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학비평집을 읽어보면 시중의 모든 작품들이 천의무봉한 것만 같다. 이것은 진실인가 아니면 거짓인가? 솔직히 말해서 자기세계의 갱신을 찾아볼 수 없는 시세계에 여전히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 한숨이 나온다. (물론 당사자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문단에서 비평가가 자기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시대는 끝났다. 어디까지나 몇몇 출판사의 글쓰기 하청 노동자 신세가 된지 오래이다.
하물며 식민지 시기에도 악플에 가까울 힐난들이 비평가들 사이에서 오갔으나 그렇다고 비평가의 생명을 끊어놓지는 않았다. 서로가 글로 상대를 비난하고 논리적 대립각을 세울지언정 그것으로 밥줄을 끊고 문단에서 비주류로 내치지는 않았다. 비평사란 결국 논쟁사가 아닌가. 바로 비평적 논쟁이 문학의 역사고 비판적 인식이자 새로운 창조적 지평을 열어온 것이 아닌가. 적어도 이렇게 청탁을 가지고 비평가의 생명을 끊어놓는 비윤리성이 심각하게 문단을 훼손한 적은 없었다.
요즘 비평가들이 군소리가 없는 것은 좋게 말하면 각각의 작품마다 나름의 미덕이 있기 때문이고 나쁘게 말하면 고만고만한 작품들만 있기 때문이다. 비평가가 개별 텍스트의 맥락을 적극적으로 밝히며 논하는 것은 당위적이나 그 작품이 도달한 세계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비평이 객관적 논리성을 지향하지만 동시에 역설적으로 지극히 개성적이고 주관적인 문학에 대한 정의와 감식안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특정 작가와 작품들에 같은 평가와 생각만을 되풀이해서 밝히는 것은 비평가에게 말하지 못할 고충이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논쟁 없는 작품이란 그것이 열어놓은 지평이 한계가 있음을 증언할 뿐이다. 이런 작품들이 역사를 견디며 살아남아 정전으로 읽힐 수 있을까?
최근 문단의 분위기는 비평가 개인의 주관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무색무취의 비평가들만 있다. 사실 나는 관심이 없거나 좋아하지 않는 것은 쓰지 않는다. 최소한의 분노 조차도 없는데 어떻게 글을 쓰겠는가. 사랑하고 싶다. 작품을 너무 사랑해서 안 쓸 수가 없기를 바란다. 사랑하면 시키지 않아도 쓴다. 그게 비평의 동력이다. 맞다. 나란 인간이란 편취가 심하다. 그래도 어쩌랴. 원래 비평가란 이런 존재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