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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말랭 Nov 19. 2023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머리 위에 눈이 쌓일지라도.

첫눈이 내렸다.

어제 첫눈이 내렸다. 이번 첫눈은 무척이나 기다렸는데 막상 본 첫눈은 반갑지 않았다. 왜일까. 손 위에 내려앉은 눈송이는 금세 녹아 없어졌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도 보여줄 수 없어서일까,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어서 그럴까.


첫눈이 오는 시기가 빨라졌다. 이제 곧 눈이 쌓이겠지. 고요한 겨울이 좋다. 뽀득뽀득 눈 밟는 소리도 너무 좋다. 유난히 겨울을 타서 그런 걸까. 겨울에 곰이 겨울잠을 자듯 겨울은 나에게 움직이기 힘들어서 그런 걸지도. 내가 곰인가. 곰처럼 겨울에는 가만히 누워 지내고만 싶다. 겨울은 참 움직이기 힘든 시기, 의욕이 없어지는 시기다.


눈이 내리면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난다. 좋아하는 사람이 겨울을 좋아한다고 하면 나도 겨울이 좋아질 것이다. 그럼 나는 겨울 곰에서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가 될 것이다. 눈이 내려도 난 그 자리에 서서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나는 세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하면서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머리 위에 눈이 쌓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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