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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Aug 21. 2022

버려진 민중들의 몫

-김한민 감독의 영화 <한산 : 용의 출현> (2022)

  김한민 감독의 영화 <한산 : 용의 출현>은 이순신의 명량해전을 다뤘던 <명량> (2014)의 후속작이다. 12척의 배로 왜군의 배 330척을 물리쳤던 명량해전에 이어서 이번에는 한산해전을 다룬다. 전작 <명량>이 이순신의 관점에서 서사가 전개되면서 민족주의가 짙다는 비판을 받아서인지, 영화 <한산 : 용의 출현>의 경우 이순신의 말수가 많이 줄었으며, 왜군 수군 최고사령관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관점이 서사의 중간에 녹아있어서 전쟁의 진행 과정이 디테일하고  전작보다 입체적이다.  


  영화 전반부가 거북선의 설계도를 둘러싼 조선 수군과 왜군 사이의 첩보전 그리고 왜군의 침략으로 인해 임금이 의주까지 도망친 조선의 상황이 소개된다면, 후반부는 해상 액션 영화답게 관객들이 기대하던 스펙터클한 해전이 펼쳐진다. 영화의 말미에 거북선이 해전에 참전해 활약하는 장면만으로도 관객들에게 깊은 전율을 선사한다. 그러나 영화 <한산 : 용의 출현>에는 조선과 왜군 사이의 첩보전과 스펙터클한 액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임진왜란의 의미를 의(義)와 불의(不義)의 싸움이라고 정의함으로써 바로 의(義)가 무엇인지에 대해 화두를 던진다. 


  영화 초반 왜군의 포로가 이순신에게 묻는다. “이 전쟁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그러자 이순신은 답한다. “의(義)와 불의(不義)의 싸움이니라.” 이 같은 이순신의 대답은 이 작품 내에 의(義)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내포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럼 과연 의로운 것은 조선이고, 불의한 것은 왜적인가. 하지만 조선을 침략한 일본 만큼이나 백성을 버리고 명나라로 도망을 가기 위해 의주로 피난을 떠난 조선의 조정을 이순신의 말처럼 의롭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백성을 버린 조정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국심이 어떻게 의로운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이순신이 선언하는 의로움의 주체란 적어도 국가는 아닐 것이다.


  만약 의로움을 담지 하는 주체로 이순신을 환원해 바라본다면 이 작품은 흔한 영웅서사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순신이 선언하고 있는 의(義)와 불의(不義)의 가치는 영화의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이순신의 대답을 듣고 왜군 포로가 말한다. 자신들의 장수가 전투에서 패배하자 뒤돌아보지 않고 자신들을 버린 후 도망을 갔으니 자신들을 받아달라고 말이다. 그러자 이순신은 왜군의 포로의 투항을 받아들인다. 


  얼마 후 왜군의 첩자들이 이순신의 군영에 침입해 잡혀있던 왜군 포로들을 풀어주고 거북선의 설계도를 훔쳐 도망간다. 이로써 의로움을 설파하던 이순신의 판단은 틀린 것인가. 기껏 투항한 왜군 포로를 받아줬는데 그가 다시 본국으로 도망쳤으니 말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본국으로 돌아간 왜군 포로가 이순신을 배신하지 않고 부산포에 진영을 친 왜군의 정보를 빼내어 이순신에게 전달하고 전주 웅치 전투에 참전해 의(義)라고 적힌 깃발을 높이 치켜든다. 


  이 같은 장면을 통해 영화에서 이순신이 말하는 의(義)란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아닌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로부터 도피하지 않는 용기임을 알 수 있다. 왕은 명나라로 도망을 갔으나 조국을 버리지 않는 의병의 모습과 다시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음에도 이순신을 배신하지 않는 왜군 포로의 모습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국가로부터 버려지거나 버려진 곳에 남겨진 자들이다. 


  영화 초반 이순신이 선언하고 있는 ‘의(義)와 불의(不義)의 싸움’이란 단순히 의로운 조선과 불의한 왜군의 싸움이 아니라 주어진 현실로부터 도망갈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것인가라는 실존적 선택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한산해전과 전주 웅치 전투의 승리는 이순신의 것도 조선의 것도 아닌 조선이라는 땅에 버려진 민중들의 몫이다.  


- 이 글은 서울문화의 집에 실린 원고이니 허락 없이 글을 불법으로 퍼가거나 링크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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