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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우일 May 04. 2017

‘보통'이라는 말의 욕망

-김봉한 감독 <보통 사람> (2017)

‘보통’이라는 단어의 뜻은 ‘특별하지 않음’ 그러니까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함’을 말한다.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보통’이라는 말의 일반성은 어떤 기준과 범위로 구성되는가? 이러한 물음에 구체적으로 답하기 어렵다. 우리가 말하는 보통이라는 말의 기준은 사실 불명확하지만 대개 그럴 것이라고 짐작되는 타인의 시선이 그 밑바닥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보통’이라는 말은 그렇기에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자신이 짐작하는 다른 사람의 기준에서 판단되는 어떤 대상이다. 즉 ‘보통’이라는 말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이 들끓고 있다. 


  영화 <보통사람> 속에서 말하는 ‘보통’은 다의성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이 부도덕하게 사니까 나는 괜찮을 것이라는 자기정당화의 논리, 그리고 어떠한 권위나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은 시민성의 보편적 가치를 함의한다. 작품이란 창조된 특수한 세계이지만 동시에 공동체의 보편적 진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보통사람처럼 살고 싶은 성진의 욕망은 당시 사람들의 내면적 상황을 대변한다. (정확히 말하면 아마도 당시 사람들의 욕망은 이러했을 것이라는 감독의 해석이다.)   


  영화 <보통사람>의 배경은 한국의 1980년대 전두환 정권시기이며 당시는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의 억압적 통제가 이루어지던 때이다. 영화 <보통 사람>은 이 시기를 다시 조명하고자 한다. 이 작품에서 다루는 시대적 풍경은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통념적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언론의 자유가 억압되고, 돈과 뒷배가 없으면 성공할 수 없으며, 상식과 합리성이 결여된 사회이다. 그렇다면 이 가까운 근현대의 과거를 다시 꺼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필자의 눈은 우선 성진의 내면에 먼저 가닿는다. 그는 평범한 경찰이며 다리에 장애를 가진 아이의 아버지이다. 그가 안기부에서 요구하는 기획수사에 동조한 이유는 아들의 다리를 고치고 어엿한 가장이 되기 위해서이다. 부를 향한 욕심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같은 보통의 삶에 대한 욕망이다. 그래서 그는 살인용의자 태성을 연쇄살인범으로 몰아가고 체제 유지를 위해 국민의 불안감을 이용하려는 안기부의 계획에 동조한다. 즉 성진은 보통의 삶을 위해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한다. 하지만 이러한 욕망은 필연적으로 결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영화의 처음과 중간 경찰서 주변을 떠도는 개가 등장한다. 이때 떠돌이 개는 성진의 내면을 보여주는 일종의 상징적 거울이다. 예컨대 성진이 태성을 고문하는 장면에서 의도적으로 카메라는 지하실 창틈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는 개의 모습을 포착한다. 덕분에 이미지의 구도는 불안하고 낯설어진다. 잠시 일종의 거리두기가 발생한다. 이것은 감독이 의도로 태성을 고문하는 성진의 행위가 무엇인가 결여된 것임을 암시한다. 이렇게 떠돌이 개는 성진의 내적 결여를 보여주는 장치이다.    

 

  얼마 후 성진의 절친 자유일보 기자 재진이 찾아온다. 그는 자신이 취재한 사건의 정보를  성진에게 알려주며 안기부에서 내어준 사건자료가 조작되었고, 모든 것이 기획수사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진은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재진은 해외 언론에 사건의 진실을 알리고자 하다가 안기부에 붙잡힌다. 재진이 안기부에 붙잡힌 이유는 성진이 재진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신고했기 때문이다. 결국 안기부에서 고문 받던 재진은 중간에 사망한다. 생각지 못한 재진의 죽음에 성진은 죄책감을 느끼고 안기부 부장 규남에게 복수하고자 했으나 실패한다. 그리고 동시에 혁명의 날이 밝아온다.


  영화 <보통사람>은 성진이라는 평범한 가장을 통해 1980년대는 부도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 자신의 행위를 변명해야 했던 사람들의 자기합리화 욕망 밑에는 억압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자유를 향한 욕망이 공존했다고 말한다. 바로 혁명 장면은 이 점을 상징한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작품 속의 세계와 작금의 현실이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영화 <보통사람>은 현실에 대한 일종의 알레고리이다. 과거의 역사적 기억을 회상함으로써 현실을 견주는 것이다. 하지만 작품 내적으로 인물들의 타입이 개성적이지 못하고 앞서 비슷한 영화들과 변별점을 찾기 힘들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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