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저 피라미드에 가려고 했을 뿐이야
이집트는 유난히 하늘이 가까워 보이는 나라였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태양도, 밤하늘에 떠오른 커다란 달도 마치 손에 닿을 듯했다. 달빛이 밝게 퍼질 때면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들기도 했다.
밤이 되면 활기를 띠는 한국과 달리, 카이로의 밤은 조용하고 어두웠다. 들개들은 무리를 지어 골목을 돌아다녔고, 길고양이들은 식당 안까지 들어와 거리낌 없이 음식을 얻어먹고 햇살에 몸을 맡긴 채 잠들기도 했다.
히잡으로 온몸을 감싼 여성도 있었고, 머리를 풀고 몸에 딱 붙는 옷을 입은 여성도 있었다. 동양 여자가 지나가면 휘파람을 부는 남자가 있는가 하면, 길을 묻자 다정하게 안내해주는 이들도 있었다.
무슬림들은 일을 하다가도, 식사를 하다가도 하루 다섯 번 들려오는 아잔 소리에 맞춰 메카를 향해 기도했다. 손목에 십자가 문신을 한 콥틱 기독교인들도 볼 수 있었다.
내가 살아오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이곳의 삶은 낯설면서도 무척 흥미로웠다.
'그래, 재밌는 곳이야. 이곳에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먼저 우리는, 미리 준비해 온 돈으로 여행을 즐기기로 했다.
“이집트에 왔으니 피라미드는 꼭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카이로 시내에 들러 이집트의 대표 음식인 코샤리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한 낯선 남자가 다가왔다.
누가 봐도 여행자처럼 보였던 우리에게 그는 자신을 학교 선생님이라고 소개하며, 지갑에서 아들 사진을 보여주었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갈 예정인지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피라미드 근처가 자기 집이라며 마침 자신도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순진했던(?) 우리는 별다른 의심 없이 그와 함께 식당을 나섰다.
그는 식당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지인과 함께 택시를 타자고 했다. 심지어 택시비도 자기가 내겠다며 말이다.
택시에 올라 나일강 위 다리를 건널 때, 그들은 "이곳이 포토 스팟"이라며 잠시 내려 사진도 찍어주었다.
한참을 달리자 저 멀리 피라미드의 윤곽이 보였다. 그는 이곳은 사막이라 택시로는 들어갈 수 없다며, 다른 차를 타야 한다고 했다. 끄덕끄덕하며 따라가니, 곧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프차 한 대가 도착했다.
태어나 처음 타보는 지프차를 타고 사막을 달리기 시작했다. 흡사 사막 랠리처럼 길도 없는 곳을 내달리며,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했다. 어디쯤인지 감각이 무뎌질 때쯤,
“다 왔다”며 차에서 내리라고 했다.
……??
눈앞에 펼쳐진 건, NO ENTRY라고 적힌 삐딱한 표지판과 그 너머, 무너진 듯 덩그러니 서 있는 정체불명의 피라미드.
그는 “이건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진짜 피라미드”라며, 돌무더기 앞에서 “여기가 주방이었을 거고, 여긴 침실이었을 거다”라고 설명을 시작했다.
그리고는 덧붙였다.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피라미드에 특별히 데려다 준 값, 그리고 지프차 비용으로 10만 원을 달라”고.
이집트 물가를 감안하면 10만 원은 큰돈이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들었던 모든 의심은 현실이 되었다.
이 모든 게 짜여진 각본이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이글이글한 태양 아래 그들과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고, 사방이 끝없는 사막뿐이었다.
‘만약 지금 우리를 버리고 간다면... 아무도 우리를 찾지 못하겠지.’
결국 흥정 끝에 요구한 금액 일부를 깎고, 그는 다시 지프차를 태워주었다.
“이번엔 진짜 평범한(?) 피라미드에 데려다 주겠다”며.
.
.
그러나 그는 끝내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진짜 피라미드 근처에 도착하자, 우리를 현지인 마을로 데려가더니, 자신의 삼촌(?)이 운영하는 카펫 가게에 들르게 했다.
그 순간, 참아왔던 우리의 인내심은 폭발했다.
단호하게 거절하고 화를 내자, 그제서야 그는 미안하다며 더 이상의 요구 없이 우리를 피라미드 근처의 길가에 내려주었다.
뜨거웠던 태양,
출입 금지(NO ENTRY) 피라미드,
사막 랠리 같은 질주,
그리고… 그의 이름, 알라딘.
이 모든 것은
평생 잊지 못할,
이집트의 웰컴 인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