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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Sep 04. 2018

다시 만난 베니스의 사투

2.22. 베니스

주위 차들이 점점 거칠게 달리기 시작하는 걸 보니 이태리 국경을 넘은 듯 하다. 베니스 안으로는 차로 들어가기도 어렵고 숙소를 구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조금 떨어진 푸지나(Fusina)라는 동네에 있는 캠핑장에 자리를 잡기로 했다. 바다 건너로 베니스가 보이고 베니스까지 페리로 연결되어 여러 모로 편리한 곳이었다. 


네비게이션을 보면서 캠핑장을 찾아 가다 보니 길을 따라 수로가 이어지고 있어서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아마도 바다로 이어진 수로일 텐데 물의 흐름이 거의 없이 고여있는 수준이라 모기가 살기 딱 좋은 환경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푸지나 캠핑장에 도착해보니 꽤 넓은 데다 시설도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바다에 바로 면해 있어서 배가 다니는 소리로 좀 시끄러운 편이었다. 그런데도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꽉 찬 것은 아마도 부근에 마땅한 캠핑장을 찾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바다건너 베니스 전경


저녁 무렵에 도착했기 때문에 빨리 텐트를 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귀여운 한국 아이 둘이 와서 말을 건다. 대전에 사는 열살 내외의 채린이와 새별이 남매였는데 부모님과 같이 여행 중이라고 한다. 우리 차를 보고 따라 왔는데 자기들 차도 우리와 같은 푸조 3008이라고 한다. 


“우린 네 명이라서 새별이랑 난 뒷좌석에서 찌그러져 있어요.”


“이 테이블은 우리 것과 똑 같아요.. 베게도 똑 같은데요?”


“우리 텐트 많이 쳐봐서 잘 치는데 도와 드릴까요?”


오랜만에 한국 사람을 만나서 반가웠는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옆에서 계속 쫑알댄다. 우리도 오랜만에 한국 사람을 만나서 반갑기도 했고, 두 남매가 너무 귀엽고 밝은 성격이어서 듣는 우리도 즐거웠다. 아이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텐트를 치는데 여기 저기서 모기들이 달려든다. 아까 오면서 했던 짐작이 맞았나 보다.


“얘들아, 여기 혹시 모기 많니?”


“엄청 많아요. 전 스물 몇 방 물렸고 새별이는 서른 방 넘게 물렸을 걸요?”


그러면서 팔다리에 물린 자리를 보여주는데 심상치 않은 자국들이었다. 


모기와의 사투를 벌인 푸지나 캠핑장


빨리 식사를 하고 얼른 텐트로 들어 가기로 하고 식사 준비를 위해 버너를 켰는데 열기 때문인지 갑자기 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모기떼가 달려들었다. 모기가 붙을 때마다 때려 잡으려니 도무지 음식 준비를 할 수 없어서 와이프가 음식 준비를 하는 동안 나는 와이프 등에 붙은 모기들을 때려 잡기로 했다. 


등짝을 때리고 손을 드는 순간 서너 마리씩 다시 달라붙을 정도로 극성이라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일단 샤워를 하기로 하고 자리를 피해야 했다. 이 정도로 모기가 많으면 여기서도 뭔가 대책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캠핑장 내의 편의점에 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여기 모기가 엄청 많은 거 같은데 무슨 방법이 없나요?"


“아, 모기 쫓는 스프레이가 있어요”


“네.. 하나 주세요. 효과는 괜찮나요?”


“그럼요, 아주 강력해요”


편의점 점원이 꽤나 자신 있는 목소리로 효과가 있다고 얘기하니 옆에서 계산을 기다리던 아주머니 손님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흥, 효과는 무슨 얼어 죽을 효과”


라고 혼잣말을 한다. 순간 불길한 느낌이 스쳐갔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었기에 스프레이를 사 들고 텐트로 돌아왔다. 꼬마 남매는 가고 없었고 와이프가 왔길래 스프레이를 서로 뿌려줬는데 샤워를 해서인지 스프레이 효과인지 모기가 별로 안 덤비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미 몇 십 군데를 물린 뒤이긴 했지만... 



모기와의 사투를 벌인 후 저녁을 먹고 잠을 청하는데 이곳도 바다 바로 옆이라서 그런지 바닥에서 습기가 올라온다. 겨우 잠들었나 싶었는데 새벽이 되니까 가끔씩 바로 옆을 지나가는 배에서 들리는 엄청나게 큰 뱃고동 소리 때문에 잠을 설쳐야 했다. 왠지 일부러 울리는 뱃고동 소리 같기도 하다.


찌뿌둥한 상태로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베니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차는 캠핑장에 맡겨 두고 오후에 찾아가기로 하고 9시반 쯤 페리를 타고 베니스로 갔다. 


비오는 산마르코 광장


그런데 오늘도 날씨가 별로 안 좋다. 구름 낀 날씨에 비가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더니 산마르코 광장에 도착했을 때는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날씨 때문인지 베니스도 어딘지 모르게 우울해 보이고 예전에 보았던 느낌이 아니었다. 역시 여행지의 인상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날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기 구겐하임의 묘


비도 피할 겸 근처에 있는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에 갔다. 페기 구겐하임은 20세기의 전설적인 아트 컬렉터로 불리는 인물인데, 미술품을 보는 안목이 뛰어나 현대 미술에서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구겐하임 미술관들을 설립한 솔로몬 구겐하임이 그녀의 삼촌이고 부모님은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때 같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페기 구겐하임 뮤지엄의 조각


부모님으로부터 상속받은 재산으로 수많은 미술품들을 사 모았을 뿐 아니라 무명 작가들을 대가로 키우기도 했다고 하는데, 남성 편력도 대단해서 폴락, 칸딘스키, 달리 등 다수의 현대작가와 관계를 가져서 또 다른 의미에서 전설적인 컬렉터라고 하겠다.  그녀가 말년에 살았던 저택을 박물관으로 꾸민 것이 바로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재미있는 전시품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 야외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 중에 남자 아이가 팔을 벌리고 말을 타고 있는 철제 조각상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아이의 뒤쪽에 있는 사람들은 무표정한 반면, 아이 앞쪽에 있는 관람객들은 다들 활짝 웃고 있어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는데 와이프 역시 그 쪽으로 가더니 역시나 활짝 웃는 표정으로 변한다. 


궁금해서 그쪽으로 가 보니 아이의 꼬추가 너무 당당하게 표현되어 있다. 너무 무겁지 않고 유머러스한 작품들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기념품 가게에도 특이한 상품들이 많아서 와이프가 선물로 줄 물건들을 이것저것 많이 샀다.


노천카페에서 비를 피하는 참새들


미술관을 나와서 이리 저리 걸어 다니다 다리도 쉴 겸 노천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셨는데 주문 받는 사람도 깔끔한 정장 차림이고 커피잔이나 포트에서도 뭔가 격조가 느껴진다. 노천 카페는 보통 카드가 안되고 현금으로만 계산할 수 있어서 돈 받는 사람이 쟁반에 잔돈을 들고 다니며 돈을 받는데 이 곳의 정장 차림의 아저씨는 잔돈도 장지갑에서 꺼내 준다. 뭔가 차원이 다른 격식이 느껴지는 곳이다.


베니스의 상징인 곤돌라


캠핑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페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앞에서 한국인으로 보이는 어떤 아저씨가 안내하는 사람과 뭔가 실갱이를 벌이고 있었다. 옆에서 들어봤더니 아저씨가 가려는 곳은 페리 요금이 무료라고 말하는데 이 아저씨가 그걸 못 알아듣고 계속 반복해서 물어보고 있어서 내가 가서 중간에서 이해를 시켜 드렸다. 


혼자 여행하는 한국인 아저씨였는데, 요즘 젊은 여행자들은 대부분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이용해서 쉽게 숙소나 교통편을 검색하고 예약하고 하는데 이 아저씨는 그런 걸 잘 활용하지 못하시는 거 같았다. 한 도시에 도착하면 젤 먼저 기차역으로 가서 연결편을 알아보고 예약부터 하느라 큰 캐리어를 힘들게 들고 다닌다는데, 맘 같아선 우리 차에 태우고 다니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가 타야 할 페리가 와서 아저씨한테 작별 인사를 했는데 아저씨도 우리 페리를 무작정 탄다. 분명 이 배는 아저씨의 목적지로 안 간다는 얘기를 했는데도 일단 타고 본다. 그러다 안내하는 사람과 또다시 한참 동안 실갱이를 벌이다 내린다. 흐.. 걱정된다. 남은 여행 기간 동안 무사하시길..


또다른 베니스의 상징인 가면들


캠핑장으로 돌아와서 차를 타고 출발 준비를 하다가 어제 보았던 귀여운 남매를 다시 보았다. 아이들이 탄 차가 스치듯 지나갔는데 아이들이 우리를 알아보고 반갑게 먼저 인사를 했다. 우리도 나중에 저런 아이들을 낳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머리 아저씨의 노래를 들으려 곤돌라 여려대가 대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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