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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피자 Jul 19. 2020

 쓰고 또 써서 버티는 날

쓰기가 내게 가르쳐준 것들


          

“네 수술 깨끗하게 잘 되었네요”  


   

유산 수술 경과를 알려주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 ‘깨.끗.하.게’ 잘 되었단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깨끗하게 홀몸이 되었다. 눈물을 꽉 참고 돌아 나올 때, 먼저 몸을 추스르라고 했다. 몸만큼 마음도 추스러야 했다. 그래.  버텨야 하는 거였다.  


         

병원을 나서서 무작정 걸었다 4시간 동안 발길 닿는 대로 쏘다녔다. 가만히 있으면 다른 생각이 자꾸 났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은 결론도 없이 붕 떠다녔다. 내 재산을 다 줘도 좋으니 다시 아기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내 목숨과 바꿔도 좋으니 다시 아기가 돌아왔으면 좋겠다 같은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떠올랐다. 끝은 울음이었다. 미쳐가나 보다 싶었다.         

       

마음에 드는 노트 한 권 펜 한 권을 샀다. 처음에는 무작정 지금 어떤 마음 상태인지 적어 내려갔다. 그렇게 글 쓰며 버티는 삶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어느 가을날 갑자기 멈춘 사건, 밤마다 너무 고요해서 주파수가 들릴 것 같은 적막, 한 달의 반은 희망으로 기다리고 한 달의 반은 핏빛 절망과 반복된 기다림'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얽힌 실타래를 천천히 하나씩 풀자. 내 서른 평생 처음으로 허락된 생명이기에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가 없다.

정작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몰랐던 나에게 호된 가르침을 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마음고생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힘이 들뿐 희망을 버리지 말아. 스스로 다독이면서 씩씩하게 살기로 했다.

비록 뱃속에서 심장으로 이사를 갔지만 엄마 마음속에서 잘 크고 있다가 다시 엄마 뱃속으로 가렴.'


         

‘인생의 고비가 나만 피해 갈 거라는 착각을 하지 말자. 고비가 왔을 때 무너지지 않고 이겨내는 가정을 만들자. 내 옆에 내 가족이 있으니까'



‘삶 가운데 어려움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
어떤 시련도, 경험도, 그 안에서 배울 만한 교훈을 얻는다면 그걸로 족하다.’               



깨알같이 적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도 세상에 많이 있다.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시간은 정직하게 흐른다는 것, 삶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매일 새롭고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기다리면 언젠가 기쁨이 찾아온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계속 이야기했다.          




      

<바람의 언덕>     

바람의 언덕에 섰다.

바람이 부는 대로 몸이 휘청거린다

바람의 물결 따라 머리카락이 출렁거린다

따갑게 뺨을 때리는 바람을 맞으면서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왜 나를 여기에 데려왔는지, 누가 나에게 아프라고 명령했는지

찢어지는 가슴을 애써 오므리며

그냥 바람이 그치기만을 기다린다

이 시간 가슴을 부여잡고

그냥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린다

눈물이 흐른다     



그런데

바람은 나를 흔들기도 하다가

이젠 내 눈물을 바람에 말려준다

그렇게 눈물을 닦아주고, 다시 가슴을 쓸어준다

등을 토닥거려 준다 깨달음을 준다

바람의 언덕에 서보지 않은 사람은

바람의 진한 맛을

모른다             


  

나는 바람의 언덕에 서있다고 상상을 했다. 거친 바람이 나를 할퀴고 지나가는 아픈 언덕,  삶의 시련은 나를 흔들 순 있어도 넘어뜨릴 순 없다. 결국 내 눈물 말려주고 내 등도 밀어주는 바람이 될 거라고 믿었다.      







<4개의 눈>     

육안은 얼굴에 붙어 있는 눈이고

뇌 안은 두뇌에 들어있는 눈이고

심안은 마음속에 간직한 눈이고

영안은 영혼 속에 간직한 눈이다     


육안은 초음파 사진에 아이가 보이지 않지만,

뇌안은 팔다리가 생긴 내 마음대로 초음파 사진이 보이고

심안은 아직도 엄마 심장에서 함께 두근거리는 아이가 보이고

영안은 아이가 2살 3살 4살 예쁘게 웃는 모습까지 보이는 눈이다'

             





‘네가 나에게 올 수 있는 계단 같은 나날들, 오랜 기다림 끝에 너를 만나는 기분은 어떨까 나는 늘 상상하곤 해. 남들은 지나쳐버리고 말 작은 깨달음까지도 나에겐 소중해. 모든 것이 잘 될 것 같은 기분'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것은 과정일 뿐이다. 오늘의 괴로움이 언젠간 보상받을 날이 올 것이다. 그때가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올 것이다. 내가 지금 죽은 듯 살지만 웃을 날이 올 것이다.’           






적자생존, 적어야 생존할 수 있다     

지난날의 글을 들춰보는 것은 아프다. 그때의 감정이 너무 세세히 적혀있어서 그때로 돌아간 것만 같다. 10년 만에 처음 들춰보곤 덮기를 수차례. 하지만 이건 삶의 고비이다. 고비를 글로 이겨나간 흔적을 보면서 새로운 용기를 얻기도 한다.       



누구나 살면서 어려움을 만난다

원거리에선 풍경이지만 근거리에선 비극이라. 다들 가슴에 있는 걱정과 아픔들을 내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럴 때 가만히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 미움 원망 같은 몹쓸 감정들까지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걸 가만히 적어보길, 적다 보면 자기만의 감정에 빠져 있다가 살며시 나오는 때가 있다.  적다 보면 내가 제삼자가 된 것처럼 문제를 밖에서 바라볼 줄도 알게 된다. 나는 좀 전까지 분명히 힘들었는데 나한테 조언을 해준다. 위로해주고 안아주기도 한다.


 그것은 글의 힘이다. 글쓰기의 힘은 세다.


오늘 당신은 어떤 크고 작은 어려움을 안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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