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사실 엄마로 귀결된다

영화 <집으로>

by 물 만난 물고기


영화 <집으로>를 보고 또 울어버렸다.

잠이 안 와서 유튜브를 켠 게 화근이었다. 어린 유승호의 깜찍함을 보려고 클릭한 5분짜리 영상 때문에

새벽 3시에 베개를 적시게 될 줄이야. 유승호를 보면서 엄마 미소만을 짓기엔 곁에 있는 할머니가

너무나 슬픈 거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할머니가 깊고 깊은 산 속에 사는 것부터가 슬프고 그 조용한 집에 할머니가 오롯이 앉아있는 것만 봐도 슬프다.

킬링 파트는 반찬 투정이나 하던 꼬맹이가 할머니에게 글을 알려주는 씬이었는데,

‘아프다. 보고싶다’라는 짧은 말이 왜 이렇게 슬플까.

‘할머니. 너무 아파서 글씨를 못 쓸 것 같으면 그냥 아무것도 쓰지 말고 보내.

그럼 내가 할머니 아픈 줄 알고 바로 달려올게’ 아 또 슬프다.

할머니는 최대한 예쁘게 글을 쓴다. 어린 손자 앞에서. 삐뚤삐뚤.


나는 그런 글씨체를 안다. 슬픈 글씨체. 먹먹한 글씨체.

엄마한테서 처음으로 편지를 받은 건 열 다섯이 되던 해 내 생일이었다. 열 여섯이었나.

일어나 거실에 나가보니 아침 상 위에 편지가 놓여있었다.

엄마는 일하러 나간 후였고, 나는 잠에서 막 깬 후였다.

‘우리 딸 생일 축하해. 엄마 같다’

<집으로> 할머니가 쓴 것 같은 예쁘지만 삐뚤삐뚤한 글씨였다.

‘ㅌ’이란 글자가 원래 이렇게 슬펐나. ‘우리 딸 생일 축하해. 엄마 간다’라고 다시 읽었다.

엄마는 그렇게 쓴 거니까. 엄마식대로 읽는 게 맞다.


얼마 전 예순을 맞은 엄마는 수줍은 고백을 했다. ‘엄마는 사실 인형을 좋아해. 나이 먹고 주책이라고 할까봐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엄청 좋아해.’ 반신반의하면서 엄마한테 라이언 인형을 사다 안겼다.

엄마는 정말 소녀처럼 좋아했다.

수줍진 않지만 나도 고백 하나 하자면 글을 모르는 엄마가 부끄러웠다.

내 또래 친구들에겐 드문 일이었으니까. 엄마의 무지가 부끄러웠던 건 잠깐이었다.

스무 살 이후로 나는 엄마가 한 없이 불쌍했다.

술 먹으면 엄마가 가여워서 사람들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일부러 더 엄마 얘길 했다.

어떤 일은 터져야 낫는 법이니까. 나는 그걸 용케 알았다.

커서 깨달은 거지만 엄마처럼 바르고 밝게 자라는 건 기적 같은 일이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여섯 살 여자 아이라면 더더욱.


나는 종종 내가 모르는 엄마의 시간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결코 나이를 먹어서 그러는 건 아니다) 내리사랑이라곤 받아본 적 없는 엄마, 학창시절이 없는 엄마.

교복 입은 또래 친구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을 어린 시절의 엄마, 오빠와 내가 ‘엄마 저건 뭐야?’라고 수도 없이 물었을 때 죄인처럼 얼굴을 붉혔을 내 엄마.

어린 딸의 숙제를 도와줄 수 없어서 닦은 방을 닦고 또 닦았을 엄마의 사무치는 시간들.


15년이 지났다. 10대였던 내가 30대가 될 동안 엄마는 ‘간다‘와 ’같다‘ 정돈 눈을 감고도 쓴다.

몇 년 전엔 운전면허증도 땄다. 아아. 우리 엄마는 천재가 아닐까.

‘아라야 엄마가 두 번 만에 필기를 땄는데, 첫 번째는 답을 밀려 써서 그런 거야.

밀려 쓰지만 않았어도 단박에 따는 건데! 근데~ 엄마 진짜 기특하지?’ 기특했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엄마는 한 번도 글을 알려달라고 말한 적이 없다. 자식들에게만큼은 지키고 싶은 자존심이었으리라.

엄마는 그렇게 스스로 재능 선생님한테서 글을 배웠고, 평생 교육원을 찾아갔고 운전면허 문제집을 구해다가 풀었다. 살다보니 ‘이 나이에 초보라니. 전두엽이 아파온다’ 라고 써진 엄마의 앙증맞은 차에 타는 날도 온다. (과년한 딸년은 장롱면허라 조수석에나 타고 그런다)

바짝 긴장한 채로 운전하는 엄마의 옆얼굴을 보고 있자니, 뭉클해서 눈물이 찔끔 났다.

아빠도 엄마도 모르게 하품한 척 얼른 훔친 행복한 눈물.


가끔 엄마 일기를 훔쳐보고 혼자 엉엉 운다. 엄마가 글을 너무 잘 쓴다. 정말 잘 쓴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썼을까. 신통방통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나는 엄마를 닮았다. 내가 글을 쓰는 건 엄마 때문이구나. 나는 엄마를 닮아서 글을 잘 쓰는구나.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엄마가 이걸 알게 돼서 참 다행이다.


엄마는 올해부터 평생교육원에서 중학교 과정을 시작했다. 이젠 꼬부랑 글씨도 쓰고 구구단도 왼다.

(나도 모르는) 외떡잎식물을 배우고 쌍떡잎식물도 배운다. 할머니들 모아놓고 풀떼기는 왜 주워오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엄마는 볼멘소리를 하지만, 행복해 보인다.


10시도 못 돼서 자던 엄마는 요즘 12시까지 책상 앞에 앉아있다.

드라마 <황금빛 인생>도 내팽겨 치고 꼬부랑글씨 그리기에 바쁘다.

엄마가 한참을 공들여 S를 쓴다. 웃기게 생겼다. 엄마는 물음표를 쓸 때 가장 신중하다.

엄마한테 물음표는 그림이구나. 가만히 엄마를 보다가 기특해서 눈물이 또 찔끔한다.

오 나의 마르지 않는 샘물. 내 기쁨이자 슬픔인 엄마. 내 아프지만 기특한 손가락.

오래 오래 곁에 있어주기를. 손가락 걸고 약속.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스물 하나. 서른 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