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아기의 생명은 어디로 갔을까?별이 되어 하늘로 갔을까? 아니면 구름 너머로 여행을 갔을까? 인간은 누구든 어느 순간 심장이 멈출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 갑작스럽게 알아버렸다.
사실 아기는 원래 세상에 없었다. 까만 모니터에만 꼬물꼬물 하던 존재, 두근두근, 기계 속 심장소리만 들려준 존재, 임신테스트기에 선명한 2줄로 "엄마"라고 부른 존재. 하지만 원래 없던 존재라서 '있음'과 '없음'을 말하기도 모호했다.
그저 내 상상 속에 있던 아기, 내 뱃속에 있던 아기가 못된 수술을 피해 잠시 자리를 옮긴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 뱃속'이 아니라 '심장'으로 잠시 이사 간 거라고.
사실 나는 아이를 낳겠다는 계획도 없었다. 아니 아이를 안 낳겠다고 공연히 큰소리치던 때도 있었다.
"아이는 부모에게 평생 카드빚같은 존재 아니야? 끝없이 엄마에게 사랑과 돈을 대출받아 자라지만 결국 다 갚지 못하는 빚쟁이 같아"
그렇게 못된 말을 한걸 후회했다. 벌을 받나 보다. 아이는 '존재'만으로도 기쁨을 주기도 하고, '부재'만으로도 불행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려고 그러나 보다 했다. 그리고 죄책감에 내 몸을 돌보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몰랐다. 유산 수술도 출산한 것만큼 몸이 힘들다는 것을, 수술한 후 오랫동안 하혈을 했다.
몰랐다. 산모가 출산 후 그러하듯, 유산한 몸도 미역국 먹고 몸을 따뜻하게 하며 추슬러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출산한 산모처럼 손목 발목 관절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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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산 수술 후 하면 안 되는 일, 하나 관절 조심, 찬바람 쐬거나 집안일하며 몸 쓰지 말아야 한다.
우울한 마음을 어서 떨치고자 노력했다. 낮에는 출근해서 온갖 일을 다했다. 저녁때는 퇴근해서 찬바람 맞으며 운동을 했다. 대실수였다. 씩씩한 척 여기저기 손목 쓰고 집안일을 했다. 손목 관절이 즉각 반응했다. 움직일 때마다 시큰거리고 뼈마디가 쑤시는 느낌이 들었다. 바람이 뼈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은 마음을 더 시리게 했다.
몸을 보호하려 하기엔 정신이 더 아팠다.
일요일 오전 8시 날씨가 너무 맑아 울고, 퇴근이 늦는 남편을 기다리며 혼자 울었다. 뱃속의 아기도 엄연히 나에겐 자식이었으므로 평생 울 눈물을 미리 당겨서 울고 또 울었다. 아기가 나에게 오기엔 내가 아직 엄마 될 준비가 덜 되었나 보다 했다.
#유산 수술 후 하면 안 되는 일, 둘 자책 금지, 누구의 탓도 아니다.
수술 후 바로 다음날 출근을 해서 사무실에 갔다. 나를 힘들게 야근시킨 회사, 내가 날뛰며 일한 회사, 그러나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 누구라도 옆에 있어야 내가 덜 울 것 같아서 내 발로 출근한 회사. 얼굴에 희미한 웃음 띤 가면을 썼다. 괜찮은 양, 하지만 입술에 핏기 하나 없었다.
사장님은 비수를 꽂았다. "애도 제대로 못 낳냐? 아아 농담~. 나도 경험이 있어. 아무것도 아니다. 별일 아니다. 괜찮다"라는 말로 출근하는 나를 맞이했다.
10년 뒤에도 사장님의 말은 대못이 되어 박혀있다.
그땐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더 고마웠다.
#유산 수술 후 절대 하면 안 되는 일, 셋 씩씩한 척 금지. 충분히 마음 안아주는 시간 가지기
남편 앞에서도 씩씩한 척을 했다. 그러다 혼자 있으면 무너져 내렸다. 안드로메다로 가려는 마음을 붙잡으려 펜을 들었다. 하얀 백 지위에 토해내듯 글을 적었다. 넘치는 시간 일분 일분을 다른 생각으로 가리지 않으면 살 수 없을 만큼 마음이 흔들렸다.
괜찮다, 괜찮다, 적어내려 갔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찢긴 마음을 오로지 나에게만 보여주었다. 혼자의 기록은 한 권 두권 차곡차곡 쌓여갔다.
아픔 있는 누구나 공허한 시간을 메울 수 있는 자기만의 방법을 만들어보길.
정말 몰랐다. 임신한 뒤, 얼마나 어떻게 조심해야 할지 나는 너무 몰랐다. 유산 수술을 한 뒤, 어떻게 몸과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도 몰랐다. 이렇게 자세히 10년 전 기억을 되짚어 보는 것, 어쩌면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임신한 예비엄마, 회사를 다니는 예비 워킹맘, 막연하게 뭘 조심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 혹은 슬픔에 뒷모습 감추고 씩씩한 척 웃고 있는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무작정 일에 올인하다가 텅 빈 일상을 살았던 10년 전의 나처럼, 동굴 속에서 마음 상처를 핥지 말길 바라는 마음에 털어놓는 기억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