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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c 17. 2021

제주생활백서

겨울과 하도리

제주 동쪽 푸른 바다를 낀 작은 마을 하도리가 가진 분위기와 풍경, 그 매력을 알게 된다면 그냥 스쳐 지나가기에 아쉬운 곳이다.

종달리에 살면서 출근길 바다를 달리는 애정 하는 버스에서 만나는 하도리의 바다는 반짝반짝 다양한 빛이 났다. 어두운 잿빛이었는데 코발트블루가 풀어졌다가 노을빛을 품는 등 때때로 시시각각 바다는 변화했다. 하도리에선 밭 담길 사이사이 푸릇한 당근밭도 만날 수 있는데 겨울철에 가장 맛있고 과일처럼 정말 달다. 물이 빠지면 닿을 수 있는 토끼섬은 나지막한 동산과 작은 모래밭으로 이루어져 있고,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문주란이 자라는 곳이라고 한다. 외세의 침입을 막기 위해 돌로 쌓은 별방진에서 보는 석양도 꽤 근사하다. 제주에 살면서 음악과 책에서 하도리를 발견할 때마다 기뻤.


매년 이맘때면 듣는 노래가 있다. 겨울철 밤에 수평선 어렴풋이 비추는 작은 불빛과 달빛과 바다가 만나 만들어진 윤슬을 보며 조용히 귤을 까먹을 때 항상 생각나는 강아솔의 노래...

세화의 한 카페에서 일할 때 그녀의 음악을 처음 만났다. 제주에서 자란 싱어송라이터 '강아솔'의 노래는 나에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목소리에 반했고, 가사를 들으면서 곱씹어 듣게 됐다.

그녀의 목소리와 제주의 많은 이야기가 담긴 노랫말은 듣고만 있어도 제주가 그려지고 뻗으면 닿을 것만 같은 느낌이다. 차분한 목소리로 위로하고 응원하는 듯한 그녀의 음악 덕분에 나는 제주에서 외로웠던 시간들도 잘 견뎌낼 수 있었다. 제주에서 시간과 장소, 분위기에 따라 어디에서 들어낯설지 않은 그녀의 음악 중에 '섬'과 '다 고마워지는 밤' 그리고 '엄마'와 '당신의 파도'라는 노래를 나는 가장 좋아한다.


 '하도리 가는 길'이라는 노래는 마치 강아솔의 노래인 것처럼 그녀는 하도리를 향해 가는 길의 여정을 정말 잘 표현했다. 피아노 선율과 박자, 숨의 템포, 음의 여운 등 나지막한 목소리로 아련한 느낌이 든다.  


하도리 가는 길/강아솔, 작사 작곡/임인건  

하도리 가는 길 따뜻한 밝은 햇살 하얗게 곱게 핀 억새 웃고 있네
지금쯤 철새 들은 호숫가 위를 날까 생각에 잠겨 가던 길을 멈춰 보네

언젠가 이길 역시 우리의 추억이지 지금 나는 이 길을 가 어릴 적 나와 함께
하도리 가는 길 푸른 바다 저편 멀리서 내 님이 나를 오라 부르네

하도리 가는 길 멈춰서 뒤를 보네 아무도 없는 이 길에 나 혼자만
텅 빈 파란 하늘 가끔씩 부는 바람에 슬픔도 잠시 가던 길을 다시 가네

언젠가 이길 역시 우리의 추억이지 지금 나는 이 길을 가 어릴 적 나와 함께
하도리 가는 길 푸른 바다 저편 멀리서 내 님이 나를 오라 부르네
멀리서 내 님이 내게 손짓을 하네 멀리서 내 님이 나를 오라 부르네

작년 겨울에 만난 이원하의 시집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에서는 제주의 자연을 만날 수 있다. 강렬한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섬이 되어버린 입장에서 써 내려간 시들은 제주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내용들이 담겨있다. 자신의 편지 아닌 편지의 첫 문장으로 시작된다는 이 시집의 제목들과 시는 대부분 긴 문장으로 쓰여있다.


"제주에 부는 바람 때문에 깃털이 다 뽑혔어요, 발전에 끝이 없죠"

"삼 년을 버틴 겨울이지만 아직 인사 나누는 사이 아니에요"

"우리 사이를 메우는 것이 바다라는 생각이 들면 육지로 가야 해요

섬에서 자연 같은 일이 유일하게 이거라면 말이에요"

"내가 쓸쓸해도 이 섬에 버티는 이유는 동백꽃 필 때 마침 얼굴이 빨갛기도 할뿐더러

섬에서 살 수 없다면 배 위에서라도 살고 싶었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시인은 섬에서 버티며 살아온 많은 날들에서의 경험을 직접적이기보다는 간접적인 메시지로 표현하며 독자와 소통한다. 자연에 가까이 두고자 하는 마음으로 온 섬 제주, 그 속에서 만나는 자연 같은 일들을 노래하고 있다. 제주의 자연과 내가 만나서 이루어지는 것들과 섬과 나 사이에 일어나는 그 간극들이 마치 내 이야기 같다. 제주에 살며 자신의 정체를 알아가고 알아봐 주고 만져주고 보듬어 주는 일들이 곳곳에 담긴 시집에서 시인의 세월을 어렴풋이 느끼고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위로의 말은 없고 이해만 해주는 바람이 있는 하도리의 적막한 풍경에서 느낄 수 있는 감성들이 표현된 시도 만났다.


여전히 슬픈 날이야. 오죽하면 신발에 달팽이가 붙을까 / 이원하

하도리 하늘에
이불이 덮이기 시작하면 슬슬 나가자
울기 좋은 때다
하늘에 이불이 덮이기 시작하면
밭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혼자 울기 좋은 때다

위로의 말은 없고 이해만 해주는
바람의 목소리
고인 눈물 부지런하라고 떠미는
한 번의 발걸음
이 바람과 진동으로 나는 울 수 있다

기분과의 타협 끝에 오 분이면 걸어갈 거리를
좁은 보폭으로 아껴가며 걷는다
세상이 내 기분대로 흘러간다면 내일쯤
이런 거, 저런 거 모두 데리고 비를 떠밀 것이다

걷다가
밭을 지키는 하얀 흔적과 같은 개에게
엄살만 담긴 지갑을 줘버린다
엄살로 한 끼 정도는 사 먹을 수 있으니까
한 끼쯤 남에게 양보해도 내 허기는 괜찮으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검은 돌들이 듬성한 골목
골목이 기우는 대로 나는 흐른다
골목 끝에 다다르면 대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
거미가 해놓은 첫 줄을 검사하다가
바쁘게 빠져나가듯 집 안으로 들어간다




제주에도 추운 겨울이 왔네요:) 제주의 맛있는 선물인 귤 까먹으며 강아솔 노래 듣고 이원하 시집 한번 읽어봐요:) 분명 제주에 온 듯 멘도롱 꼽딱한 겨울이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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