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길버트 길벗 길But Dec 17. 2017

정현종의 '요격시2'를 추억하며


정현종의 '요격시2'를 추억하며 / 길But



물체의 중심을 지나는

임의의 선들이 있다

그 선들은 중심점과 직각으로 만나거나

사선으로 만나거나

또는 누워서 만난다


그 물체는 억눌렸던 압력 때문에

내부에서 일어난 폭발로

지금 막 발산 중이거나

외부로부터 겨냥됨에 따라

여러 선들에 의해 관통된 상태라면 정확할 듯 하다


마치 밤송이 모양을

상상하면 될 것 같은 느낌인데

한번 폭발한 것은

원래의 모양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성질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있는 것 같다


발산은 빈번하고

회귀는 드물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이 단방향이라는

통렬한 명제에 비추어

복수를 이길 수 있는 용서란 매우 드물다


'토마호크 미사일은 떨어지면서 새가 되어 사뿐히 내려앉'*을리 없지 않은가




* 정현종, 요격시2 - 한 꽃송이, 문학과 지성사



요격시2 / 정현종


다른 무기가 없습니다.

마음을 발사합니다.


토마호크 미사일은 떨어지면서 새가되어 사뿐히 내려앉았습니다.

스커드 미사일은 날아가다가 크게 뉘우쳐 자폭했습니다.

재규어 미사일은 떨어지는 순간 꽃이 되었습니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은 날아가다가 공중에서 비둘기가 되었습니다.

지이랄 미사일은 바다에 떨어져 물고기가 되었습니다.

도라이 미사일은 사막에 떨어지면서 선인장이 되었습니다.

자기악마 미사일은 어떤 집 창앞에 떨어지면서 나비가 되었습니다.

디스페어 미사일은 어떤 집 부엌으로 굴러들어가 숟가락이 되었습니다.

플레이보이 미사일은 어떤 아가씨 방으로 숨어들어가 에로스가 되었습니다.

머어니 미사일은 어느 가난한 집 안방에 들어가 금이 되었습니다.

우라누스 미사일은 땅에 꽂히는 순간 호미가 되었습니다.

제구덩이 미사일은 저를 만든 공장으로 날아가 그 공장을 날려버렸습니다.

머커리 미사일은 아주 작아져 어떤 아이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속삭였습니다.

이걸로 엿이나 바꿔 먹어.

··············

우리는 저 시체들의 폐허 위에서 부르짖습니다.

(UN의 힘을 훨씬 더 강화하면서)

UN은 무기 개발을 지금으로부터 영원히 증진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라!





매거진의 이전글 눈 내린 풍경에 대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