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잘하는 것
나는 사과와 반성을 잘한다. 인정도 잘한다.
그래서 아이를 재워놓고 혹은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놓고 반성과 인정을 한 후, 아이가 돌아오면 사과를 한다.
아이는 이제 엄마를 간파했다.
"엄마 그러고 사과할 거잖아"
아이가 내 말을 듣지 않게 한 것은 내 책임이다. 나의 반성과 사과의 사이클.
아이가 어릴 적부터 나는 반성의 왕이었다.
회사를 퇴근하고 나면 거의 자정이었다. 그때까지 안 자고 있는 아이를 재우기 위해 무작정 드러눕혀 놓고, 아이가 울기 시작하면 어르기 시작한다. 한참 울다 보면 피곤해서 잘 잘 테니 울기 시작하면 오히려 안도한다.
아이가 잠들고 다시 일을 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반성한다. 그냥 조금 더 안아줄걸. 그냥 조금 더 같이 놀아줄걸. 아이는 내가 보고 싶어 늦게 자는 것일지도 모르는데. 대한민국 아이들의 취침시간이 늦는 이유는 부모들의 늦은 퇴근이 원인이라는 기사를 봤다. 아이의 늦은 수면 시간은 나의 늦은 퇴근 때문인 거 같아 마음이 아려온다.
5살. 만 4살인 아이를 셔틀에 태워 학원에 보냈다. 내년에 동생이 세상으로 나오면 젖먹이를 안고 학원 라이딩을 못해줄 거 같아, 미리 적응하라고 선택한 방법이었다. 아이는 오늘따라 유난히 셔틀을 타기 싫어했고, 결국 셔틀차가 오자 안 탄다며 버텼다. 오늘 빠지면 다음번에도 빠지려들터. 만 4살인 아이를 셔틀에 태워 보냈다. 아이는 왕방울만 한 눈물을 뚝뚝 터뜨리며 떠밀리듯 셔틀을 탔고, 셔틀을 타는 내내 큰소리도 못 내고 흐느꼈다. 결국 학원에 가서도 수업 내내 울음을 그치지 못해 학원에서 전화를 해왔고, 서둘러 아이를 데리러 가야 했다. 아이는 다시는 그 학원을 가지 않았다.
만 네 살을 뭐 하러 셔틀까지 태워 보냈을까. 휴직 전에는 아이가 하고 싶어도 라이딩을 해줄 사람이 없어 학원을 보낼 수 없었다. 휴직을 하고 나서 시작한 학원을 아이는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걸 출산을 이유로 그만두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욕심이었다. 아이게도 포기를 가르쳐줬어야 했다. 좋아하니 견디기엔 아이는 너무 어렸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또 우유를 쏟았다. 아이는 둘째가 태어나고부터 마음의 불안을 그렇게 쏟아내었다. 소리 없이 조용히 흐르는 눈물과 함께. 방안의 매트며, 펼쳐놓은 종이며, 늘어져있는 장난감이며 모두 우유에 범벅이 되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반복되면서 결국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밤이 되면 혼자서 또 반성을 한다. 왜 그랬을까.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렸던 동생이었지만, 엄마의 사랑을 나눠가져야 하는 첫째의 불안이었을 텐데. 엄마인 나는 아이의 마음을 읽지 못했고, 집안 청소며 정리며 가사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오늘도 반성한다.
자고 일어나 뒷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
오늘 입고 갈 옷을 미리 잘 챙겨놓지 않은 것.
유치원 가방을 미리 싸놓지 않은 것.
시간에 맞춰 옷이며 양말이며 빨리 준비하지 못한 것.
아침에만도 아이에게 화를 낸 것들이 수두룩 하다. 여러 번 말해도 듣지 않는다는 핑계로, 어느새 지적을 위한 지적을 하고 있던 것은 아닌지.
훈육이란 말로 가르치는 것이라는데, 나는 화로 가르치는 노육(怒育)을 하고 있었다.
다시 반성한다. 그리고 인정한다. 그러니 이젠 사과보다는 다짐을 해야겠다.
반성과 사과의 사이클이 아닌 반성과 변화의 사이클을 타기로.
그러니 오늘부터 변해야겠다. 마음이. 그리고 태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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