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쩍 하고 갈라지는 소리였다. 산부인과 진료실이었다. 남편과 나는 영문도 모른 채 10초간 멍하게 정지했다. 세상이 멈춰 섰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소리 내어 통곡했던 것 밖에. 그 소리 삼킬 새 없이 수술대로 안내받았다.
"마취 들어갑니다. 하나 둘 셋 세세요"
간호사의 목소리는 동굴처럼 울렸다. 팟 하고 켜놓은 수술대 조명이 아련해졌다. 차마 아픈 기억, 그렇게 유산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아기는 어느 날 갑자기 떠나 버렸다.
나는 직장인 예비맘이었다. 임신 기간은 조심해야 한단다. 하지만 얼마나 조심해야 하는지, 어떻게 조심해야 하는지 몰랐다.
임신 사실을 알면서도 회사에서 준비하는 프로젝트에 열을 올렸다. 밤 12시 넘어까지 사무실에서 야근하면서 PT 준비를 했다. 그때 내 카피와 서류를 밤 12시 30분에 피드백 주고받았다. 야근은 계속되었다. 여러 차례 전화기를 붙들고 열을 올렸다. 입으로만 조심한다 하고 몸과 마음을 혹사했다. 그게 열심히 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기는 별이 되었다.
엄마 됨에도 준비가 필요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안다. 아기를 가진 순간부터 알아야 할 것은 엄청나다. 엄마가 잘 몰라서 벌어진 일일까, 자책하고 후회했다. 너무 무지한 예비엄마였다. 유산 수술을 마치고 집에 와서 동굴을 만들어 놓고 누워 짐승처럼 울었다. 울고 울었다. 아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전화기 건너편, 소식을 들은 친정 엄마도, 친한 언니도, 울었다. 만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혼자 있을 자신도 없었다.
꾸역꾸역 수술한 다음날 회사에 나갔다. 나란 사람은 회사에 나가면 아프던 몸도 싹 가시는 사람이었다. 희한하기도 하지, 회사에 나가서 씩씩한 척을 했다. 하지만 회사 책상에 앉아 벽을 바라보고 울음을 삼켰다. 뽑아 닦은 휴지만 한두루 미였다.
"아기는 금방 다시 생길 거야"
많은 사람들이 위로해줬다.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얼굴로 퇴근을 했다
집에 와서 노트를 폈다. 무작정 썼다. 쓰고 또썼다. 지금 내가 얼마나 쓰라린 상태인지, 머릿속에 맴도는 모든 것들을 적었다. 뭐가 문제였는지, 어쨌어야 하는 건지, 속상한 것 하나까지 깨알같이 썼다. 쓰면서 울었다. 글을 쓰면서 내 마음을 내가 다독거려주고 있었다.
글쓰기의 힘이 이렇게나 위대했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던 내가, 아무것도 안 한 채 글만 쓰고 있었다. 온통 위로의 글, 넋두리 같은 글, 그러나 곧 희망이 온다는 글, 모든 글들이 나를 살려주었다. 붙잡고 정신 차리게 해 줬다.
공허한 마음을 이겨보려고 무작정 적고 또 적은 흔적들
12년 전 이야기다. 다시 나에게 온 아기는 콩나물처럼 자라 11살이 되었다. 얼마나 애달프게 기다린 아기인데 11년 동안 그 소중함을 잊었나, 간간히 육아 '욱'이 올라올 때가 이만저만 아니다.
별이 된 아기를 1년간 하염없이 기다리던 글, 그리고 11년 동안 별 인지도 모른 채 엄마표 잔소리를 시전 하다 문득 별빛처럼 매만지는 일상의 글들을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