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돌림’에 기원이 있다면, 일본이라고 생각했다. 웬걸, 이 날로 미국 시트콤 ‘프렌즈’ 시즌 2, 에피소드 2편을 시청하기에 이르렀는데, ‘프렌즈’ 사이에 ‘뉴 페이스’가 등장하면서 '프렌즈'가 그녀를 ‘따돌림’시키고 있는 중이다.
미국 시트콤 ‘프렌즈’는 책에 비유하면, 정말 가독성이 좋은 책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사실 처음엔 ‘영어 회화’를 배울 생각으로 미국 시트콤 '프렌즈'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영어 자막’으로 해두고 시청하거나, 자막을 Off 한 상태로 보고 있는데, 거의 병풍처럼 지켜보기 때문에 영어가 늘어도 청취만 조금 늘고 있거나 혹은 눈치가 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시즌 1의 에피소드 24편을 지나서 지금 시즌2 에피소드 2편을 시청하고 있는 걸 보면, ‘프렌즈’가 극의 전개나 대사가 정말 맛깔난 시트콤인 것 같다. 특히 매 에피소드를 볼 때, 본 것 또 본 것 같은 느낌이 나지 않는 점이 신기하다.
왜 그런가 생각해봤는데 플롯이 여러 개인 것도 그 이유 중의 하나인 것 같다. 그러니까 매 에피소드마다 남자 셋, 여자 셋의 ‘프렌즈’ 사이에서 사건이 생기기보다는, 한 인물에게 특이한 사건이 생기거나 ‘프렌즈’ 중 둘 사이에서 러브라인이나 우정문제로 그 두 사람이 사건의 중심이 되고는 한다. 때문에 매 에피소드마다 중심 플롯과 사소한 플롯 한 두 개가 같이 진행되다가 한 편의 에피소드가 끝날 때쯤 모든 플롯이 같이 마무리된다.
그러니까, 어떤 느낌이냐면 마치, 친구와 만날 때 1:1로 만난 것이 아니라, 친구들 6명이 한 테이블에 앉아서 타임라인인 20분 동안 서로 살아가는 얘길 하는 것 같다. 근데 1명만이 아닌, 3명 이상과 얘기하면서 3명 정도의 일상에서 벌어진 일을 알게 되는데, 신기한 것은 타임라인이 종료되는 20분 후에, 그 3명 간의 일상이 이상하게 엮여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달까. 3개 정도의 플롯을 엮어서 마지막에 한 지점에서 만나게 하는 방식이 ‘시트콤’ 작가들의 묘한 재능인 것 같다.
이번 ‘프렌즈’ 시즌 2, 에피소드 2편에서는 에피소드 1편부터 잠깐 등장했던 ‘뉴 페이스’가 ‘프렌즈’ 사이에서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플롯이 펼쳐진다. ‘프렌즈’ 입장에서 이 ‘뉴 페이스’는 ‘프렌즈’ 사이를 균열시키는 인물이다. 동시에 주요 플롯으로 양쪽 플롯에 같이 얽혀 있는 ‘로스(Ross)’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의 ex-wife인 캐럴(Carol)이 출산한 뒤, 아기인 ‘벤(Ben)’에게 ‘모유 수유’를 하는데 이를 지켜보는 남자 ‘프렌즈’와 여자’ ‘프렌즈’들 사이에서 ‘모유 수유’ 혹은 ‘모유’에 대한 호기심과 모성애, 부성애가 교차한다. 이와 동시에 또 다른 플롯으로 ‘조이(Joey)’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의 일자리 전선에 그의 영역을 침범한 ‘카우보이’가 등장한다.
플롯마다 풀어보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 같지만, ‘프렌즈’ 사이를 균열시키는 ‘뉴 페이스’의 등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해보려고 한다. 은근히 ‘따돌림’을 당하는 이 캐릭터는, 사실 본인이 왜 ‘따돌림’을 당하는 건지 아직 모른다. 그게 ‘시트콤’으로서는 웃음의 포인트 중 하나이자 ‘극’으로서는 비극이 된다.
사연인즉 이렇다. 로스(Ross)는 레이첼(Rachel)을 이성으로 마음에 두고 있는데, 레이첼(Rachel)은 로스(Ross)의 진심을 모를뿐더러, 로스(Ross)가 진심을 말하기엔 두 사람의 연인으로서의 타이밍이 계속 어긋난다. 레이첼(Rachel)의 생일날 로스(Ross)는 선물을 남긴 뒤, 사정상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른다. 로스(Ross)가 빠진 상태로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하던 레이첼(Rachel)은 로스(Ross)가 남기고 간 선물을 풀어보는데, 그녀가 너무 갖고 싶어 했던 앤티크 브로치가 있는 것을 보고 감동한다. 이때 로스(Ross)의 진심을 알고 있던 챈들러(Chandler)는 실수로 레이첼(Rachel)에게 로스(Ross)의 진심을 말해버린다. 레이첼(Rachel)은 로스(Ross)가 중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 공항에 갔다가 로스(Ross)를 놓치고 돌아온 뒤 그와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진다. 로스(Ross)의 여자 형제인 모니카(Monica)는 이 관계에 대해 듣고 나서 네가 어떻게 로스(Ross)를 찰 수 있냐며 관계가 잘 되길 협박, 아니 응원한다. 로스(Ross)가 중국에서 돌아오는 날, 레이첼(Rachel)은 그 사이에 만나던 남자와 대화하는 중에 자꾸 로스(Ross)가 떠오른다. 결국 그 남자에게 지금 공항에서 친구를 데리고 와야 한다고 사과한 뒤 공항으로 향한다.
복잡하지만 이번 에피소드의 한 줄기인 ‘따돌림’ 플롯은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걸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다. “로스(Ross)가 중국에서 ‘뉴 페이스’인 중국계 여자 친구와 함께 돌아왔다.” 친구들은 뉴 페이스인 ‘줄리(Julie)’의 등장에 적잖이 당황하고, 이 플롯은 친구들이 ‘줄리(Julie)’와 친하게 지내는 순간, ‘레이첼(Rachel)’을 괴롭게 만드는 상태가 되게끔 흘러가게 된다. 곧 ‘레이첼(Rachel)’은 ex-boyfriend인 이탈리아계 남자 친구를 데려와서 애정행각을 하는 것으로 로스(Ross)에게 맞불을 놓는다. 하지만 로스(Ross)는 ex-wife인 캐럴(Carol)이 레즈비언 파트너와 사는 데다가, 이후에 마음을 준 ‘레이첼(Rachel)’과는 이성관계로 진행되지 않아서 답답해하던 중이다. 현재 그녀의 마음을 알기는커녕 그녀에게 혼자 더 마음을 주는 것에 적잖이 지친 상태라 그는 친구들에게 중국계 줄리(Julie)를 공개적으로 연인으로 소개한 뒤 연인관계를 이어간다.
시트콤으로서는 웃음 포인트이자, 극으로서는 비극이 여기에서 다시 시작된다. 이번 에피소드의 ‘뉴 페이스’인 ‘줄리(Julie)’ 본인은 ‘프렌즈’ 사이의 역학관계를 전혀 모른 채, 이들과 잘 지내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녀는 남자 친구의 친구들과 잘 지내보려고 ‘쇼핑’ 가자는 얘길 꺼내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따돌림이 확인사살이 되는 길을 걷게 된다. 로스(Ross)의 여자 형제인 ‘모니카(Monica)’는 로스(Ross)의 뜻에 따라 ‘줄리(Julie)’와 쇼핑을 다녀오기는 하지만, 동시에 친한 친구인 ‘레이첼(Rachel)’의 눈치를 본다. 동시에 ‘줄리(Julie)’와의 친분 쌓기가 ‘레이첼(Rachel)’에게 밝혀지는 것이 껄끄러워진다. ‘레이첼(Rachel)’은 ‘줄리(Julie)’가 로스(Ross) 뿐만 아니라 ‘모니카(Monica)’까지 빼앗은 것 같아 서운함을 느끼고 ‘모니카(Monica)’에게 한바탕 하소연을 한다. ‘줄리(Julie)’는 이 모든 사연에서 배제된 채 남자 친구의 친구들과 친해지려는 노력을 할 때마다 냉기가 감도는 상황을 감수해야 하니 당황스럽다.
시즌 2 에피소드 2편에서 벌어진 이 일은 말로 풀어놓으니 복잡하지만 시트콤에서는 단 20분 간, 여러 플롯의 한 줄기로 진행되었다. 이번 편의 마지막에 이르러서, ‘뉴 페이스’인 줄리(Julie)의 따돌림 사건은, 레이첼(Rachel)의 탐탁지 않은 반응과 함께 줄리(Julie)와 레이첼(Rachel)이 그래도 언젠가 같이 영화를 보기로 약속하면서 마무리된다. 주요 플롯이었던 ‘모유’ 사건은 아기가 먹는 ‘모유’를 성인 남자 혹은 성인 여자가 맛보는 것에 당황하던 로스(Ross)가 병에 담긴 ‘모유’를 맛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동시에 진행된 ‘조이(Joey)’의 플롯은 에피소드에서 가장 먼저 마무리되었다. 일자리 전선에서 ‘카우보이’와 경쟁하던 ‘조이’는 카우보이와의 기싸움에서 맞불작전을 펴던 중 의도와 다르게 엉뚱하게 이긴다.
아, ‘따돌림’에 기원이 있다면, 일본이라고 생각했다. 한 때 ‘은따’, ‘왕따’ 등 ‘따돌림’에 대한 용어까지 세분화할 정도로 구체적인 ‘참고 사항’이 있던 ‘따돌림’이란 것이 섬나라인 일본에서 건너온 문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미국 시트콤 ‘프렌즈’ 시즌 2, 에피소드 2에서 이런 상황이 ‘웃음’과 ‘비극’ 코드로 동시에 사용되는 걸 보고 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구체적인 용어가 존재하던지 그렇지 않던지 이건 어느 나라 어느 문화권에서나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보편적인 문화구나 싶다. 물론 시청자가 시청자로서의 거리를 두고 보느냐, ‘프렌즈’ 중의 한 명에 감정 이입하느냐, ‘줄리(Julie)’에 감정 이입하느냐에 따라 그 상황에 대한 ‘웃음’과 ‘비극성’의 비중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