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자T사춘기딸vs대문자F엄마

6.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by 포카치아바타

우리 딸은 교회 어린이 합창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아이들이 함께하는 혼성 합창단인데, 쭉 이어오던 활동이 이제는 조금 지겨워졌는지, 요즘 들어 자꾸 시큰둥한 표정이다. 하지만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좋은 마음으로 마무리하자며 어르고 달래가며 이어가는 중이다.

고슴도치 엄마의 자랑을 보태자면, 우리 딸은 아주 예쁘고 까랑까랑한 목소리를 지녔다. 허허.

주일에는 중요한 행사가 있어 합창단 아이들이 단복을 입고 강단에 서게 되었는데, 아이들 옷 매무새를 살펴줄 엄마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옷은 스스로 잘 입을 나이지만, 마지막 점검이라도 해주고 싶어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전날 밤, 둘째가 아파 밤새 간호하느라 지친 상태였지만, 다른 엄마들 사이에 혼자 있을 딸을 생각하니 당연히 가야만 했다.

딸과 함께 교회로 향하는 길. 문득 생각해보니 이렇게 둘이서 나란히 걷는 시간이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를 운영하느라 늘 바빴고, 딸과는 7살 차이 나는 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 더더욱 둘만의 시간이 줄어들었다.

이제는 엄마랑 데이트도 할 나이인데, 제대로 함께하지 못한 게 미안하고 짠한 마음이 들었다.

"딸, 우리 손 잡고 갈래?"

"아니? 별론데? ㅎㅎ"

"엄만 딸램 손잡고 걷고 싶은데…?"

"그래, 그럼."

선심 쓰듯 내민 딸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고 작았다. 나쁘지 않았다.

5분쯤 지났을까. 슬며시 손을 놓는 딸.

그래, 우리 딸은 원래 스킨십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

그래도 오늘 아침, 이 손 한번 잡고 걸을 수 있어서 참 좋다.

교회에 도착한 뒤 리허설을 마치고, 단복으로 갈아입는 시간이 되었다. 복잡한 상황 속에서 아이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고, 나 역시 딸을 도와주기 위해 곁으로 다가갔다.

"안 도와줘도 돼. 혼자 할 수 있다고."

딸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옷 카라 부분이랑 타이 매무새가 좀…"

"아, 혼자 할 수 있다고."

귀찮다는 듯한 말투. 내 손을 막아서는 태도. 그리고 눈빛.

누군가 이 장면을 봤을까, 괜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먼저 치밀어 오른 건 였다.

"너 도와주려고 하는 거야. 혼자서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건방지게 굴지 마."

내 말이 딱딱하게 튀어나갔다. 순간, 딸도 나도 아무 말이 없었다.

공기마저 정지된 듯한 그 순간.

아이들은 연습을 더 해야 했고, 나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감정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화는 점점 더 커졌다.

서운하고, 속상하고, 나만 애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억울함까지 밀려왔다.

'사춘기라서… 그래서 그런 거겠지.'

스스로를 그렇게 다독여보려 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나도 사람인데, 감정이 있는데.

아이의 예민한 시기를 이해하려는 노력과는 별개로, 딸의 말투와 태도는 도를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난 해명을 듣고 싶었다. 그리고 사과를 받아야 했다.

그저 “미안해” 한마디면 되는 일이었다.

엄마의 마음은 그런 말 한마디에 금세 누그러질 수 있다는 걸, 딸은 아직 잘 모를 테지만, 이 일은 분명 집고 넘어가야했다.

행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딸은 끝내 아무 말이 없었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었다.

치사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남편에게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이야기했다.

그러고 나서야 남편이 딸에게 말했다.

“그건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그때까지도 딸은 별다른 표정이나 말이 없었다.

정말 아무렇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모른 척 하는 걸까.

셋이 함께 앉아있던 그 순간에도, 딸은 나를 향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늘 그랬다.

어릴 때부터 혼이 나면 딸은 그저 조용히 눈물만 흘렸다.

“잘못했어요”도 없고, “그게 아니라…” 같은 변명도 없었다.

무언가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는데, 늘 말없이 눈물만 뚝뚝.

속이 타는 건 오로지 나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혼자 조용히 마음을 정리한 뒤 편지를 쓰기도 하고, "할 말이 있다"며 다가오곤 했다.

그때 그 상황을 다시 찬찬히 돌아보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다짐을 이야기했다.

혹여 엄마에게 서운했던 점이 있었다면 그때 조심스레 털어놓기도 했다.

그래. 이번에도 그러겠지.

시간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이번엔… 뭔가 달랐다.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까지도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다 학교가 끝난 오후, 딸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다.

"친구랑 놀아도 돼?"

순간, 기가 막혔다.

나는 짧게, 하지만 단호하게 답했다.

"알아서 해. 그리고 너는 엄마한테 사과할 마음이 없는 걸로 알고 있을게."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나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조금 뒤, 딸이 말했다.

“죄송해요. 어제 제가 함부로 말해서 정말 죄송해요. 좀 더 친절하게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저도 많이 후회하고 있어요.”

물론, 그날 딸이 까칠하게 말했던 건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서운하고 화가 났던 건, 내가 도와주겠다는 마음으로 다가갔던 그 손길이 무시당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표현에 문제가 있었던 건 맞지만, 나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가갔고, 그런 진심이 외면당한 것 같아 상처 받았다고.

엄마는 필요할 때만 곁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말해주었다.

이번 일이 단순한 갈등으로만 지나가지 않고,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말은 한 번 내뱉으면 다시 담을 수 없고, 시간은 되돌릴 수 없어.

그걸 꼭 기억했으면 해.”

어쩌면 이 말은 딸에게만이 아니라, 내 자신에게도 건네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춘기의 문턱,

이 시간이 서로에게 상처로 남는 기억이 아니라

애틋함으로 물들어가는 성장의 시간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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