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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Jul 17. 2021

혼자라도 괜찮은 줄 알았는데(feat. 청계산)

그날의기억

    지난 주말 크리에티터 클럽에서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다녀왔는데 오랜만의 등산이라 그런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계단이 생각보다 많았고,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끼고 있었다 해도 청계산은 600m도 안 되는 낮은 산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백두산도 종주하고, 대학교 마지막 겨울방학 때는 히말라야 트래킹도 다녀왔을 만큼 산 꽤나 탔던 기억으로는 쉽게 올라가야 했다.


  사실 힘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거의 매달 1번 이상 전국 팔도의 산이란 산을 찾아다니며 탈 정도로 자주 갔었는데 최근에는 1년에 한 번 갈까 말까 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남한산성을 반 바퀴 정도 돌았던 것이 전부였다.


  친구는 혼자서도 인왕산을 곧잘 가곤 했는데 매번 가야지 가야지하면서도 귀찮다는 이유로 이래저래 미뤄왔었던 것을 보면 내가 진짜 산을 좋아하긴 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행사가 전부 취소되면서 시간적 여유가 없는 것도 아니고, 교통비만 있으면 별다른 비용이 들지도 않는 등산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취미활동이었는데 이상하리만큼 산을 가지 않았던 것이다.

  미루고 미루고 미뤄왔던 발걸음을 드디어 뗄 수 있었던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국 사람이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함께 가자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 혼자였던 시간이 길았던 만큼 혼자 밥 먹고, 혼자 미용실을 가고, 혼자 영화를 보는 등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혼자가 익숙하다고 생각했었다. 대학생 때도 동기들과 시간표를 맞추는 대신 혼자 듣고 싶은 수업을 듣겠다고 사학과,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등 타과를 전전하고, 동기들이 함께 사회봉사 프로그램을 신청할 때 혼자 사회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했었으니까.


  생각해보면 혼자서 뭔가를 알아서 하긴 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허전함이 있었다. SNS에 사회봉사로 연탄 배달을 같이 갔다 왔다는 동기들의 사진이 올라올 때 괜히 부러웠고, 그래서 사회봉사단 학생팀장에 지원하기도 했었다. ‘함께’ 봉사한다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어서. 공강 시간이 생겼을 때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대신 일부러 이 사람 저 사람 전화해서 시간을 보내려고 했었다. 시험 기간이어도 오는 전화를 마다하지 않고, 술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잘 마시지도 않으면서 술자리는 빼지 않고 참석했었다.


  혼자였던 시간이 길었기 때문일까. 익숙하다고 말하면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외로움이 꽤나 사무쳤던 모양이다. 혼자 밥을 먹는 상황이 익숙해서 혼자 잘 먹기도 하지만, 누군가와 밥을 먹을 때면 그 짧은 시간의 침묵조차도 병적으로 싫어해서 무슨 말이든 일단 던지고 보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볼링이 좋아서 볼링동아리에 10년 넘게 나가는 것이 아니라, 볼링동아리 사람들이 좋아 10년 넘게 나가는 것처럼 등산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혼자였던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에, 더 이상 혼자 뭘 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등산을 가지 않았었다. 누군가 가자고 하는 사람이 나타나니 그제야 몸이 움직였던 것이다.


  확실히 깨달았다. 공무원 시험, 회계사 시험 같은 고시 공부를 할 성격이 못 된다는 것을. 그러기엔 난 외로움이 너무 많았다.


   코로나로 사람들을 마음껏 만나지 못하는 지금, 유달리 더 힘들다.


* 혹시나 오해하실 분들이 계실 것 같아 남깁니다. 청계산을 다녀온 건 2020년 5월입니다. 코로나가 2단계 확산되기 전인데... 벌써 1년도 더 넘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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