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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Jul 25. 2021

땀 흘린 만큼 인정받고 싶을 뿐...

그날의기억들

  인간 난로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열이 많은 체질이라 한겨울에도 조금만 격한 운동을 해도 땀을 많이 흘린다. 어떤 상황에서도 다 잘 자지만, 더운 환경에서는 한숨도 못 잘 정도로 더위에 민감한 편이다.

 

  당연히 여름에는 혼자 비를 맞고 온 것 마냥 땀을 흘리고 있다. 머리를 하루에 5번씩 감고 샤워를 2번씩 할 정도로 땀범벅이 된다. 그렇게 매해 여름, 더위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어쩌다 셋팅한 머리가 망가지는 것은 물론 찝찝한 기분과 불쾌한 땀 냄새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그 해 여름은 서울시청에서 공익으로 근무하면서 맞은 두 번째 여름이었다. 5월 군번으로 6월부터 근무를 시작했으니 사실상 제대로 된 여름을 나는 것은 그 해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슬프게도, 난 18명의 공익 포함 40여 명의 전체 기동반에서 그 해 여름 유일하게 더위를 먹어 어지럼증을 느꼈고, 유일하게 피부가 다 벗겨져서 피부과 진료를 받아야 했다.


  차량 단속이라는 외근직의 특성상 에어컨 바람은 고사하고 땡볕에서 사투를 벌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현장에서는 그늘을 찾아 헤매고, 외근을 나갔다 오면 제일 먼저 지하 샤워실로 달려가 샤워를 하며 그렇게 여름을 보냈다.


  다들 비슷한 조건이었는데도 유독 나만 더위를 먹고, 피부과 진료를 받아야 했던 이유는 단순히 내가 더위에 약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미련할 정도로 고지식한 내 성격 때문이었다.


  전날 밤새 술이라도 마신 날이면 병가를 쓰는 친구들이 적지 않았음에도 2년간 단 한 번도 그런 꾀병은 부려 본 적이 없을 만큼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책임감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나 역시 새벽가지 술을 마신 적도 있었고 그로 인해 지각을 한 적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5분을 넘지 않았고, 매일의 업무가 진행되는데 지장은 없었다.


  주변에서 공익 나부랭이라고 욕할지언정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믿었고 책임감을 갖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꺼이 매연이 뿜어져 나오는 차량 밑으로 기어 들어갔고 궂은일을 시켜도 마다하지 않았다.


  피부가 벗겨지던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땡볕에 앉아 4시간 동안 도로를 촬영했다. 정말 미친 듯이 더운 여름의 어느 날이었고, 그늘 밑에 있어도 땀은 비 오듯이 흘렀다. 에어컨은커녕 손풍기조차 흔치 않을 때였고 공익 제복은 통풍 따위 되지 않는 재질이었기에 더 덥게 느껴졌다.


  사무실에 복귀해보니 팔 전체가 빨갛게 익어 있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니 따끔거리기 시작했고 집에 돌아가니 허물 벗겨지듯 피부가 벗겨지기 시작했다. 타다 못해 익어버린 것이다. 결국 다음날 오전 근무를 마치고 조퇴하여 피부과를 찾아 1도 화상이라는 진단을 받고 한 달간 매일 약을 발라야 했다.


  천성이 놀기 좋아하는 한량이지만, 그래서 할 때는 확실히 하자는 주의다. 최소한의 책임, 팀원으로서 사람 대 사람으로서 할 도리는 다 하자는 게 내 신념이다. 문제는 지나치게 신념에 매몰된 나머지 내 살이 익어가는 것조차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물론 정확히는 신념 때문만이 아니라 귀찮아서 선크림을 충분히 바르지 않은 등 관리를 안 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 책임감이 아니었다면, 다른 팀에서는 이미 2시간도 채 안 걸려 모든 촬영을 끝내는 상황에서 홀로 테이프를 2개씩 갈아가며 촬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동기들이 일을 마무리하고 쉬는 시간에 복귀해서, 퇴근하는 그 순간까지 나 홀로 촬영물을 편집하는 일은 절대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사실, 고생하는 일 자체는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사회생활이라고 믿었으니까. 내가 참을 수 없던 건 더위 따위가 아니었다. 피부가 벗겨질 정도로 벗겨진 팔의 가려움이 아니었다. 내가 일하는 동안 놀고 있는 동기들이 아니었다. 주변의 시선이었다.


  난 그저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했는데, 내게 돌아오는 말은 고생했다는 말이 아니었다. 다른 동기들이 쉬고 있을 때 혼자 일을 하는 나는 그저 일을 못해서 늦게까지 잔업을 하는 사람이었다. 온갖 핑계로 병가를 쓰고, 땡땡이를 치는 동기들은 원래 공익들이 그런 거니까 넘어가고, 어쩌다 한 번 과음한 탓에 지각하는 나는  술독에 빠져 사는 술주정뱅이가 되어 있었다.


  많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칭찬을 바라고, 대가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뜨거운 여름에 에어컨 바람이 춥다고 비명을 지르는 사치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뜨거운 여름에는 땀 흘리며, 추운 겨울에는 추위에 덜덜 떨며 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만, 책임감 있게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만 인정해주기를 바랐을 뿐이다.


   공익이던 시절로부터 7년이 지난 그 해 여름에도 여전히 난 남들보다 배로 많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한 달 넘게 22시 전에 퇴근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어느 날은 퇴근을 두 번 하는 황당한 경험도 했다. 모두가 퇴근하고 홀로 남아 일을 마무리하곤 사무실 불을 내가 끄고 퇴근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팀장과 협의 하에 휴가를 쓰고 항공권을 예약했지만 휴가 2일 전에 휴가를 취소하라는 팀장의 말에 비행기 표를 그대로 허공에 날린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팀원들은 내게 “도대체 왜 야근해요? 할 게 많아요?”라고 물었다. 팀장은 "왜 네 동기들은 잘하는데 넌 그 모양이냐?"라고 물었고, 사수는 "야근을 안 해봐서 야식 하나 제대로 못 시키네." 같은 말을 했다. 속된 말로 개처럼 노력했는데도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듣다가 자의 반 타의 반 퇴사를 하게 되었다.


   물론 '열심히' 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은 다르다. 특히나 돈을 받고 일을 하는 입장이라면 더더욱이 '잘'하는 게 중요하다. 동아리 회장 하면서도 선배들에게 무수히 들었던 말이다. 열심히 하는 건 알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회장으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문제는 회사에서는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일들을 강요하고 있었고, 내 능력 이상의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부스비를 50% 밖에 낼 수 없다고 전화를 회피하는 업체를 대상으로 협상 권한이 없는 나는 그저 앵무새처럼 100% 다 내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해야 했다. 돈을 받아내지 못하는 나는 무능력한 사원이었다. 협력사는 입금해주기 위해서 서류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서류를 만들 능력이 없는 나는 그저 팀장님께 보고 후 연락드린다는 말만 되풀이해야 했다. 협력사에서 "지금 짬 처리시키는 것 같으니 총책임자 연락처를 달라."라고 강하게 나온 후에야 팀장님이 나서서 겨우 서류가 전달되었고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부모님은, 어른들은 그런 게 세상이라고 말한다. 내가 못난 탓이라고 더 노력하라고, 잘해야 한다고 한다. 노력한 만큼의 인정을 받고 싶다는 내 생각이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의 투정인 것처럼 말한다. 


   모르겠다. 땀 흘린 만큼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이 그렇게 큰 욕심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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