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선택이라도 선택하고 행동하는 사람일지도.
퇴사를 했다. 작년 한 해 동안 느낀 게 참 많다. 회사에서 나가면 꼭 이 이야기를 글로 써야지. 몇 번이고 목록을 정리했다. 하지만 퇴사하고 나서 며칠이 지나고 나니 마음이 조금씩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뭘 적으려 했었는지, 왜 적으려 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가장 명확한 것들부터 했다. 대부분 무언가 먹고 싶다거나 드라마를 정주행 해야겠다는 뭐 그런 것들이었다. 점점 게을러졌고, 이게 맞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일상을 기록했다.
글을 회고했을 때 문체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나의 기분이 아니라 사건들만 기억되고 스쳐 지나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기억들도 결국 휘발될 것 같았다. 얕게 느끼고 지나가버리는 가벼움을 참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지 모르겠다만 일단 나 자신은 이렇게 인생을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불안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원초적인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쫒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무엇 때문에 인도까지 가서 그것을 알려고 했었나? 왜 나는 지금까지도 방황하고 있나? 답을 알고 있던 것 아니었나? 혼란스러웠다. 이는 미뤄뒀던 일정을 소화하거나 게으르게 누워있는 사이에 스며들어 귓가를 찌르고 속을 뒤집어뒀다.
그렇게 낳은 결과는 또 다른 질문.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엄마는 사람이 다 제 잘난 맛에 산다고 했다. 나도 나 잘난 맛에 사는데 그 잘남은 어떻게 갖추는 것인가? 잘남은 무엇인가? 고민했다.
나는 빛나는 것을 쫒고 있었다. 그 빛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지 못해서 지금까지 헤맸다. 고민한 시간에 비해서는 제밥 늦게 깨달았다.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정의 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어떻게 뭐 그런 거창한 거 말고.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 나는 무엇 좋고 싫어하는가. 왜 싫어하고 좋아하는가. 질문들은 식상할지라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나는 그중에서 나에게 맞는 멋짐에 대해서 정의하고 싶었다. 무엇이 멋짐인가? 개인적으로 보기에 1순위는 자신의 일관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만 보면 빛나서 그런 속성을 띄고 있으면 다 가지고 싶었다. 그것들은 대부분 취향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멋짐을 내리기엔 섣불렀다.
대분류에서 겨우 소분류로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내가 선택해야 하는 멋짐엔 극단이 있었다. 감정을 죽이고 합리적인 상황판단을 하는 멋짐과 모든 일에 진심으로 대하고 일에 흠뻑 빠져버리는 멋짐.
둘 다 멋지다고 느끼지만 나는 어떤 멋짐을 가지고 싶은가에 대한 물음의 답을 내리지 못했다. 결과는 애매한 삶으로 귀결됐다. 두 갈래에 놓여있다. 지금 이 선택은 사건의 주인공이 되는 선택과 철저하게 모든 사건의 제삼자가 되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둘 다 완벽하게 해낼 수 없었다. 할 수도 없는 것이었고.
나 자신에게 조차 제삼자가 되기엔 오지랖도 넓고 뜨거운 사람이었으며, 제대로 주인공이 되기에는 차가운 사람이었다. 그래서 늘 갈팡질팡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제삼자가 되는 것을 택했다. 만족스럽지 못했다. 사이에 중요한 것들은 모두 흘러간 뒤었다.
나는 최선을 다하는 것을 싫어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덜 힘들다는 것을 안다. 내가 멋이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주인공이 되어야지. 다짐한다.
꼭 나는 시동을 켜서 막 달리다가 급브레이크를 반복하는 자동차 같다. 그래서 달리기 시작할 때 늘 힘들어한다. 계속 달릴 수 있게 시동을 켜놓고 있는 법을 모르겠다. 사람에게 기름과 배터리는 돈과 체력이라고 생각한다. 유료결제로 숨을 쉬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도대체 무엇을 추구하고 싶었나 잃어버렸다. 나는 분명 무언가 말하고 싶었다. 불만도 많았다. 무엇을 어떻게 말할 것인지 고민을 정말 오래 했는데 아직도 무엇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모르겠다. 이 고민 자체를 세상에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르겠는 것과 알고 있는 것투성이다. 고민보다 해보는 게 후회가 덜 남는 것도 알고 있다. 상반되는 것들이 계속 충돌한다. 나는 결국 부딪쳐보고 배우다가 그 끝에 다 달아서야 '이거였구나'라는 말로 하여금 나의 꿈을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이 괴리는 알고 있는 것들과 실제로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공백이다.
약점이다. 생각이 많은 것은 나에게 독이다. 올해는 생각을 덜하고 행동하고 싶다. 결심하면 그렇게 하기 싫어지니까 결심은 안 할 것이다. 가볍게 살자 가볍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