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더 월드

(Welcome to the world)

by 올드미스 다이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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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듄(Dune)’을 보았다. 국내 개봉일인 당일 보게 되었다. 꼭 보려던 건 아니었지만, ‘자본주의’에 대한 우화라고 중론이 모아지고 있는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가 된 것 마냥, 아니, 그 게임에 참가하기 위한 노력들이 무한 반복되려는 찰나에, 아예 분위기를 바꿔서 SF 영화로 기분전환을 하려고 이 영화를 보았다.


근데 웬걸, 약간 속은 기분이었다. 너무 최신 영화라 이 영화에 대해서는 스포일러가 되길 자제하려고 한다. 때문에 영화를 관람한 뒤의 감상 위주로 말하자면 이 영화는 ‘디스토피아’에 가까웠다. ‘디즈니’ 영화류의 해피엔딩 영화로 정화해야 할 것만 같다. 물론 디스토피아 영화도 유토피아 영화도, 새드엔딩도 해피엔딩도 상관없을 때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기분 전환하려는 찰나에 예상외의 디스토피아 세계관과 만나게 되는 것은 개인적으로 극약 처방이기에 속은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데자뷔가 하나 겹쳐진다.


학창 시절, 생일이 연말 시험기간이었다. 생일 계모임을 들었는데, 매번 내 생일 때마다 시험기간이라 제대로 축하를 못 받는 일이 반복되었다. 연초 생일인 친구들을 앞서 축하해준 뒤 내 생일이 오면 문자로 축하를 받거나 잊히다가 시험기간 이후에 어색하게 축하받기를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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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생일날은 ‘판타지 영화’로 크게 홍보되었던 ‘판의 미로’가 개봉 중이었다. 그것도 개봉하는 주말에 봐서, 개봉일에 가장 근접할 때였는데, 우울해서 셀프 축하 겸 기분전환을 하려고 별생각 없이 ‘판의 미로’를 보기로 했다. 그런데, 웬걸, 가장 먼저 당했다. ‘판의 미로’는 판타지 영화이지만 ‘디스토피아’를 다룬 영화였던 것이다.


생일에 ‘서프라이즈’가 있다면 영화 '판의 미로'를 사전조사 없이 본 건, 정말 제대로 ‘서프라이즈’였다. 꼭 생일에 기분전환을 하려던 게 아니더라도 이전에 ‘해리포터’ 시리즈나 ‘반지의 제왕’ 시리즈류의 판타지 영화를 본 뒤에 그 여운을 잊지 못하고 이 영화를 선택했던 많은 사람들이 초반에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던 걸로 기억한다.


‘판의 미로’는 ‘판타지 장르’의 다른 계보를 연 것으로 이후에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그리고, 예상외의 판타지 영화를 본 관객의 반응과 관련된 논란은 영화 마케팅이 ‘해리포터’와 ‘반지의 제왕’류의 판타지 장르로 포지셔닝이 된 것에 대한 문제로 모아졌다.


사실 영화 ‘듄(Dune)’은 그 정도까지의 서프라이즈 혹은 반전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속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단순하게도 ‘티모시 샬라메’의 극 중 캐릭터와 ‘젠데이아 콜먼’의 극 중 캐릭터에 대한 기대감이 영화를 보기 전에 드는 어떤 불길함을 상쇄했다. 물론 ‘티모시 샬라메’의 필모그래피 중에 내 정서적, 심리적 장벽을 넘지 못한 내용의 ‘영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대형 영화는 대중적인 영화에 더 가까울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근데 아차, 감독이 상업적 괴작을 잘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 ‘드니 빌뇌브’라는 것도 역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 ‘듄(Dune)’을 보는 동안, 여하튼 그렇게 엄청 긴 러닝타임 동안 꼼짝없이 디스토피아에 갇혀있었다. 그리고 다음 시리즈를 예고하는 듯한 엔딩과 함께 엔딩 크레디트가 뜨는 순간, 착잡해졌다. 쿠키 여부는 궁금하지 않아 졌고, 우선 급하게 디스토피아를 나왔다. 이 영화에 악평을 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모든 것이 기분 탓이다.


우울한 사람을 디스토피아로 데려가는 감독의 저력에 감탄하면서, 그것도 감독이 ‘디스토피아’에 ‘티모시 샬라메’와 함께 데려다 놓는 바람에 러닝타임까지 ‘디스토피아’에 있도록 수를 쓰는 저력에 또 한 번 감탄하면서 간신히 디스토피아를 나온 뒤 다시 향할 곳을 떠올렸다.


사실, 그저 한 없이 단순해지고 싶다. 기분 전환하려면 ‘테마파크’ 같은 곳에 가야 딱 인 것이다. 뭐, 테마파크에 가도 꼭 익스 트림한 놀이기구만 타서 힘을 다 쓰고 오는 경우도 있지만, 지금 나는 그저 테마파크에 가서 아무 생각 없이 퍼레이드를 보며 날것의 현실을 퍼레이드의 화려함에 덧씌우거나 흘려보내고 싶다.


그렇게 중얼거리며 잔뜩 추워진 날씨에 빨리 지하철을 타려고 종종걸음으로 역을 향해 걸어갔다. 지하철 플랫폼을 향해가는데, 이미 열차 한대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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