀 갈아줘요,

그 말에 칼을 갈며 내가 자꾸만 물결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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