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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난포 May 14. 2024

성장 - 원고야, 무럭무럭 자라나라

글과 함께 공존하며 성장하기

이제 아기는 배아기를 넘어와 태아기에 안착했다. 말인즉슨, 기본적인 설계와 구조 계획을 마치고 무럭무럭 성장할 단계가 된 것이다. 변화는 다양하고, 폭발적이다. 눈, 손 같은 섬세한 구조물도 생겨나기 시작하고, 성별도 분화한다. 내부 장기들도 형성되어 하나씩 기능하기 시작한다. 뼈가 쑥쑥 자라나어 튼튼해지며, 신경계도 차츰 발달하여 기본적인 반사(reflex) 작용을 시작한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제 태아의 움직임을 산모가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태동이다. 첫 태동이 느껴지면 그렇게나 신기할 수가 없다. 내 몸을 타인과 나눠 쓰고, 나의 의지와는 별개로 아기가 스스로 움직이고 있음이 실감 난다. 몸속을 구렁이가 꿀렁 지나가는 것 같기도 하다. 활발한 아기들은 어찌나 힘차게 움직이는지, 때로는 엄마의 갈비뼈나 방광을 걷어차서 눈물이 찔끔 날만큼 아프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이지만, 태동은 분명한 공존의 감각이다.

출산의 배신은 이제 기획도, 목차도 완성되었다. 본격적으로 원고의 몸집을 불릴 시간이 되었다. 워낙 오랫동안 생각해 온 이야기이고, 조사한 자료도 많은 편이라서 자신감이 있었다. 까짓 거, 이제 부지런히 쓰기만 하면 될 일이네!


그런데... 그 '부지런히 쓰기'가 난관이었다. 내까짓게 제아무리 부지런해 봤자 한계가 있었다. 본격적인 집필에 들어갈 시점에 우리 아기는 돌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당연히 하루종일 손이 무척 많이 간다. 아기 보느라고 근무를 줄이기는 했어도, 나는 병원에서 진료도 해야 한다. 어린 아기 덕에 집안일은 배로 늘어났다. 아차차, 대체 언제 원고를 쓰지? 하지만 그래도 의욕이 더 넘쳤기에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기가 잠잘 때 틈틈이 쓰면 되니까.


...라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다! 그렇게 어린 아기는 잠을 길게 자지 않는다. 그리고 아기가 자는 짧은 순간에는 나도 눈을 붙이거나, 밀린 설거지와 청소를 해야만 했다. 한가롭게 컴퓨터 앞에 앉아있을 방법이 없으니, 도무지 글이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다행히도 나를 도와 친정어머니가, 때때로 남편이 아기를 곧잘 돌봤다. 하지만 '병원에 출근해야 하니까 잠시 아기를 맡아 줘'란 말은 쉽게 나와도, '책을 써야 하니까 잠시 아기를 맡아 줘'라고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전업 작가도 아니고. 어차피 할 줄 아는 일은 진료밖에 없는데, 난데없이 웬 출간이람? 육아를 분담 중인 가족들이 나를 대놓고 구박은 안 했어도, 속으로 흉을 볼 것만 같았다.


애를 보던가, 돈을 벌던가...
하나에 집중하기라도 하지.
굳이 하필 왜 지금 책까지 쓴다고 저 난리야?


사실 그 목소리는 나의 내면에서 울려 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엄마니까, 거기다 (아기에게 미안하게시리) 일까지 하는 엄마니까 다른 욕망을 유예해야 한다는 박. 의사 일은 월급이라도 따박따박 들어오지만, 돈 벌어다 도 없는 책 쓰기는 아무런 당위도 명분도 없었다. 나는 어쩔 바를 모르고 몇 번이나 출판사에 연락을 할까 싶었다. 대표님. 죄송합니다. 책 쓰는 것이 제 능력으로 감당이 안 되는 것인 줄 뒤늦게 깨달았어요. 계약금을 돌려드릴게요. 경솔하게 일 벌여놓고 마무리짓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포기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나는 용기가 아주 적다.) 너무 쪽팔려서 출판 계약을 차마 무르지도 못하고 끙끙 앓기만 했다. 어쩌지. 쓰던 원고를 접기에는 이미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누가 나를 못 하게 뜯어말리면 모를까, 스스로 중간에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리 골똘히 생각해 보아도 출산에 대한 이야기는 필요한 것이다. 재생산에 대한 언어는 그리 많지가 않아서, 나 같은 사람마저 목소리를 내야만 하는 이야기이다. 내가 임산부로서, 아기 엄마로서 예비 독자들과 같은 파도를 타고 있는 바로 지금, 이 시점에 해야만 하는 이야기였다.


때마침 어린이집에 자리가 나서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 아기를 어린이집에 오래 두는 것도 마음에 걸려서, 2시간만 맡기기로 했다. 병원 근무가 없는 날이면, 아기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바로 옆의 작은 도서관으로 향했다. 노트북을 켜고 원고를 썼다. 이따금 책도 읽을 수 있었다. 주어진 시간은 짧았다. 12시가 되면 아기를 하원시켰다. 병원 근무를 하는 날에는 점심시간을 활용했다. 후루룩 마시다시피 밥을 먹고 진료실 컴퓨터 앞에 앉았다. 원고와도 나름의 타협(?)을 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 해 안에는 끝장을 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책 쓰기를 포기할 수가 없으니, 갖은 꾀를 짜내서 나, 아기, 직업과 쓰기가 공존해야 했다.


을 쓰지 않았으면 더 여유로왔을까? 내 아기는 더 행복하고, 내 가족이 더 만족했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써 내려가면서 더욱 분명해진 것은, 나 스스로 아기 낳고 키우는 경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질서 가운데서 조화를 찾고, 혼란스러운 와중에 감정을 정제하기도 했다. 아기와 갖는 시간에 감사함을 느끼고, 재생산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읽고 쓰는 작업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었다.


 애 보기가 힘들어도 애 낳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 것처럼, 책 쓰기 때문에 내 삶이 쪼개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되고 품이 많이 들긴 했지만 시야가 더 확장되고,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소중한 계기다. 글은 그 자체가 생명력이 있기에 나를 키우면 키웠지, 죽이지 않는다. 지금 돌이켜 보면 책 쓰기라는 작업이 나의 중심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임신과 출산은 더 외롭고 고단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정말로 아이에게 모든 것을 내주었다. 자고, 먹고, 씻고,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보고, 거울을 보는 나 자신. 아이를 재우고 기진맥진해진 밤이면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가슴이 느껴졌다. 돌아보면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사랑이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중요하지 않은 쓰고 싶지 않았다. 진짜 사랑이 아닌 것은 쓰고 싶지 않았다.

- 정서경(시나리오 작가), 『돌봄과 작업』 중에서


당신이 글 쓰는 마음을 먹었다면, 글이 삶을 잡아먹을 걱정을 너무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글을 품은 이는, 글과 함께 살아갈 나름의 방법을 찾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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