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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율 Dec 14. 2023

싱가포르행 비행을 시작합니다.

이제 준비되셨나요?


전날 허겁지겁 짐을 싸고, 밤을 새워 한 달간 비워둘 집을 정리한다.

냉장고도 비워야 하고, 빨래도 돌려놔야 하고, 깔끔히 정리도 해야 한다.

마음은 바쁘고, 시간은 째깍째깍 잘도 간다.


그렇게 밤을 새우고 서둘러 아침 비행기를 타러 공항으로 향한다.

어릴 적 공항과 관련된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나에게 공항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설레고 흥분되는 길이었다.

나이를 먹은 건지, 나와 함께 앉은 이 두 명의 아이들의 무게가 생각보다 큰 것인지

흥분과 설렘 못지않게 무겁고 두려운 책임감도 함께다.








비행기를 탈 때 여권, 지갑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이들의 약과 비행기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놀 놀이도구들이다. 대략 6시간의 비행을 편안하게 가기 위해서는 시간 때우기용 아이들 놀이용품이 필수이다.


앞편에서도 간략히 소개한 적이 있지만, 비행기 내 필수 용품을 소개한다.


다이소 천원짜리 클레이를 활용한 2세와 6세의 작품들.


< 비행기 내 필수 용품 >
1. 아이가 좋아하는 유튜브를 미리 다운로드하여 놓은 태블릿 피씨와 헤드셋, 태블릿 피씨 홀더
2. 다이소 천 원짜리 클레이
3. 스케치북과 색연필  



국내를 가든 해외를 가든 이 세 가지는 필수로 가지고 다니는 편이다. 세 가지 모두 하나로 꽤나 오래 버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이소 클레이는 특히나 강추하는데, 저연령은 저연령대로 조물조물하며 시간을 보내기 좋고, 고연령의 경우 클레이 포장지 뒷면에 있는 각종 동물 모양을 따라 만들며 시간을 보내기 좋다.

아이들은 비행시간 내내 밥을 먹고 클레이를 하다, 간식을 먹고 영화를 보며 아주 알차게(?) 보냈다. 덕분에 전날 밤을 새운 나도, 함께 와준 엄마도 숨쉴틈 없이 아이들과 함께여야 했다.  







그래도 아이들이 보채거나 울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편안한(?) 약 6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싱가포르 공항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해둔 차를 타고 말레이시아 조호바루까지 이동했다. 조호바루는 말레이시아긴 하지만 한국으로부터 직항이 없고, 지리적으로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보다 창이 공항이 더 가까워 주로 싱가포르 공항에서 육로로 이동한다. 집에서 말레이시아 조호바루 숙소까지 약 12시간이 걸린 여정. 숙소에 짐을 풀면 오늘의 일정은 끝이다.

싱가포르 공항에서 숙소인 조호바루까지 잘 왔다고 생각한 그 순간.

함께 온 엄마가 말한다.


"내 캐리어는?"

"응?"

"내 캐리어가 없는데?!!!"


그럴 리가?! 아. 생각해 보니 공항에서 엄마가 애 둘을 챙겨주는 동안, 캐리어들을 싫고 이동할 카트도 챙기고 왓츠앱으로 우리를 데려다줄 기사분과 연락도 하고,  캐리어도 찾느라 정신이 한 개도 없었는데 아뿔싸!!! 정신만 놓친 게 아니라 엄마 캐리어도 함께 놓쳐버리고 온 것이다.


아. 이를 어쩌나.

아예 baggage claim(수화물 찾는 곳)에 두고 왔으니 누가 가져가거나 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최소로 편도 두 시간이나 걸리는 공항과 숙소 간 이 거리는 어쩌나.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이 글을 쓰면서도 그때의 스트레스를 생각하면 머리가 아프다)



가능한 온갖 방법을 생각해 본다.

첫째. 지금 당장 싱가포르 공항으로 향한다.

(그러기엔 전날 밤까지 세서 43시간째 깨어있는 중. 이미 너무 피곤하다. 나도 살고 싶다)

둘째. 다음날 렌터카를 받아 싱가포르 공항에 가본다.

(가능하면 도착한 오늘 당장 짐을 받고 싶기도 했고, 핸들도 반대인 상황에서 렌트 첫날 국경을 넘어 편도 두 시간 이상의 운전이 자신이 없었다)

셋째. 오늘 당장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해결을 본다.


나의 대답은 세 번째였고, 이제 할 수 없이 도움을 요청할 기관 혹은 사람을 찾아본다.

이탈리아에서는 분실 캐리어를 숙소까지 배달시켜주기도 해서(물론 항공사 측 잘못이었긴 했지만), 혹시 그런 비슷한 서비스가 없을까 싶어 호텔에 물어보니, 호텔이 그런 일은 자기들 소관이 아니란다. 야속하긴 했지만 뭐. 호텔 일은 아니니까.

호텔을 예약해 줬던 에이전시에 연락해 봤는데 이미 저녁시간이라 큰 의지는 없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데려다주었던 드라이버. 오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저녁에 송영서비스를 위해 공항에 다시 간다고 했었다. 호오오오오오옥시 가는 길에 한 번만 물어봐줄 수 있는지 간곡히 부탁을 했고, 기사님은 사장님을 연결해 준다. 사장님은 무뚝뚝하지만 간략하게 한번 알아봐 주겠노라고 대답해 주셨다. 내게 주어진 실낱같은 희망인 사장님의 연락을 기다리며 아이들을 재우고 핸드폰을 붙잡고 기다린다.


"사장님. 혹시 몇 시쯤 알 수 있을까요?"

"10시쯤 우리 드라이버가 공항에 갈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려요. "


시간은 10시를 넘어, 12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사장님. 죄송한데 혹시 공항에 가셨을까요?"

"우리 드라이버가 곧 공항에 도착하니 기다려봐요."


12시가 넘어 등장한 드라이버는 정말 구원투수 같았다.

나의 여권 사진과 내 짐을 찾을 수 있는 권한을 드라이버에게 양도한다는 정식 문서를 작성해 달란다. 혹시 드라이버가 너무 피곤하지는 않을까, 드라이버의 마음이 바뀌지는 않을까, 가장 가까이 있었던 아이의 스케치북을 급하게 뜯어 검은색 크레파스로 글을 쓰기 시작한다. 서류 작성에 필요한 내용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며 드라이버는 양도서 샘플까지 사진으로 보내주었다.

이후 짐 주인의 여권 번호와 여권 명이 양도서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 드라이버의 여권 번호가 들어가 있어야 한다 등 몇몇의 요구 조건이 추가된 서류(?)가 오갔고, 마침내. 우리는, 아니 나의 드라이버는 짐을 받았다.


가방을 양도받기 위해 작성해야할 서류양식과 마침내 찾게된 우리의 가방



얏호~!라는 기쁜 마음도 잠시.. 드라이버와 사장님이 연락이 안 된다. 짧은 순간이지만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혹시 이 가방을 양도받고 연락이 두절되는 것은 아니겠지. 인터넷을 검색해서 알게 된 송영 서비스 회사였다. 귀중한 짐은 뭐가 들었나. 소심한 나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손이 떨린다. 약 한 시간 정도 시간이 지나, 드라이버와 사장님에게 연락이 왔다. 언제 짐을 줄지 고민해 보겠다는 것이다. 오늘 돌려주기에는 드라이버가 너무 피곤하다는 것.

"알죠 알죠~~ 드라이버가 피곤하면 안 되죠. 그런데, 드라이버가 우리 숙소 근처에 산다고 했는데, 집에 가는 길에 가져다주는 게 제일 낫지 않을까요? 아니면 제가 내일 찾으러 갈게요" 라며 사장님에게 답을 해본다.


한동안 또다시 연락이 없다가 새벽 한 시반쯤 연락이 왔다. 새벽 두 시 정도에 우리 숙소로 가져다주겠다는 것!

정말 너무 고마웠다. 호텔도, 에이전시도 모두가 알아보겠다고만 하고 묵묵 무답이었는데 이렇게 챙겨주다니. 의심한 순간들이 죄송스러울 만큼 기사님은 친절하게 새벽 두 시에 우리 짐을 가져다주고 가셨다.


수많은 여행을 다니며 물건을 잃어버려 고생해 본 적 없는 나였다. 소매치기로 유명한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까지. 내 물건을 잃어버려 본 적이 없었는데, 아이와의 여행은 역시나 하드코어임을 새삼스레 확인했다.


아이와 여행을 시작하는 첫날

나의 다짐이다.

아이와 여행을 함께하는 부모님들. 정신 꽉 붙들어 매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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