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하나로 무너지는 마음이란

by 무말랭이

모처럼 일찍 눈이 떠진 그제 아침엔 비가 쏟아졌다. 널어둔 실내용 운동화가 젖었다는 핑계로 운동을 가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출근시간 직전까지 침대에 누워있겠다는 마음과 습하다 못해 반쯤 물이 된 공기가 서로 누워 있있으라 일어나라 싸운다. 나는 두 고래싸움의 새우가 되어 이리저리 휘말리다가 결국 출발 목전에야 샤워실로 향한다. 지난 새벽엔 분명 밤을 새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몇 시간이나 지났다고 이렇게 피곤한 건지. 참 야속하다.


브레이크가 잘 잡히지도 않아 졸지에 스릴러가 될뻔한 출근길을 뒤로하고, 부산스럽게 업무를 보기 시작한다. 사이엔 짤인지 직접 찍은 건지 아닌지 모르겠는 사진들이 친구들 단톡방에 올라온다. 진짜 찍은 거라면 사회부 기자로 이직해도 될 만한 풍경이었다. 아무래도 현실에 낭만 혹은 풍자를 끼얹은 사진이기 때문에 그런 자꾸만 생각이 드는 것이다.


비는 시원하게도 내린다. 화사 동료는 지구 표면이 너무 뜨거워졌으니 열을 식히기 위해 자전 작용으로 비가 온다고 했다. (카더라로 알게 된 출처불명 지식이다.) 어디 커뮤니티에서는 지구가 빙하기에도 공룡 멸망기에도 살아남아 지금까지 존재했으니 인간이 지구한테 미안할게 아니라 우리가 살아남을 고민이나 해야 된다고 했다. 너무 맞는 말이라 잠시 헛웃음을 지었다.


와중엔 침수가 일을 하나 줄였다. 기분 좋게 있다가도 저 아래 깔려있을 다른 이들의 노고가 걸려 조금 슬퍼지기도 했다. 어차피 내일 내가 해야 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비 내리는 날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했다. 어릴 적엔 아무도 없는 공원 한가운데 누워서 비를 맞고 있던 적도 있다. 어떤 이유들로 자꾸만 싫어지는 것이 많아진다.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되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좋아해야 하는지, 싫어지는 것이 많아져서 슬퍼야 할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출근을 하고, 가야 하는 학원은 모조리 뺐다. 졸지에 다 일주일이고 세 달이고 다 미뤄버렸다. 무엇이 중요한지 선택한 결과는 게으름에 안겨있는 내 모습이다. 뭐 어때. 죄책감 들고 행복한 하루였다. 어쨌든 행복했으니 된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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