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비참과 구원 - 동화 《플랜더스의 개》
-2021년 9월 4일
위다의 동화 <플랜더스의 개>에서 가난과 사람들의 오해로 상처를 받던 넬로는 크리스마스에 대성당 안에서 루벤스의 그림 <십자가에 올려지는 그리스도>를 보며 죽음을 맞는다.
아마 루벤스의 그림 속 면류관을 쓴 예수는 만인을 위한 구분 없는 사랑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동화는 루벤스의 예수를 돈으로 값을 매기며 부자와 가난한 자로 구분하는 세상의 비열함을 보여준다.
본래 무용한 예술마저 가난한 자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세계의 비참이 폐부를 찌른다. 가난해 그림을 볼 자격이 없는 넬로에게 죽음의 순간 모습을 드러내는 루벤스의 예수는 작가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부자와 가난한 자를 구분짓지 않는 평등의 정신임을 잘 보여준다. 동화의 결말 부분에 이런 문장이 있다.
"구차하게 오래 사는 것보다도 그들에게는 죽음이 더욱 자비로운 일이었습니다. 죽음은 사랑에 대한 보상도 않고 믿음을 이행하지도 않는 세상으로부터, 충실하게 사랑을 베푼 넬로와 순결한 믿음을 보여 준 파트라슈를 데리고 갔기 때문이지요."
저 초라하고 절망적인 죽음이 오히려 세계의 비참으로부터 넬로와 파트라슈를 구원하는 일이라는 역설을 침묵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