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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의 Nov 14. 2022

24 정신 건강은, 안녕하십니까?

임신/출산/육아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수술장 안에서는 규칙적인 마취 기계의 음향만 들리고 있었다. 복강경 자궁근종 절제 수술이 예상보다 길어지는 바람에 지친 의료진이 말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복강경 수술은 배에 작은 구멍을 뚫은 다음, 그 부위를 통해 배 속 공간에 카메라와 각종 도구를 집어넣어서 시행하는 수술 기법을 말한다. 수술을 받는 중인 30대 여성은 지름이 10cm에 이르는 커다란 자궁근종(자궁 근육층의 혹)을 갖고 있었다. 사실, 근종의 '절제'는 진작에 끝났다. 그런데도 수술이 끝나려면 아직도 한참이었다. 어째서일까?


회복이 빠르고 흉터도 작은 복강경 수술은 장점이 많아서 환자들도 선호하는 방법이다. 수술 기법도 워낙 발전해서, 혹을 떼어내고 꿰매는 과정만 놓고 보면 배를 크게 갈라서 수행하는 개복 수술과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하지만 이렇게 커다란 덩어리를 몸 밖으로 꺼내는 작업 자체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복부를 완전히 열어젖히는 개복 수술에서라면, 떼어낸 덩어리는 그냥 손으로 집어서 꺼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복강경 수술에선 경우가 다르다. 복강경 수술을 위해 배꼽에 작은 구멍을 내고 그곳을 통해서 카메라를 비롯해 길다란 젓가락 같은 수술도구를 집어넣는다. 이 고차원적 젓가락들을 뱃속에서 솜씨 좋게 움직여서 자궁으로부터 근종을 떼어냈다고 치자. 그런데 이 경우 환자의 혹 크기는 10cm, 배꼽이라는 출구는 잘 쳐줘봤자 1~2cm에 불과하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속담을 이 경우에 맞춰서 표현하자면, 배꼽보다 근종이 크다! 잘라낸 혹을 환자 몸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은 순전히 의사의 노동력을 결집한 수작업의 결정체이다. 혹이 구멍을 통과할 수 있을 만큼 작게 만들어야 몸 밖으로 꺼낼 수 있다. 의사의 취향껏 사과 깎듯이 깎기도 하고, 잘게 다지기도 한다.  


당시 막 산부인과 수련을 시작한 풋내기 레지던트 1년차였던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에 빠졌다. 호오... 혹을 뗀다고 끝이 아니구나. 혹을 꺼내야 수술이 끝나는 거야. 나는 교수님이 혹을 빨리 빼내기를 기도하다가, 근종이 마침내 전부 끄집어내지는 순간에는 작은 내적 환호마저 질렀다.


‘오예 끝이다! 드디어 다 나왔어! ...가만, 비슷한 장면을 아까 다른 수술에서도 본 것 같은데?’


앞서 진행된 자궁선근증 수술에서도 유사한 면이 있었다. 좁은 질이라는 출구를 통해, 커다란 자궁을 꺼내는 과정이 필요했다. 난소 종양 수술도 종양 덩어리를 출구로 잘 빼내야 한다는 점은 비슷하다. 물론 질식분만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수 시간의 산고를 거쳐 끝끝내 좁은 산도로 커다란 아기 머리가 나와야 비로소 완성되는 일이다.  




"언니, 들어봐 봐. 내 생각은, 우리는 좁은 곳에서 커다란 것을 꺼내는 사람이 된 거야. "


산부인과에서 근무를 시작한 지 단 몇 주 만에 터무니없는 논리적 비약을 해버린 나는 당직실에서 마주친 동기 레지던트에게 의기양양하게 결론을 말했다. 가장 바쁜 새벽 회진 준비 시간이었기에, 동료는 안 그래도 시답잖은 내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는 것 같았다.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나름의 논리를 펼쳤다.


"봐봐. 내가 어제 선근증 수술 들어갔잖아? 그리고 자궁근종, 난소종양 수술도 마찬가지야. 좁은 곳으로 큰 것이 나와야 끝난다고."


나는 말하면서 동시에 사복을 벗고 근무복으로 갈아입었다. 아니, 벗으려고 했다. 뭐야 이거 왜 이래. 왜 이리 안 벗겨져... 당직실에서 야식을 먹고 쪽잠을 자던 그 며칠 사이에 살이 더 찌는 바람에, 딱 맞던 청바지가 낑겨서 벗기조차 힘들었다. 나는 당직 침대에 걸터앉아서 양손으로 바지춤을 힘껏 잡아당겨야만 했다. 맙소사. 입을 때는 어떻게 한 거지?


"그리고 분만 봤잖아 언니도. 아휴, 그 좁은 곳으로 어떻게 나오는지... 그래서 그 순간이 짜릿하긴 한가 봐. 마지막에 애기가 쏙 나오잖아."


바지춤을 있는 대로 잡아당기고도 모자라서 엉덩이를 열심히 씰룩대면서 비집어야 겨우 몸뚱이를 빼낼 수 있었다. 으랏차차차! 힘껏 용을 써서 드디어 갑갑한 청바지에서 벗어난 통통한 살집들이 저마다 만세, 해방감을 외쳤다. 그래, 이거지. 역시나 아기가 나오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꽉 끼는 청바지에서 빠져나오려고 버둥거리는 나랑 영락없이 비슷하잖아? 드디어 옷을 벗어던진 나는 더없이 개운해하며 편한 고무줄 수술 바지로 갈아입었다. 다음 날 퇴근하려면 다시 입어야 하는 청바지는 당직실 아무 곳에나 던져두었다. 마치 그것으로 그 옷가지의 구속이 모두 해결되기라도 한 것처럼.  




당시 나는 중요한 사실이라도 깨달은 것 마냥 호들갑을 떨었는데, 아무도 내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다행이다. 수술과 분만에서 '목표물'이 탈출하고 해방시키는 것이 산부인과의 핵심일까? 의료의 목표를 달성한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러니 너무나도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물론 꺼내는 순간엔 상당한 쾌감과 성취감이 느껴진다. 초보 의사인 나의 눈과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을 정도로.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며, 본질은 더더욱 아니다. 다시 자궁 근종 수술을 예로 들어 보자면, 환자 치료는 언제나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커다란 근종을 몸 밖으로 끄집어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그 근종을 제대로 평가하고, 수술의 대상인지 신중하게 검토하고, 정확하게 수술을 시행하는 것이다. 수술 이후에도 여전히 면밀한 후처치와,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분만은 어떨까? 아기의 탄생은 산모는 물론, 산부인과 의사에게도 홈런이 터지는 것 같은 환희의 순간이다. 건강히 태어난 신생아의 우렁찬 울음을 들으면 가히 중독적인 고양감이 밀려온다. 게다가 태아는 근종이나 종양 덩어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소중한 존재이므로, 산도를 무사히 빠져나오는 고난도의 작업은 의학적으로도 중차대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도 마찬가지. 환호와 스포트라이트를 휩쓰는 극적인 '태아 만출'이 출산의 전부는 아니다. 산모 관리의 많은 부분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즉 산전 관리에서부터 이루어진다. 만약 임신이 목표인 난임 케이스라면 자궁에 자리 잡은 새 생명을 확인하는 것으로 더없는 희열을 느끼겠지만, 그 역시도 출산까지의 대장정에서는 첫 발자국에 불과하다.


최근 대단히 중요하게 부각되는 또 다른 측면은 난임 환자, 임산부의 정신건강이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겉보기에 또렷한 목표가 존재한다는 것이 오히려 일종의 함정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아기가 간절한 입장에야 그저 임신만 성공하면 모든 스트레스가 해결될 것 같지만, 그 과정에서 따르는 심신의 고통도 마땅히 잘 관리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다. 실제로 난임 부부는 부정적 감정에 사로잡히기 쉬우며, 전체의 약 85~87%가 난임으로 인한 정서적 고통, 우울감을 경험한다. [1] 건강한 아기를 낳았다면 이제부터 축하 속에서 아기만 잘 키우면 될 것 같지만, 산후 우울감도 상당수의 산모들이 경험할 만큼 흔한 문제이다. 이렇게나 흔하고도 중요한 문제들이 쉽게 간과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며, 앞으로 보건의료계의 노력과 극복이 필요한 부분이다.


산부인과엔 문제가 일순간에 해소되는 극적인 환호의 순간이 자주 있다. 그래서 참으로 멋진 매력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카타르시스 이후에 다소간 긴장이 풀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관심이 거기서 끝나선 안될 일이다. 우리는 임신 전에도 살아가야 하고, 아기를 낳은 후에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다행히 산부인과 환자의 정신건강을 돌보기 위한 보건 정책 지원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아래의 링크로 소개할 중앙 난임/우울증 상담 센터는 난임부부, 임산부, 양육자를 위한 검진과 상담을 제공한다.


http://www.nmc22762276.or.kr


부끄럽지만 나에게 반성할 점이 있다. 사실 정신의학은 내 전문분야가 아니라는 이유로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다. 의료의 각 분야는 전문화로 인해 분절성이라는 한계가 있다. 산부인과 의사의 입장에서, 환자의 우울감이나 정서적 문제에 대해 간단히 접근하기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아기를 갖고, 낳고 기르는 일은 인생의 연속된 과정 중 하나이다. 어느 한 단계의 국지적 성공이, 삶의 다양한 각도를 모두 대표하지 못할 때도 많다. 산부인과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정신건강을 소홀히 하는 핑계가 되지도 않는다. 임신과 출산은 스포츠 경기가 아니기에, 통과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종결되는 결승점이 없다. 그러니 언제나 스스로를 돌보는 것을 멈추지 말자.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참고 문헌>

[1] 황나미 등. (2017). 2016년도 난임부부 지원사업 결과분석 및 평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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