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던데

by 올드미스 다이어리

‘행복주식회사'라는 TV 예능 프로그램에 만원의 행복’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연예인이 예산 ‘만원’만 가지고 일주일을 버티는 미션을 완수해야 하는 콘셉트의 TV 프로그램이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찾아보니 2003년부터 2008년까지 방영되었는데, 당시 물가로도 만원만 가지고 일주일을 보내는 일이 빠듯했는지, 나중에는 억지 설정도 자주 등장하고는 하다가 폐지되었다.


나는 추석 연휴가 지난 뒤로 갑자기 급격하게 예산이 기우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하루 ‘오천 원’으로 행복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게 되었다. 2021년의 물가로 하루 ‘오천 원’ 범위에서 일주일 정도 버틸 수 있나 해보고 있는데, 이미 ‘미션 임파서블’인 것으로 드러났다. 아, 요즘 맥도널드의 프로모션인지 마케팅인지 모를 ‘해피 스낵’ 찬스를 자주 쓰고 있으니, ‘오천 원의 행복’이라면 ‘오천 원의 행복’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미션 임파서블인 것으로 결론 났다.


타인의 불행을 보면서 웃을 때, 이상한 안도감이 드는 한편 뒤끝이라고 해야 할까, 끝에 이상한 불안감이 남는 것 같다. 요즘 미국 시트콤 ‘프렌즈’를 정주행 하는 중인데, 이 시트콤의 웃음 코드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동시에, 어디엔가 요즘 나의 불행이기도 한 ‘오천 원의 행복’ 이야기를 통해 위안을 찾는 사람도 있을까 싶기도 하다.


아, 나는 구직 중이다. 브런치 프로필에 직업을 기재하라는 란이 나와서 자꾸 눈에 걸리는데, 직업은 재취업이 결정 나야 정확하게 기재할 수 있을 것 같다. 재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넣고 연락을 기다리고 하는 구직 사이클을 맴돌던 중 재취업 기간이 이번 추석 연휴까지 길어지는 바람에 희망고문도 길어졌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덕분에 일상 속에서 미국 시트콤 ‘프렌즈’의 에피소드를 하루에 두 편 정도는 보게 되는 루틴이 자리 잡았다. TMI(Too Much Information)로 이 루틴이 자리 잡게 된 연유에는 ‘넷플릭스’의 월정액 결제 방식이 한 몫했다. 시즌 1의 에피소드 15편까지 보면 월 정액료를 넘기기 때문이다. 일종의 손익분기점이랄까. 셈법이 뷔페에서 소화도 못 한 채 몇 그릇 먹어 치우고는 그릇 수 세고 있는 것과 비슷한 자괴감이 밀려오는 것과 같은 방식이지만 말이다.


그렇게 어찌어찌하여 오늘로 미국 시트콤 ‘프렌즈’ 시즌1 에피소드 13편까지 정주행 했다. 정주행이 가능한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다. 앞서 말했던 여러 가지 이유 중에 그중 영어회화를 위한 방편 중 하나라는 요인은 의외로 정주행이 가능한 요소라기보다는 정주행을 포기하게 만드는 요소인 것 같다. 대화가 잘 안 들려서, 상황이 이해가 잘 안 가는데도 모두가 웃고 있으면 시트콤을 계속 보기 힘들어지니까 말이다. 비록 모든 대화가 잘 들리지는 않지만 정주행이 가능한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를 다시 생각해봤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프렌즈의 웃음 코드에는 등장인물인 여섯 친구들과 그 주변의 일상에서 가관일 정도로 불행한 상황이 벌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그걸 웃어넘기게 만드는 부분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정주행을 막 마친 시즌 1의 에피소드 13편의 주요 사건만 해도 그렇다. 조이(Joey)의 아버지가 조이(Joey)의 숙소에 찾아온다. 조이(Joey)의 아버지가 전화 속 상대와 달콤한 인사를 나누길래 조이(Joey)가 전화를 받아서 인사를 나누다가 갑자가 당황하며 말한다. “엄마라면서요.” 조이(Joey) 곁에서 당당하게 달콤한 대화를 나눈 전화 속 상대는 엄마는커녕, 아버지의 여자 친구이다. 언제부터냐고 물으니 조이(Joey)의 아버지, 빅 조이(Big Joey)는 조이(Joey)의 어린 시절 추억의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려고 한다. 조이(Joey)가 그렇게나 오래되었냐며 당황한 기색과 실망한 기색을 동시에 드러내려고 하자, 빅 조이(Big Joey)는 그게 아니라며, 자신에 대해 좋은 점을 떠올리게 했던 거라고, 전화 속 여자 친구는 6년 정도 되었다고 대답한다. 이튿날 모르는 중년의 여성이 조이(Joey)와 조이(Joey)의 룸메이트인 챈들러(Chandler)의 숙소 현관문 앞에 앉아 있다. 누구시냐고, 뭘 도와드려야 하냐고 물으니 중년 여성은, 조이(Joey), 귀여운 리틀 조이(Little Joey) 말고, 빅 조이(Big Joey)를 찾아왔다고 한다.


여기에서 시청자인 나는 조이(Joey)의 주변인으로 조이(Joey)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그런데 웃음이 난다. 내 이야기라고 생각해도 웃기고, 다행히 이 막장 전개가 내 이야기가 아니라 더 웃기다. 마침 다음 장면은 조이(Joey) 옆에 있던 친구이자 룸메이트인 챈들러(Chandler)도 조이(Joey)의 표정을 살피다가 웃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장면은 다시 숙소 내부로 전환되고, 챈들러(Chandler)는 빅 조이(Big Joey)의 여자 친구와 수다를 떠는 중, 아니 그녀의 수다를 받아주는 중이다. 이때 빅 조이(Big Joey)가 숙소에 들어오고, 여자 친구는 빅 조이(Big Joey)에게 그가 자신과 같이 있을 때, 가발을 놓고 갔다며 건네주러 왔다고 한다. 빅 조이(Big Joey)는 고맙다며 시간이 늦었으니 아침에 가라고 하지만, 조이(Joey)는 이 숙소에서 나가주시라고 한다. 그러자 빅 조이(Big Joey)가 여자 친구에게 말하길, 그럼 호텔에 가잔다. 그렇게 빅 조이(Big Joey)가 여자 친구와 함께 조이(Joey)와 룸메이트인 챈들러(Chandler)의 숙소를 나가려는 찰나, 조이(Joey)가 막는다. 본인이 감시할 수 있게, 아버지는 본인의 방에서 묵으시고 여자 친구는 챈들러(Chandler)의 방에서 묵으시라는 것이다. 그 와중에 빅 조이(Big Joey)의 여자 친구의 대사, “엄격하네”


조이(Joey)의 시점에서 이 모든 불행하고 어이없는 일련의 사건들은 시청자에게 웃긴 일이다. 얼마나 더 상황이 악화될까. 악화될수록 흥미진진한데, 에피소드의 특성상 이 모든 일들은 에피소드가 종료되기 전에 언젠가 봉합된다. 시청자들은 암암리에 어떤 식으로는 갈등이 해결될 것을 예상한다. 그런데, 이번 편에서 이 갈등이 해결되는 방식은 약간 독특했다. 점점 개념 없는 캐릭터로 묘사되는 중년의 여자 친구는 이튿날 건너편의 여자 친구들이 머물러 있는 숙소에 있는 샤워실까지 빌려 쓰기에 이르는데, 이번에 여자 친구인 모니카(Monica)와 레이첼(Rachel) 역시 그녀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샤워실이 비어있어서 써도 되긴 하지만, 그런데, “그쪽 누구세요?” 아, 여기는 갈등이 봉합되는 지점이 아니라 아직 막장이었다.


이튿날 조이(Joey)의 엄마가 조이(Joey)의 숙소를 찾아온다. 다짜고짜 터프하게 조이(Joey)의 머리를 후려친다. 그리고 이어지는 조이(Joey) 엄마의 이야기인즉, 빅 조이(Big Joey)에게 여자 친구가 있는 걸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고 있는 거란다. 근데 빅 조이(Big Joey)는 여자 친구가 없을 때보다 여자 친구가 생긴 뒤로 다정해지고 자신에게 잘해서 모른 척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그녀의 표현인즉 ‘취미가 생긴 것’인데 조이(Joey)가 망쳐놓았다며 조이(Joey)를 타박한다. 조이(Joey)는 엄마에게 엄마가 10배 더 낫다고 답하고, 친구들에게 자신과 가족에게 벌어진 사건과 그 사건이 마무리된 방식을 공유한다. 그렇게 조이(Joey)의 엄마의 특이한 관점으로 인해 시즌 1 에피소드 13편의 갈등이 특이한 방식으로 해소된다. 아니, 해소되었다.


따라 웃다가 넷플릭스 창을 닫았는데 찜찜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사건이라도, 혹은 각자의 시점이라도 정리해보자 싶었다. 그리고 내가 시청자였다가 조이(Joey)로 감정 이입했다가 조이(Joey) 엄마로 감정 이입한 지점에서 서늘함을 느꼈다. 아, 빅 조이(Big Joey)로 감정 이입할 일은 없을 것 같고, 게다가 빅 조이(Big Joey)의 여자 친구 시점과 캐릭터까지 가보면 그 시점은 더더욱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뒤끝이라고 해야 할까, 끝에 이상한 불안감을 곱씹다가 결국 다시 시청자로 돌아오니 이상한 안도감이 드는 한편, 다시 이번 에피소드 역시 가볍게 웃고 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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