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말랭 Nov 24. 2023

사람으로 태어난 이유로 쓰는 글


요즘은 아침에 늦잠을 잔다. 열 시에 나가야 하면 아홉 시 반에 일어나서 비몽사몽 세수하고 이 닦고 옷을 입는다. 오늘은 셔츠의 단추를 잘못 꿰었다. 다시 풀러 다시 꿰었다. 처음부터 하나씩. 눈도 잘 안 뵈는지 카톡 답장도 네.라고 답해야 할걸 넉.이라 답했다. 서둘러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마스크를 낀다. 핫팩을 움켜쥐고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출근한다.

아침을 챙겨 먹어야 먹어야 하지만 이런 식이면 아침을 거르게 된다. 서둘러 가야 한다는 생각에 편의점에 김밥이라도 사 올 것도 까먹고 매장에 도착했다. 아차, 내 아침. 다행히 매장에 있는 컵밥을 꺼내 먹는다.


아침은 사람 몰골이 아니다. 제정신이 아니라고 할까. 날이 갑자기 추워졌다. 바람이 칼처럼 매서워졌다.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다. 창밖을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호호 불어 마시며 부업을 했다.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은 빨리 간다. 점심쯤 되니 또 배가 고파진다. 뭘 했다고 또 배가 고프냐며 하소연했다. 꼬르륵 소리 나는 고픈 배를 부여잡고 이른 퇴근을 했다. 집에 오자마자 부엌 불도 안 켜고 가스레인지 불부터 켰다. 전자레인지에 밥을 돌리고 나서야 방에 불을 켰다. 손을 씻고 옷을 갈아 입자 전자레인지 소리가 났다. 띵-. 허겁지겁 밥을 먹었다. 나는 오늘 뭘 했나. 왜 사람으로 태어나서 씻고 출근하며 매끼를 챙겨 먹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버티지를 못하는 건가.


어제는 큰 걸 보지 못하고 작은 것에 눈앞이 가려져 종일 우울했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욕심 때문인 것 같았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내 힘으로 해결하려 하다 보니 생기는 불만도 있었다. 좋은 일들도 있었는데 좋아하지 못하고 내 눈앞의 이익만을 탐했다. 항상 긍정적이었던 사람이 한번 우울해지니 끝이 없었다.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펑펑 울었다. 눈물 콧물 다 쏟은 휴지를 돌돌 말아 휴지심에 꼭꼭 박아 넣었다. 더 이상 넣을 공간이 없었다. 그제야 눈물이 그쳤다. 다행히 울고 나니 시원했다. 왜 하필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런 수고를 겪어야 하는지 그냥 빨리 천국으로 갔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가는데 순서 없다고 순서가 올 때까지 버텨야지. 버티자.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 머리 위에 눈이 쌓일지라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