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우리 반에 멋진 아이가 있었다. 같은 여자인데, 마음에 드는 쏙 아이였다. 그 친구는 쇼트커트 머리스타일, 보이시한 외모, 씩씩한 행동으로 늘 다른 친구를 보호해줬다. 털털한 행동으로 친구를 사이에 인기가 좋고, 공부도 잘해 선생님에게 칭찬받는 아이였다.
유머감각이 뛰어나서 많은 사람들을 웃게 만들어 주었다. 친구들 앞에서 곧잘 노래도 부르고, 코믹한 표정으로 항상 신기한 물건들을 내놓았다. 그 아이가 내가 짝이 되었다. 나는 그 친구와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공부도 도와주는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우리는 어느새 가까워졌다.
어느 날 그 아이가 남포동으로 놀러 가자고 했다. 친구는 재미난 곳이 있다며, 시내로 나를 데려가주었다. 토요일,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그 친구와 놀게 된 건 처음이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따라나선 나.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남포동 피자가게였다.
1995년도, 피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맛있는 피자 피자 파자~”친구는 광고 CM 송을 부르며 피자를 시켰다.
오븐에 갓 구워 나온 브랜드 파자는 신세계였다!
프라이팬에 구운 엄마표 피자와는 또 다른 맛! 붉은색 토마토소스, 분홍색 소시지가 아닌 베이컨, 치즈 위에 콕콕 박힌 올리브, 까맣고 동그란 올리브는 생전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치즈가 듬뿍 올라간 피자 한 조각을 덥석 베어 물었다. 도우가 쫄깃하고 치즈는 콸콸 흘러넘쳤다. 올리브 맛은 특이했고, 토마토소스는 짭짤했다. 그 다양한 재료들이 어우러져 입안에서 퍼지는 맛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피자파자
엄마가 집에서 만들어주신 피자 말고, 가게에 가서 피자를 먹어본 건 처음이었다. 나는 파자를 먹으면서, ‘아 나 이거 평생 좋아하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먹다니!
그날, 그 맛, 그 풍경.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빨간색 알록달록한 가게 인테리어, 옹기종기 앉아 있던 가게 테이블, 큼지막하게 놓여있던 콜라 컵, 탄산 기포에 솟아오른 빨대 모습까지.
좋아하던 아이와 처음 먹어봤던 피자파자의 맛, 지금 다시 먹어볼 수 없는 사춘기 소녀의 맛이었다. 피자를 좋아하게 된 기억이다.
세상 모든 피자는 2가지로 나뉜다. 내가 먹어본 피자, 내가 먹어볼 피자. 그리고 피자 곁엔 항상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가 있다. 피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동그랗게 웃었던 사람들이 떠오른다. 지금 나는 또 나만의 새로운 피자 맛을 찾아, 궁금한 눈으로 세상을 쳐다본다. 피자에 진심이니까.