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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지의 Feb 20. 2024

대변 송별회를 치르며 (※더러움 주의※)

내 똥인데 내 맘대로 물 내릴 수 없는 마음을 아십니까

비위 약한 분 읽지 마시오! 

더러움 주의 표시를 방패막 삼아 더러운 이야기를 바로 시작하겠다. 



아이들은 왜 그렇게 똥을 좋아할까.


몸에서 나오는 것이라면 애들은 열렬히 환호한다. 방귀, 똥, 트림, 코딱지도 그들에게는 숭배의 대상이다. 내 아기가 좀 더 크면서 똥에 대해 가르칠 것들이 생겼다. (두 돌이 될 즈음부터는 배변 가리기를 시도해 볼 수 있다.) 그래서 아기에게 '변기'의 개념을 알려주니 그는 완전히 중독되었다. 특히 변기물을 내리는 것이 매혹적이었던 모양이다. 그가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똥을 생생히 관찰하다가, 갑자기 물이 소용돌이치며 순식간에 똥이 '이세계'로 빨려들어가는 풍경과, 그 신비한 의식을 작동시키는 마법적 버튼의 존재! 변기에 대해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아, 아기는 하루 종일 변기물을 내리고 싶어했다.


어차피 곧 배변을 가려야 하니까, 아기가 변기와 친해지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기는 아직 기저귀에 변을 누지만, 물 내리기는 해 볼 수 있다. 아기가 배변을 하면 응가가 묻은 기저귀를 신주단지마냥 조심조심 화장실로 가져가서, 변기 안에 떨어뜨려준다. 그러면 아기가 물을 내리면서 환호한다. 심지어 안녕 안녕, 종알거리며 먼 길을 떠나는 응가를 향해 손도 열광적으로 흔들어 준다. 참으로 향기가 짙은... 요란한 송별회다. 이게 웬 괴상한 광경이람,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아기가 변기의 사용법은 원활하게 익혀가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행감은 아주 잠시였다! 아기는 자기 똥 뿐만이 아니라, 모든 똥의 물을 내리고 싶어했다. 

특히 내  ...... 


걸음마쟁이 양육자는 화장실 문을 닫고 독립된 공간에서 용변 처리하기 힘들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물도 내 마음대로 못 내릴 줄은 몰랐다. 아기는 나의 사적인 용변 시공간에 난입해서, 변 보는 것을 집요하게 관찰하다가, 똥의 존재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충분히 감상(?)한 후에, 스스로 물을 내려야만 만족했다. 내 눈에만 담을 수 있었던 내 똥의 모습이 세상에 현현하게 드러나는 느낌이란. 그냥 애를 화장실에 못 오게 하면 되지 않냐고 심드렁하게 대꾸할 수 있는 사람은 두 살배기를 안 키워봤을 가능성이 높다. 원하는 것이 좌절당했을 때 폭발하는 분노 발작을 잠재우는 것에는 또 다른 엄청난 품이 든다. 그냥 똥을 양보하고 마는 것이 속 편하다.


"언니, 언니 애기들도 이래? 애들은 대체 왜 이렇게 똥을 좋아해? 아휴, 못 살아. 난 화장실에 쳐들어오는 것까진 참아도, 내 똥 물은 내가 내리고 싶어..."

나의 하소연을 들은 육아 동지 친구는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더 뜻밖의 얘기를 해줬다. 그녀는 아기를 둘 키우는데, 둘째가 기저귀에 똥을 누면 첫째에게도 덜어(?) 준다는 것이다! 둘 다 너무나 변기물을 내리고 싶어하기 때문에, 평범하게 처리하면 사달이 난다나. 콩 한쪽도 나눠 먹는 우애는 들어 봤어도, 똥 한 덩이도 나누는 사이라니... 웃기고도 슬픈 대변 배급제. 그녀가 애들 등쌀 속에서 찾은 나름의 해답이었다. 


아기의 변기 사랑이 지극하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불편해하고, 때로는 비난하기까지 한다. 왜 아기 낳고 키우는 것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묘사하느냐. 젊은 사람들은 내 이야기를 듣고 겁을 먹어서 애를 더 낳지 않을 것이다. 산부인과 의사라는 사람이, 나라 망하게 할 일 있냐! 등등등.


하지만 임신, 출산, 육아가 애초에 이런 종류의 일인 것을 어쩌겠는가. 우리가 문명 사회에서 지킬 수 있었던 고상하고 우아한 방식들을 - 화장실에서 문을 잠그고 혼자 변을 본다든지 - 잠시 개켜두고, 순전히 몸뚱이로서 오롯이 겪어내야 하는 일이다. 물론 인간을 피와 살로 해석하는 것이 익숙한 의사에게도 간단한 일은 아니다. 나도 처음부터 내 똥을 아기에게 순순히 양보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가 생겨난 이래 재생산은 원래 이런 방식이었다. 아기를 낳고 키우면서 겪는 각종 지저분하고, 노골적이고, 상상 초월하게 골때리는 일들은 열등하고 퇴보적인 것이 아니다. 오히려 본질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이 아기일 때 대소변을 가릴 줄 몰랐다. 양육자들이 잠자코 그들의 똥과 오줌을 수천 번 받아내고 치워줘서 무탈히 자라난 존재들이, 이제 와서 고작 똥 이야기에 코를 틀어쥐고 달아날 셈인가. 나는 오히려 출산과 육아의 특성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것이 아기를 낳고 키우는 일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그래서 욕을 먹어도 아기 낳는 이야기, 아기 키우는 이야기를 가감 없이 계속할 셈이다.


아기가 자라면서 앞으로 또 무슨 생각지도 못한 요상한 일들이 벌어날지 나는 모르겠다. 다만 고되고, 버겁고, 기가 막히고, 당황스러운 그런 순간에 재생산 세계의 법칙을 상기하면서 마음을 다잡으려고 한다. <이 바닥은 원래 이런 것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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