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아기가 뱃속에 들어선 지 다섯 달쯤 되어, 정밀초음파 검사를 받던 날이었다. 산부인과 외래 진료실은 내가 전공의 수련을 하던 시절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임신은 나도 처음이지만, 익숙한 공간과 익숙한 사람들 덕에 친정으로 아기 낳으러 온 아낙네 같은 여유가 생겼다. 오래간만에 만난 대학병원 동료들한테 고생이 많다며 간식 한 박스를 건넸다. 반가운 얼굴들이 환하게 웃으며 임신을 축하해왔다. 내가 하루 종일 눈이 빠져라 초음파를 들여다보던 어두컴컴한 검사실도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 살가운 안부인사를 나누며 기계 앞에 자리 잡은 1년 후배 의사가 분주히 내 배 위에서 초음파 탐지자를 놀리다가, 어느 한 지점에 손을 멈추며 내 눈치를 슬쩍 살폈다.
“선생님 보시다시피 여기… 애기가 일단 VSD(심실 중격 결손)*처럼 보이기는 하거든요.”
발름발름 뛰어대는 작은 태아의 심장. 그 심장을 이루는 구조물인 심실 벽에, 작지만 휑한 구멍이 보였다.
“네? 그게 무슨…”
무슨 소리지요? 까지 말할 뻔했지만, 스스로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너무나 한심하게 들려서 가까스로 말을 다시 삼켰다.
그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산부인과 의사였다.
* 심실 중격 결손 : 심장은 심실과 심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심실과 심방은 각각 좌/우가 있다. 그 중 좌심실과 우심실을 둘로 나누는 가운데 벽(심실 중격)에 구멍(결손)이 있는 경우를 말하는 선천성 심장 질환이다. 심실 중격 결손은 선천성 심장병 중 가장 흔한 기형으로 전체 선천성 심장병의 25∼30%에 달한다. <삼성서울병원 질환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