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태 Aug 30. 2018

모토분의 천재소년 테오

2.21. 모토분-피란

모텔이 도로변에 바로 붙어 있어서인지 차 소리 때문에 간밤에는 푹 자지 못하고 잠을 설쳐야 했다. 그래도 아침을 먹으려고 내려왔더니 이것 저것 먹을 것들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어서 기분이 좋아졌다. 


손님은 어째 우리밖에 없는 것 같은데 아주머니들은 알 수 없는 크로아티아 말로 음식들에 대하여 설명을 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이곳 사람들도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베니스를 향해 서쪽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베니스까지는 꽤 먼 거리였기 때문에 중간에 모토분이라는 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천공의섬 라퓨타의 모델이라는 모토분


모토분은 넓은 들 한가운데 우뚝 솟은 위에 만들어진 마을인데, 이 부근에는 이런 식의 성채 마을들이 꽤 여럿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중세시대 방어 목적으로 높은 곳이 만들어진 것 같은데, 모토분은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라고 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섬 라퓨타’의 모티브를 제공한 곳이라고도 하는데 사실 라퓨타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마을이 한두 개가 아니라서 크게 신빙성은 없다고 생각된다. 하야오 할아버지만 알겠지.. 


특이하게 모토분 꼭대기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타는 사람들이 있었다. 탁트인 벌판을 날아가는 기분이 시원하기는 하겠지만 모토분은 기껏해야 해발 300미터를 넘지 못하는 높이이기 때문에 좀 감질나지 않을까 싶다. 



설치미술인듯한 짚으로 만든 거인


성안에는 오래된 중세 도시가 남아 있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기념품을 팔거나 식당으로 이용되는 것 같았다. 이것 저것 천천히 구경하면서 돌아보던 와이프가 그 중 한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서 파는 물건들이 너무 멋지다고 감탄을 한다. 


일반적인 기념품가게가 아니라 공방 같은 곳이었는데 주인 부부가 모든 상품을 하나 하나 수작업으로 직접 만들어서 판다고 한다. 그런데 이 상품들의 만듦새가 평범하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테오라는 열 살쯤 된 주인 부부의 아이가 만든 물건도 있었는데 대단히 감각이 뛰어난 아이였다. 엄마 아빠가 모두 예술가라서 그 피를 물려받은 모양인데 부모님들이 만든 것보다 훨씬 기발하고 창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토분의 천재소년 테오


디자인을 가르치는 와이프가 보기에도 테오가 좀 천재적인 데가 있는 소년인 것 같다고 얘기했다. 물건을 사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테오가 태권도를 열심히 한다면서 매우 반가워 하며, 태권도의 종주국인 한국을 꼭 가보고 싶다고 한다. 


어딜 가나 태권도 아니면 강남스타일이면 말이 통하는 것 같다. 부부 모두 쾌활한 성격에 좋은 사람들인 것 같다. 




성벽을 따라 카페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한 군데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주변의 탁 트인 전망을 보며 시원한 바람을 맞으니 그야말로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모토분 여기 저기에 짚으로 만든 사람이 널부러져 있었는데, 일종의 설치미술인 것 같았다.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삶의 여유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한 테오 가족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슬로베니아의 피란을 향했다. 슬로베니아 국경을 넘어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피란은 이스트라 반도 끝에 위치한 항구도시인데 베니스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동유럽의 베니스라고 불린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암스테르담은 북유럽의 베니스라고 불린다고 하고, 스트라스부르에는 쁘띠 베니스가 있는걸 보면 베니스가 유럽 사람들이 베니스를 참 좋아하나보다.  


과일가게에서 뭔가 사고 있다. 옆에 늘어지게 자고 있는 강아지


예전부터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리던 발칸반도에는 다양한 민족이 복잡하게 얽혀서 살아 왔다.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도 세르비아계 청년의 무모한 애국심에서 비롯된 것처럼 이 지역의 민족주의는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옛 유고 연방 시절에는 티토의 강력한 통치력을 바탕으로 연방들을 강한 결속력으로 묶어냈지만 티토가 사라진 후에 남은 것은 민족간 반목과 피비린내 나는 투쟁이었다. 유고 내전, 코소보 전쟁 등 같은 나라에 속했던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의 잔인한 인종청소가 이루어진 곳도 이곳이다.


슬로베니아는 그 유고 내전의 와중에 연방으로부터 독립한 나라이다. 독립 국가의 역사로 따지면 채 30살도 안 되는 나라지만 가지고 있는 문화와 유적은 고풍 넘치고 아름다운 곳이다.


피란 항구에 늘어선 요트들


피란의 바닷가를 따라 사람들이 여기저기 누워있거나 바닷물 속에 들어가서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참 한가롭고 평화롭다는 생각이 든다. 슬로베니아는 동유럽 국가이긴 하지만 인당 국민소득이 2만불을 넘어 우리나라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생활수준이 높은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모습에 여유가 느껴지고, 항구도 깨끗하고 값비싸 보이는 요트도 많은 것이 서유럽 어디쯤에 와있는 느낌이다.



슬로베니아 사람들과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사람들을 그냥 봐서는 잘 구별할 수 없었는데 약간의 차이라면 크로아티아가 약간 중동이나 아시아 쪽의 느낌이라면 슬로베니아는 좀더 러시아 쪽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피란을 떠나서 이제 다시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태리로 돌아갈 차례다. 이태리의 바리에서 페리를 타고 두브로브니크로 건너간 후 아드리아해를 감싸고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이태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국경을 지나서 조금만 가면 베니스가 나온다. 베니스는 20년 전 여행에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이었기에 나와 와이프 모두 큰 기대를 가지고 가는 곳이다. 


피란 해변에서 여유롭게 즐기는 사람들


매거진의 이전글 물의 나라 플릿비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