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을 것 같은 날

by 올드미스 다이어리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이 왔다. 이번 달에는 그렇게 오지 않을 것 같은 날이 10월 12일이었다. 10월 12일은 주말과 공휴일의 고비를 여러 번 지나고, 대체 공휴일의 고비도 두 번이나 건넌 뒤에야 와 주었다. 하지만 이 날은 그렇게 기다린 것에 비해 상당히 단호하면서 약간 쌀쌀했다. 이른 아침부터 핸드폰을 울려댄 뒤 도착한 스팸문자가 불길한 예감을 주었고,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정성껏 단장한 뒤 집을 나서자마자 기다렸던 소식은 이내 나쁜 소식으로 둔갑했다.


아침부터 결말이 난 나쁜 소식에 대한 실망감을 떨치려는 데 잠깐 멍해졌다. 나쁜 소식이란 거절과 관련된 일이었다. 반복되는 거절에 익숙해지기란, 그러면서도 다시 거절당할지도 모르는 일에 바로 착수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 소식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떨어진 식초 음료를 사러 마트에 가는 일 밖에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너무 단호하게 날아왔다. 그래도 그 소식이 빨리 날아온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소식을 듣고 난 뒤, 남은 하루가 너무 많았다.


자가 치유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잠깐 호흡을 고른 뒤, 전혀 관련 없지만 약간 사소해 보이는 일에 상당한 품을 들여보기로 했다. 지하철 한 정거장 떨어진 거리에 있는 마트에서 식초 음료를 팔고 있었다. 식초 음료가 해독에 좋다고 해서 마시는 중인데 그게 마침 떨어진 참이었다. 지하철 한 정거장 거리를 품을 들여 걸어간 뒤 그곳에서 식초 음료를 사기로 했다.


천천히 걸었다. 어제는 날씨가 약간 쌀쌀하더니 얄궂게도 오늘 아침은 날씨가 화창하고 맑았다. 순간 어릴 적 듣던 유행가 ‘이별 공식’의 가사가 겹쳐졌다.

“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해봤니. 비 오는 날 보다 더 심해. 작은 표정까지 숨길수가 없잖아. 흔한 이별노래들론 표현이 안돼”였던가.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마트까지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데 누군가 앞에서 끌고 가는 느낌이었다. 더 생각할 거리가 없었다. 그래도 마트에는 도착하고 말았다.


다행히 아직 할 일이 있었다. 마트에서 식초 음료를 사는 중요한 일이 남아 있는 것이다. 약간의 보상심리로 커피와 초콜릿 과자도 함께 고르기로 했다. 날씨가 내 사정과 무관하게 해맑기만 하니 커피는 나의 기분과 가깝게 고르기로 했다. 차가우면서 깊고 어두운 맛에 카페인이 가득한 커피를 찾는데 마침 ‘콜드 브루’가 보였다. 오래 고민하지 않고 ‘콜드 브루’를 집어 들었다. 커피의 씁쓸함을 완화해줄 단 맛의 초콜릿 과자류로는 양이 적은 것을 고르기로 했다. 번들로 묶인 여러 초콜릿 과자류와 초코 타르트가 보였지만 양이 적은 초콜릿 빼빼로를 골랐다. 양이 적은 빼빼로는 넘치지 않고 약간 아쉬운 느낌이 들어서 이럴 때 딱 좋을 것 같았다. 아쉬울 때 얄짤 없이 마지막인 느낌이 들게 하는 것 말이다.


그렇게 해독용 식초 음료와 콜드 브루, 초콜릿 빼빼로를 사들고 마트를 나섰다. 해독용 식초 음료는 양이 과하지 않아 무겁지 않았다. 한 사람이 아침마다 부지런히 먹으면 일주일에서 이주일 먹을 정도의 분량이었다. 식초음료를 가방에 담은 뒤, 콜드 브루 커피와 초콜릿 빼빼로를 먹으며 다시 어디로 향해야 할지 생각했다. 별 수 없이 요즘 항상 다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때 마침 콜드 브루 커피와 초콜릿 빼빼로가 입에서 섞인 뒤 녹아들었다. 그리곤 금방 없어져서 이제 그만인 느낌에 부합해 줬다. 마음이 아주 조금 가벼워졌다. 시간을 보니 아침과 점심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그래도 하루가 많이 남아 있었다.


문득 이렇게 매일 어디로 향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향하게 되는 곳이 정해지면, 그곳의 지역 화폐로 그곳에서 브런치 한 끼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손품과 발품을 팔아서 브런치 카페를 찾은 뒤 그곳에서 소울푸드로 브런치 한 끼를 하자 다짐했다. 브런치가 아니라면 수제 화덕 피자도 좋을 것 같다. 아, 생각한 게 상상되었다.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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