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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Sep 22. 2018

초월론적 경험론

2018년 7월 12일

무더위로 어제는 잠을 청하지 못했다. 내 옆에서 잠을 자던 다운이도 밤새 혀를 내밀고 헐떡거렸다. 나는 자다가 일어나 할 수 없이 책상에 앉아 들뢰즈를 읽었다.


예전부터 영화 이론에 대한 관심 때문에 들뢰즈의 논문과 저작들을 차곡차곡 정독해 나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저작들이 언어 이전의 비유기체적 운동 혹은 기관 없는 신체 및 감각들의 강도를 폭착하려고 시도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는 분명 니체의 적자이지만 나의 들뢰즈는 칸트의 사생아라는 느낌이다. 그는 <칸트와 비판 철학>에서 칸트 철학의 내부 모순을 부각시키고 구멍을 뚫지만 동시에 비판 철학의 이론적 방법을 계승하는 묘한 독법을 보여준다.


마르크스의 변증법이 거꾸로 선 헤겔 철학이라면, 들뢰즈의 철학은 거꾸로 선 칸트 철학이라는 인상이다. 칸트를 따라서 현상을 초월하는 이성의 월권을 배제하되 유기체의 지각 경험이 포착하지 못하는 순수 운동적 경험 가능 세계가 존재한다는 초월론적 경험론. 초월의 자리 대신에 깊이의 지층 혹은 고원을 지어놓는다.


이제 들뢰즈의 철학도 고전이 되는 것 같다. 다수의 정동론과 감각론이 쏟아지고 있지만 결국 들뢰즈 이론에 대한 각주다. 들뢰즈의 이론을 나름의 방식으로 확장시키는 시도라고 보이는데 그의 사후 제자들 사이의 인정 투쟁으로도 보인다.


지금 현재 우리 학계는 정동이란 용어만 떠다니고 있다. 들뢰즈의 세계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 자기의 사유의 방법론으로 내재화하기 보다 이론적 유행처럼 그의 용어와 아이디어만 가져와서 쓰는 느낌이랄까? 원인은 학자로서 게으른 탓이다. 자기 내부의 깊이를 만들기 보다 이론적 새로움만 쫓는 게으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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