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힘

by 올드미스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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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트콤 ‘프렌즈’에서 ‘조이(Joey)’의 극 중 직업은 ‘배우’이다. 시트콤 ‘프렌즈’ 밖에서는 ‘프렌즈’에 등장하는 ‘프렌즈’ 모두가 ‘배우’인데, '조이(Joey)'는 시트콤 밖에서도, 시트콤 안에서도 ‘배우’이다.


시즌 2 에피소드 18편에서 ‘조이(Joey)’의 극 중 역할이 바뀌었다. 아니, 시트콤 안에서 그의 직업은 여전히 배우이지만, 그는 다른 역할을 위해 다시 오디션을 보는 중이다. 사연인즉, 그가 출연하던 TV 드라마가 있는데, 갑자기 드라마 작가가 그를 사망하게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트콤 안의 TV 드라마 밖에서 그가 한 어떤 공식적인 발언이 TV 드라마 작가의 심기를 건드린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후 TV 드라마 내에서 그가 아니, 그의 캐릭터가 죽음을 맞고 만다. ‘조이(Joey)’는 처음 대본을 받아 보았을 때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곧 드라마에서 그 인물이 죽는 것을 연기하게 된다. 그리고 촬영을 마친 드라마가 방송되자 그가 연기한 캐릭터의 죽음은 공식화된다. 그는 이제 시트콤 안의, TV 드라마 밖에서 다시 배역을 구하러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중이다. 하지만 아직 사망한 그 캐릭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바람에 새로운 역할을 구하는데 적잖이 고생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시청자인 나는 ‘조이(Joey)’의 새로운 배역이 전의 배역과 유사성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 진다. 그렇지만 시트콤 전개는 그렇게 심심하게 흘러가지 않고 있다. 시트콤에서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장치인지, ‘조이(Joey)’의 운명과 커리어는 오히려 점점 가혹해지는 중이다. 그러고 보면 이 시트콤의 방송작가들도 만만치 않은 듯싶다.


그래도 시즌 2 에피소드 18편까지 왔는데, 갑자기 극 중 ‘조이(Joey)’가 사망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겠지. 혹여 극 중 ‘조이(Joey)’를 연기하는 배우 ‘맷 르블랑’이 밉보여도 극 중 ‘조이(Joey)’에게 너무 가혹하게 굴지는 말아달라고, 팬레터를 보낼까 싶다가도 이미 이 시트콤은 오래전에 종영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그저 소리 없이 외마디 비명만 지르는 중이다. 이미 완결된 시트콤이지만, 아직 스포 당하지 않은 나는 이 시점에서 ‘‘조이(Joey)’의 운명을 지켜보는 시트콤 밖의 사람으로, 시트콤을 안을 향해 “‘조이(Joey)’없는 ‘프렌즈’는 안 된다고요.”라며 시트콤 내에 들리지 않는 외마디 비명만 외치게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어쩔 수 없이 ‘해피 엔딩’식 결말이 좋아진다. ‘열린 결말’은 내가 결말을 상상하면서 결말을 채워나가는 재미 혹은 곱씹으면서 생각할 여지를 주니까, ‘새드 엔딩’은 현실의 날카로움을 반영하니까 역시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해피 엔딩’식 결말이 좋은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극 중 캐릭터의 극 중 삶의 맥락에서 극 중에 벌어지는 일들을, 나의 삶의 맥락에 겹쳐보다가, 그게 겹쳐지고 나면, 극 중에서 캐릭터의 운명이 해피 엔딩일 때, 내 삶의 맥락도 해피엔딩으로 만들어 가고 싶게끔 동기부여가 된다.


아, 아니다. ‘열린 결말’이 더 좋은 것 같다. ‘해피 엔딩’은 좀 수동적인 것 같다. ‘시트콤’ 안에서 결론 나지 않은 캐릭터의 운명 혹은 여운을 시청자가 ‘시트콤’ 밖에서 채워나갈 만한 여지를 주는, ‘열린 결말’이 더 좋은 것 같다.


아, 그건 그렇고, ‘조이(Joey)’의 다음 운명은, 일단 그가 어떤 새로운 역할을 만나게 되든, 혹은 그에게 어떤 새로운 역할이 주어지든, 고정 배역이면 좋겠다. 시트콤 안에서 배우로 존재하는 동시에 시트콤 안의 그의 일상이 너무 흔들리지 않도록 말이다. 생각난 김에 ‘조이(Joey)’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드라마 작가에게 팬레터라도 띄우려고 보니까, 그러고 보니 이 시트콤, 이미 종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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