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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운 Aug 01. 2021

쪽 팔려서

그 날의 기억_내가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이유

   드라마 작가 준비를 한답시고 유명했던 드라마들을 다시 보고 있다. 얼마 전에는 2017년에 방송했던 쌈 마이웨이를 봤다. 시청률 측면에서나 드라마 이론측면에서나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방영당일이면 실시간 검색어를 오랫동안 차지했고, SNS 등에 공유되는 클립의 조회수도 꽤나 높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도 30을 전후해 방황하는 청춘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10화에서 애라는 청주 KBC에 면접을 보러갔다가 면접을 망치고 우울한 마음에 동만이 있는 대천으로 향한다. 때 마침 축제 MC가 술병이 나는 바람에 대타로 투입되었고, 충만한 끼를 발산하며 무대를 휘어잡는다. 그 다음 날도 애라가 MC를 보기로 했고, 애라의 아버지는 서산에서 대천까지 애라를 보러 달려온다. 아버지가 모처럼 무대에 선 애라를 보러 왔건만 느닷없이 등장한 혜란에게 MC 자리를 빼앗긴다.


  다시 서산으로 돌아가려는 길에 아빠는 애라에게 괜찮다며 무대에 선 모습이 아니라 그냥 가까우니까 얼굴 보러 왔다며 보온병을 건넨다. 오랜만에 봤으니 밥이나 같이 먹자고 하지만 애라는 빨리 가라며 거절하고, 돌아서던 아빠는 애라에게 3만 원을 쥐어준다.

   이 장면을 보면서 34살이 되고도 부끄럽게도 세뱃돈을 받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어쩌다가 집에 찾아오라는 할머니의 전화를 받고 외갓댁에 가면 할머니가 쥐어주시던 봉투가 생각났다. 빌어먹게도 아직까지도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아직도 세뱃돈을 받느냐며 부러워할지도 모르고, 또 누군가는 부모님이 지원해주실 수 있는 상황이라면 눈 딱 감고 받으라고, 받고 나서 열심히 노력해서 나중에 갚으면 된다고 말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도 세뱃돈이니 용돈을 받을 때면 우울하기 짝이 없다. 애라의 말마따나 쪽팔리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부모님은, 이모와 이모부는 괜찮다고 말한다. 애라의 아버지가 “원래 말여 사람은 다 자기 설칠 바닥이라는 게 있는 겨. 아 타짜가 민화투치는 할매들 판에서 설치면 말이 되는겨? 박지성이가 조기축구회에서 나대면 안 되는 거 아니냔 말여. 너 타짜여 임마. 아 저만한 무대는 아빠가 승이 안차.”라고 말하듯이, 언젠가 때가 있을 거라고, 어울리는 자리가 있을 거라고, 말씀하신다. 여유가 있으니 필요한 게 있으면 얼마든지 말하라고 하신다.


  차마, 말을 할 수가 없다. 세뱃돈을 받아들고 마트로 달려가 장난감을 뭐 살지 고민하던 철모르던 시절이 지났기 때문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고, 사람마다 때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친구들처럼 내가 용돈도 드리고 해외여행도 보내드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내가 5살이든, 15살이든, 35살이든, 55살이든 한 번 할머니 강아지면 영원히 똥강아지니까 괜찮다고 하지만 내가 괜찮지 않다. 못난 나 때문에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오신,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애를 잘못 키웠다고 욕먹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한 점 부끄럼 없던 당신들의 삶이 나로 인해 후회가 남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가족 간에 쪽 팔리고, 부끄러운 게 어딨냐 말하겠지만, 있다. 마트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송곳’의 구고신은 마트 노동자들에게 “지금 일하는 모습 자식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요?”라고 묻는다. 노동자들은 울먹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새파랗게 어린 관리자가 반말을 하든, 쌍욕을 하든, 진상이 뺨을 때리든, 침을 뱉든, 하루 종일 광대뼈 떨리도록 입꼬리 끌어당겨서 생글 생글 웃고 있어야 하는 자식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부모님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내 입장과 감히 부모님의 이야기를 비교하는 건 죄송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더 쪽 팔린건 부모님이나 자식 입장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놀이공원에 가고, 야경 좋은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썰며 함께 행복만 나눠도 모자랄 판에 그 못난 꼴을 보이고 싶지 않다. 나 하나 참고 견디면 되는데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우울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지 않다.


  그래서, 할머니의 전화를 받을 수가 없다. 집에 얌전히 붙어 있을 수가 없다. 쪽 팔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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